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 끌고 후배 밀고 ‘연세대’ 하이킥
선수 한 명의 재능은 순간을 좌우하고, 팀워크는 승패를 좌우한다. 그것이 한국 스포츠를 대표하는 4대 종목, 프로야구·축구·농구·배구의 엄연한 룰이다. 나 혼자만 뛰는 것이 아니다. 감독, 코치, 선수 전원이 머리를 모으고 움직일 때 비로소 승리의 여신은 미소 짓기 시작한다. 스포츠계에 깊게 뿌리내린 ‘뭉침’의 역사. 학맥을 중시하는 풍토는 바로 그 속에서 비롯됐다. <일요신문>에선 프로야구·축구·농구·배구 등 4대 종목을 통틀어 한국 스포츠를 움직이는 학맥을 들춰봤다. 이번 조사는 해외 학교를 졸업한 선수와 코칭스태프를 제외한 총 1555명(2011년 등록 기준)의 최종 학력을 기준으로 실시했다. 한국 스포츠의 출신학교별 파워 랭킹을 공개한다.
프로야구·축구·농구·배구 등 4대 종목을 통틀어 스포츠 스타를 가장 많이 배출한 학교는 연세대다. 조사 대상으로 삼은 총 1555명의 선수·코칭스태프 중 무려 120명(약 7.7%)이 연세대를 거쳐 프로 무대로 진출했다. 특히 강세를 보인 종목은 프로축구와 프로농구. 프로축구에선 총 78명의 지도자 중 19명(약 24.4%)이 연세대를 졸업했고, 총 620명의 선수 중 39명(약 6.3%)이 연세대 출신이다. 프로농구 역시 이에 못지않다. 총 29명의 지도자 중 무려 12명(약 41.4%)이, 그리고 총117명 중 21명(약 18%)의 선수들이 연세대를 거쳤다.
연세대에 1위 자리를 내주긴 했지만 스포츠계 내부에서 고려대의 저력은 여전했다. 고려대 출신 스포츠인은 총 104명(약6.7%). 배구를 제외한 나머지 야구·축구·농구 세 종목에서 1,2위를 다퉜다. 특히 프로야구에 진출한 고려대 출신 스포츠인은 39명(약 6.7%)에 달했고 K리그에선 39명(약 5.6%), KBL에선 26명(약 17.8%)이 활약하고 있다.
고려대에 이어 85명(약 5.47%)의 스포츠인을 배출한 한양대가 3위에 오르며 무서운 성장세를 보였다. 특히 강세를 보인 종목은 무려 24명의 스포츠인을 육성한 프로배구다. 71명의 스포츠인을 키워낸 경희대가 고려대의 뒤를 바짝 쫓아 4위를 차지했고, 5위에 오른 성균관대(62명)는 야구(24명)와 배구(13명)에서 강세를 보였다.
#프로야구 ‘금맥’ 광주제일고-고려대
2011년 기준, 가장 많은 프로야구 선수를 배출한 고교는 바로 광주제일고등학교다. 외국에서 학업을 마친 선수를 제외한 471명 중 26명(약 5.52%)의 선수가 광주일고를 거쳐 프로 무대에 진출했다. ‘바람의 아들’ 이종범을 필두로 빅리거 출신 최희섭·서재응(이상 KIA), SK 중심타자 이호준과 ‘리틀쿠바’ 박재홍도 광주일고 출신이다. 여기에 이대형(LG), 강정호(넥센)까지 더해진다. ‘7억팔 루키’ 유창식(한화)도 광주일고를 졸업한 초특급 유망주다. 선동열 전 삼성 감독과 골든글러브에 빛나는 김기태 LG 2군 감독도 광주일고 출신. 유창식은 “광주일고 선수들 모두 자부심이 대단하다”며 광주일고를 최강 야구 명문고교를 일궈낸 선배들을 향해 존경심을 드러냈다. 10명 이상의 프로 선수를 키워낸 고교는 총 13곳. 그중 18명을 배출한 북일고가 랭킹 2위를 차지했다. 지바 롯데에 진출한 김태균과 SK 나주환이 대표 타자다. 공동 3위는 16명을 배출한 신일고·부산고·군산상고다. 신일고는 롯데 양승호 감독과 LG 박종훈 감독, 두 사령탑을 배출했다. LG 안방마님 조인성, ‘봉타나’ 봉중근 그리고 김현수(두산)와 안치용(SK)도 신일고가 키워낸 스타다.
