“감시당해” VS “신변보호” 해묵은 감정 터졌다
사건은 3월 20일 오전 9시경 서울 외곽순환고속도로 의정부IC 인근 갓길에서 발생했다. 이날 이 씨는 자신의 차량을 후진시켜 경찰차량을 들이받았다. 이 사고로 노원경찰서 보안과 소속 경관 두 명이 중경상을 입고 입원치료를 받았다. 사흘 후 체포된 이 씨는 의정부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았고 22시간 만에 풀려났다. “도주 우려가 없다”는 이유였다. 이를 두고 경찰 내부에서는 “특수공무집행방해는 대부분 구속돼 징역 3년 이상의 중형을 받는데 이 씨는 바로 풀려났다. 검사에게 ‘불구속 수사 의견’을 전달하는 것도 이해가 안 된다”며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이 씨는 탈북 이후 국정원과 수사기관의 보호를 받아왔는데 2008년부터는 형사 4~6명이 2교대 또는 3교대를 하며 그를 지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국가 차원에서 밀착 신변보호를 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그의 대북활동과 관련이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이 씨가 보낸 대북풍선은 무려 1367개로 그는 풍선 외에도 삐라 8202만 장, DVD 5100장 등을 보냈다.
북한 입장에서 이 씨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실제로 이 씨는 2000년부터 현재까지 북한으로부터 25차례가 넘는 협박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런 와중에 이 씨가 자신의 신변보호를 담당하고 있는 경찰에 대해 되레 ‘위협’을 가하는 ‘해괴한’ 일이 발생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 씨의 행동을 공권력에 대한 도전이라며 맹비난하고 있다. “경찰차를 일부러 들이받아 경찰을 두 명이나 다치게 해놓고서도 바로 풀려났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많은 예산과 인력을 투입하고 있는데 이게 말이 되는가” “비싼 혈세를 들여 이 씨를 보호해야 하는가”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이 씨가 경찰을 향해 ‘분노의 돌진’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확인결과 이 사건은 그간 공권력에 대한 이 씨의 잠재된 불만이 표출된 것으로,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내막이 따로 있었다. <일요신문>은 이 사건을 계기로 이 씨가 작성한 진정서를 입수했다. 진정서에는 그간 이 씨가 ‘신변보호’를 두고 공권력과 겪어온 묵은 갈등 및 고충이 구체적으로 적시돼 있었다.
우선 이 씨는 이번 사건이 발생한 배경 및 경위에 대해 밝히며 공권력에 대한 이유 없는 반기로 몰아붙이는 일각의 비난에 대해 반박했다. 이 씨에 따르면 갈등의 폭발조짐은 3월 5일 김화지구에 대북풍선을 날리러 갔을 때부터 감지됐다. 형사들로부터 정보를 입수한 현지경찰과 군부대 등 50여 명이 현장에 포진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간 경찰의 사전 정보유출로 대북 풍선활동에 지장을 겪은 바 있던 이 씨로서는 울분이 터지는 일이었다고 한다. 이에 이 씨는 형사들에게 추후 절대 정보를 유출하지 말 것을 당부했고, 또 약속을 받았지만 이후에도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3월 18일 풍선행사를 위해 백마고지에 갔을 때도 군경뿐 아니라 반대파들이 집단적으로 포진해 행사 전부터 몸싸움이 벌어졌다. 항의하는 이들이 들이닥쳐도 신변보호를 위해 따라다닌다는 형사들은 막아주지 않았고 몽둥이와 돌을 던지며 싸움이 붙고 나서야 나섰다. 나는 ‘풍선행사 정보를 유출하지 않고 낯선 자가 접근하면 막는다는 규정을 세우고 오라. 그렇게 하지 않고 무조건 따라붙으면 신변보호가 아니라 명백한 인권침해이자 감시’라고 항의했고, ‘알았다’는 답변을 들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를 무시하고 19일에도 20일에도 무작정 따라붙었고, 신변보호가 아닌 감시당하고 있다는 생각에 내 감정은 극도로 달아올랐다. 결국 차를 운행하다 세우고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충돌이 일어난 것이다. 하지만 내 차는 6톤 이상 탑차인 탓에 충돌의 충격을 크게 느끼지 못했고 급박한 강의스케줄로 인해 나는 현장을 떠났다. 강의를 마친 후 집으로 귀가했으며 노원서 보안계장에게 최근 현황을 이메일로 보고하기도 했다.”
이 씨가 체포된 것은 사흘 후인 3월 23일이었다. 통일부가 주최한 행사에 강의를 갔다가 귀가하던 이 씨는 밤 11시경 마을버스 안에서 체포되어 의정부경찰서로 이송됐다. 그리고 다음날 조사를 받은 그는 하루 만에 석방됐다. 이 씨의 주장을 정리해보자면 그는 자신의 인권을 조금도 감안하지 않는 경찰의 태도에 감정이 격앙되기는 했으나 의도적으로 차를 들이받은 것은 아니었으며 뺑소니를 한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 씨는 사건 후 감정을 추스르고 경찰들이 입원한 병원을 찾아갔지만 면회 거부로 만날 수 없었다고 한다. “형사들은 내가 의정부경찰서에서 하루 만에 석방된 것에 항의하며 ‘특수공무집행방해죄로 3년 징역형을 내려야 한다’ ‘뺑소니이므로 물질적·정신적배상도 크게 물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들에게 나는 수차례 용서해달라는 뜻을 전했으나 ‘개만도 못한 사람’이라는 메시지만 받았다.”
신변보호를 둘러싸고 한 탈북자와 공권력 간의 묵은 갈등이 빚어낸 이번 사건을 두고 양측의 주장이 엇갈리고 있는 가운데 사건이 어떻게 매듭지어질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이 씨는 약 2주 전 검찰조사를 받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