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생? 소싯적 ‘승마 국대’로 뛰었다
▲ 2006년 4월 16일 잠실에서 열린 두산과 삼성 프로야구 경기에 당시 이재용 상무가 아들과 함께 경기를 관전했다. 사진제공=삼성 라이온즈 |
재계에 불어온 ‘젊은 바람’. 그 선두주자는 바로 이건희 삼성 회장의 외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이다. 지난 연말 삼성전자 사장(최고운영책임자·COO)에 오른 그는 세계가 주목하는 차세대 리더로 급부상했다.
이 사장은 지난 1992년 서울대 동양사학과 졸업 후 일본 게이오대와 미국 하버드대 비즈니스스쿨에서 경영학 석·박사 과정을 밟았다. 그리고 그는 33세의 나이로 임원진 명단에 이름을 올린다. 지난 2001년 삼성전자 경영기획팀 상무보-2003년 경영기획팀 상무-2007년 최고고객책임자(CCO) 겸 전무-2009년 최고운영책임자(COO) 겸 부사장에 이르기까지 이 사장은 삼성 후계자에 걸맞은 승진코스를 밟았다.
잘생긴 외모, 깍듯한 예의. 재계에서 이 사장은 ‘귀공자’로 통한다. 이건희 회장을 닮아 차분하고 말수가 적은 모범생으로 알려진 그도 사실 굉장한 스포츠 마니아다. 특히 야구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대단하다. 잠실야구장 원정팀에 마련된 본부석(관계자 특별석) 왼쪽 하단은 그의 지정석이다.
삼성 라이온즈 관계자는 “잠실 경기 때 자주 오는 편이다. 사장단과 함께 올 때도 있고, 아들과 단둘이 올 때도 있다. 틈날 때마다 야구장을 방문하는데, 경기에 몰입해 응원하는 모습에서 야구를 정말 즐기고 있다는 게 느껴지더라”고 귀띔한다.
이 사장의 ‘야구 사랑’은 아버지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비롯됐다. 젊은 시절, 일본 유학 때 야구의 매력을 알게 된 이 회장은 삼성 라이온즈 초대 구단주를 맡아 프로야구단을 직접 꾸려나갔다. 그는 과감한 투자로 선수들의 승부욕을 일깨웠다. 특히 삼성이 1985년 전후기 리그를 모두 우승한 이후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자 이 회장은 어마어마한 당근책을 제시했다.
그리고 그 화살은 ‘해태왕조’로 향했다. 그럴 만도 했다. 1986, 1987년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삼성은 해태에 맥없이 무릎을 꿇었고, 그 이후로도 유독 해태에 약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배고픈 구단’ 해태를 상대로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해태 투수를 상대로 진루만 해도 포상금을 지급한 것. 안타 1개당 200만 원, 심지어 볼에 맞아 진루할 경우에도 100만 원의 상금을 손에 쥘 수 있었다.
당시 해태 타이거즈를 이끌던 한 선수는 “삼성 타자들은 몸에 맞는 공 5개로 우리 우승 상금(500만 원)을 탈 수 있었다. 그래서 삼성 선수들과 ‘데드볼 몇 개 던질 테니 상금 나눠 갖자’는 식의 농담을 주고받기도 했다”며 지난 일을 회상했다.
이 회장은 삼성 선수들을 각별히 아꼈다. 선수단 부부동반 파티를 열어 직접 악수를 청하며 격려했고, 한남동 저택에 선수들을 불러 식사를 대접하기도 했다. 장효조 삼성 2군 감독 역시 이 회장의 배려에 감동을 받았다. 1982년, 프로야구 창설 당시 그에게 삼성 유니폼을 입혔던 주인공 역시 이 회장이었기 때문.
“선수가 단장과 마주앉기도 어려운 일이었는데, 당시 구단주이던 회장님이 나를 직접 집무실로 불러 ‘삼성에서의 활약을 기대한다’는 말로 용기를 줬다. 야구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는데 야구지식이 해박하더라.”
장 감독은 청소년 시절의 이재용 사장 역시 야구에 대한 애정이 대단했다고 전했다. 장 감독은 “이재용 사장은 중학교 1~2학년 때 잠실에서 경기가 있을 때면 세 경기 전부 보러 올 정도로 야구광이었다. 경기가 끝나면 숙소로 찾아와 선수들에게 사인을 요청하고 야구에 관한 궁금증을 털어놓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전했다. 장 감독은 이 사장이 가장 좋아하던 야구선수로 알려져 있다.
야구뿐만 아니다. 이 사장의 ‘스포츠애(愛)’는 전 종목을 아우른다. 지난 2008년 수원 삼성 대 FC서울 챔피언결정전 2차전에 이 사장(당시 전무)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에 힘을 얻은 삼성은 챔피언결정전 우승컵을 들어 올렸고, 이 사장은 우승 감독에게 축하의 악수를 건넸다. 수원 삼성 관계자는 “축구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은 걸로 안다. 조용히 왔다가 조용히 가는 편이다. 중요한 경기 때 종종 왔는데 그때마다 신기하게도 수원 삼성이 좋은 성적을 냈다”며 미소를 지었다.