메이저리그 추신수를 배출한 부산고 출신 선수로는 정근우(SK), 박한이·진갑용(삼성), 손민한(롯데) 등이 있다. 군산상고의 대표주자는 ‘군산의 사나이’ 김상현(KIA), 이진영(LG), 차우찬(삼성), 정대현(SK) 등 내로라하는 선수들이 즐비하다. 2년 연속 정규리그 다승왕을 차지한 조계현 두산 베어스 투수코치가 이들 선배다.
대학별로는 고려대(22명), 성균관대(21명), 영남대(16명), 단국대(14), 한양대·경희대(13명)가 랭킹 5위 안에 들었다. 김선우·김동주(두산), 박용택·이택근(LG), 정근우(SK), 최희섭(KIA) 등이 고려대 출신이다.
한편, 가장 많은 지도자를 배출한 고교는 인천고등학교(6명)였다. 인천을 연고지로 둔 SK답게 이철성 수석코치, 정경배 타격코치, 김경기 2군 주루코치 등 세 명의 지도자가 인천고를 거쳤다. 넥센 김시진 감독을 배출한 대구상고가 신일고·광주일고와 함께 2위(7명)에 올랐고, 대전고·군산상고·경북고 출신이 6명으로 그 뒤를 이었다. 한화 한대화 감독은 대전고, 삼성 류중일 감독은 경북고 출신이다.
대학별로는 고려대(17명)가 한양대(11명), 건국대(10명)를 월등히 앞섰다. 8개 구단 감독들만 살펴봐도 고려대 출신이 무려 3명(두산 김경문 감독, 롯데 양승호 감독, LG 박종훈 감독)에 달했다.
#K리그 키운 광양제철고-연세대
프로축구 최대 학맥은 연세대였다. 무려 19명의 K리그 지도자와 39명의 선수를 배출했다. 인천 유나이티드 허정무 감독을 비롯, 울산 현대 김호곤 감독, 수원 삼성 윤성효 감독, 대전 시티즌 왕선재 감독 모두 연세대 출신이다. K리그 16명 감독들 중 무려 25%(4명)에 달하는 수치다. 게다가 감독을 제외한 62명의 코칭스태프 중 10명(약 16.13%)이 연세대를 거쳐 프로 무대에 진출했다. 골 결정력이 좋고 도움에 능한 최재수·송종국(울산)·홍순학(수원)·조찬호(포항) 역시 연세대를 졸업했다. 특히, 조찬호(포항)는 가장 존경하는 대학 선배로 강철 포항스틸러스 수석코치를 꼽으며 “대학 때부터 존경하던 강철 코치님께 소속팀에서 직접 지도를 받게 돼 영광”이라며 그 감격을 전했다.
축구인들이 농담처럼 이야기하던 4(고려대)-4(연세대)-2(한양대) 권력 배분도 옛말이다. 연세대를 제외하곤 학맥 평준화가 진행 중이다. 2위에 오른 고려대는 연세대(58명)에 한참 못 미치는 39명에 불과했고, 한양대(26명) 역시 경희대(27명)와 건국대(26명)에 3인자 자리를 내주고 있었다. 그 뒤를 숭실대(22명), 단국대(21명), 홍익대(20명)가 바짝 쫓고 있다.
가장 많은 K리거를 배출한 고교는 광양제철고(13명)로 조사됐다. 지동원(전남), 이규로(서울), 윤석영(전남) 등이 광양제철고 출신이다.
K리그 16개 구단별 학맥의 특색을 살펴봤다. 광주 시민구단에는 연세대(5명) 출신 선수가 가장 많았고, 대구 FC는 관동대(4명), 울산 현대는 중앙대(7명), 인천 유나이티드는 홍익대(5명) 선수가 다수를 차지했다. 수원 삼성은 무려 7명의 매탄고 출신 선수들을, 전남 드래곤즈는 9명의 광양제철고 졸업생을 거느리고 있었다.
현 국가대표 선수 및 지도자를 살펴봤다. 서정원·김현태 코치를 비롯, 이용래·박주영·김정우 등 고려대 출신 5명이 가장 많은 수를 차지했고, 윤빛가람·김신욱·곽태휘 등 3명을 배출한 중앙대가 뒤를 이었다. 연세대를 졸업한 조광래 감독의 동문 선수는 조찬호 한 명뿐이었다.
#프로농구는 연>고>중
2010-2011년 시즌 기준, 선수 및 지도자 학맥을 분석한 결과 KBL 코트 중심에 있는 건 역시 연세대-고려대-중앙대였다. 세 학교가 KBL을 차지하는 비율이 무려 42.3%에 달했다. 프로농구 선수들 학력은 연세대(21명), 고려대(21명), 중앙대(20명) 등 세 학교가 비슷한 분포를 보인 반면, 코칭스태프는 연세대(12명)>중앙대(9명)>고려대(5명) 순으로 강약이 드러났다.
원주 동부는 중앙대 출신(9명)이 주를 이룬다. 강동희 감독, 김영만·이세범 코치를 비롯해 김주성·윤호영·황진원·안재욱·박지현 모두 중앙대 동문이다. 이에 대해 김주성은 “팀워크에 도움이 되는 건 사실”이라며 웃음을 보인다. “중앙대가 농구 명문의 맥을 유지하고 있는 비결은 ‘프로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을 정도의 운동량’ 덕분이다. 프로 무대에서 뛰는 선배들을 지켜보는 후배들이 있기에 나 역시 분발하게 된다.”
오래전부터 그 맥이 유지돼오는 서울 삼성은 조승연 단장과 서동철 코치를 필두로 김태주·김동욱·이규섭·차재영까지 고려대 출신이 팀을 이끌고 있다. 이에 맞서 안양 인삼공사는 연세대 졸업생이 6명에 달한다. 이상범 감독·이동남 코치를 시작으로 이정현·은희석·박성훈·양희종 등 4명의 선수들까지 연세대 동문에 해당된다.
#프로배구 4파전
프로배구에선 타 종목에서 다수를 차지하던 연세대와 고려대 출신 스포츠인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대신 경기대, 한양대, 성균관대, 인하대 등 네 곳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랭킹 1위는 총 22명의 선수와 3명의 지도자를 배출한 경기대였다. 2010-2011 V리그 정규시즌 우승을 이끈 대한항공 신영철 감독이 바로 경기대 출신. 문성민·후인정(현대캐피탈)과 올 시즌 수비상을 거머쥔 ‘디그요정’ 최부식(대한항공)도 신 감독과 동문이다. 후인정은 경기대의 전통과 훈련량을 강조하며 “앞에서 선배가 이끄는 만큼 후배들이 활약해준 덕분에 경기대의 위상이 높아진 것 같다”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경기대에 이어 24명의 배구인을 프로 무대로 진출시킨 한양대가 2위를 차지했다. 김호철 현대캐피탈 감독을 비롯, 한선수(대한항공)·석진욱(삼성화재)· 이경수(LIG)·최태웅(현대캐피탈)·박준범(KEPCO45) 모두 한양대 출신이다.
배구계에 가장 많은 지도자(6명)를 배출시킨 성균관대가 3위에 올랐다. 삼성화재 신치용 감독·임도헌 코치, LIG 김상우 감독·김기중 코치 모두 성균관대 졸업생이다. 3명의 지도자와 18명의 선수를 낳은 인하대가 근소한 차이로 그 뒤를 이었다.
정유진 기자 kkyy122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