2009년 임세령 씨와 이혼 파문을 겪은 이후 그가 얼굴을 보인 곳은 농구장이었다. 서울 삼성과 전주 KCC의 챔피언결정전 3차전이 열린 잠실 실내체육관을 찾은 그는 아들과 함께 삼성을 응원했다. 서울 삼성 관계자는 “농구장을 찾은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이후 삼성그룹 임원들이 자주 농구장을 찾았던 걸로 안다”고 말했다.
올해 이 사장이 경영 전면에 나선 이후 삼성 스포츠단 또한 체질개선에 나섰다.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이 삼성 스포츠단을 통합 관리하고, 그 밑으로 각 종목별로 줄기를 나누는 등 체계적인 조직도를 완성한 것. 삼성 스포츠단 소식에 밝은 한 인사는 “이 사장 취임 이후 삼성그룹이 스포츠단 개선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종목별로 따로 운영하던 예전과 달리 정보를 공유하고, 회의도 함께 한다”면서 “스포츠단 통합 이후 팬과의 소통뿐 아니라 조직 내 소통을 강조하는 분위기”라고 변화된 기류를 전했다.
이 사장은 ‘보는 것’뿐 아니라 ‘하는 것’도 즐긴다. 그는 승마와 골프에서 탁월한 실력을 자랑한다. 특히 승마에 있어선 국가대표로 활약할 정도로 재능을 보였다. 직접 승마단을 만들 정도로 승마 애호가인 아버지 이건희 회장 덕분에 그는 어릴 때부터 말을 접했다. 경기도 용인에 있는 이 회장 전용 승마장에서 말을 타면서 이 사장은 장애물과 마장마술 모두에 능한 선수로 성장했다.
그는 특히 서울대 재학 중이던 1989~1991년, 승마선수로서 전성기를 보냈다. 태극마크를 달았던 시점도 그때다. 이 사장은 1989년 우리나라에서 열린 제2회 아시아승마선수권대회 장애물 단체전에 출전,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와 함께 경기에 출전했던 한국마사회 승마훈련원 백승수 교관은 당시 이 사장의 승마 실력을 떠올리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길덕용 교관과 나, 그리고 이재용 선수 세 명이 출전했는데 모두 비등비등하게 좋은 성적을 냈다. 일반팀과 대학팀으로 나눠 선수권대회에 출전했는데 우리 대학팀이 일반팀보다 더 좋은 성적을 내면서 2등을 했다. 선수권대회뿐 아니라 그 해 열렸던 거의 모든 대회에서 우리 셋이 1, 2, 3위를 번갈아했다. 덕분에 체육훈장도 받았다.”
백 교관은 실력도 실력이지만 재벌가 아들답지 않게 검소한 모습에 놀랐다고 한다. 그는 “당연히 외제차를 탈 거라 생각했는데 쏘나타를 몰고 다니더라. 그게 편하다고 했다. 소탈한 모습 덕분에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1991년 낙마사고로 이 사장은 선수 생활을 접어야만 했다. 사고를 직접 목격한 양창규 대한승마협회 부회장은 “경기 중 말이 갑자기 서는 바람에 낙마했고, 장애물 봉에 허리를 다쳤다. 그 사고로 병역면제 판정을 받은 것으로 안다. 대학생 때 거의 매일 승마장을 찾을 정도로 열정이 대단했고, 진지하게 말을 탔다”고 회상했다.
양 부회장은 ‘승마인 이재용’을 회상하면 ‘존댓말’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고 한다. 그는 “‘~했습니다’식의 존대가 기억에 남는다. ‘~습니다’ 중 한 글자도 흘리지 않고 또박또박 발음하더라”고 말했다. 승마와 관련해서는 “승마 서적을 옆에 끼고 살았다. 자동차 안에도 책이 수북했다”라고 보탰다.
이 사장은 골프 실력도 수준급이다. 그의 라운딩을 지켜본 골프계 관계자는 “드라이버샷이 평균 250야드 정도의 장타자인 데다 아이언샷도 대단하다”고 극찬했다. 프로골퍼 최경주와도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최경주복지회 이사를 맡고 있는 이 사장은 재단의 자선 경매 행사에 종종 참석해 도움을 주고 있다. 핸디캡 6 정도의 싱글 핸디캐퍼인 그는 지난 2009년 페블비치 내셔널 프로암대회에 최경주 선수와 팀을 이뤄 플레이를 할 예정이었으나 당시 이혼소송 파문 여파 때문인지 갑작스레 취소한 바 있다.
‘포스트 이건희’로 떠오른 이재용 사장. 2011년은 본격적으로 그의 경영 능력이 시험대에 오를 전망이다. 자산총액 230조 원, 사원 10만 명에 달하는 삼성그룹을 일궈낸 이 회장은 이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을 맡아 스포츠외교를 펼치고 있다. 이 사장도 경영능력과 스포츠외교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을까.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이 사장의 ‘스포츠애’가 어떤 꽃을 피우게 될지 주목된다.
정유진 기자 kkyy122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