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홈런보다 희생번트… 우리 LG가 확~ 달라졌어요
▲ 박종훈 감독이 선수들과 손을 맞추고 있다. 지난해와 달리 선수단을 완전히 장악하고 지도력을 보이고 있다. |
지난해 겨울, LG는 신연봉제 도입을 강행했다. 그로 인해 박명환이 90%가 삭감된 5000만 원의 연봉 계약을 맺었고 심수창과 경헌호는 각각 7000만 원과 6500만 원에서 3000만 원과 3100만 원으로 절반 이상이 삭감됐다.
LG 선참 선수들은 내부 고과와 외부 고과를 공평하게 평가하는 이른바 ‘신연봉제’ 적용에 반발해 훈련거부 움직임까지 보였다. 그러나 신연봉제는 구단과는 상관이 없었다. 구단주인 LG 전자 구본준 부회장이 직접 컨설팅사에 용역을 의뢰해 탄생한 작품이었다. 구 부회장은 “신연봉제는 연차가 아니라 프로답게 실력에 따라 가치를 평가하겠다는 뜻”이라며 “팀 승리에 이바지한 선수에게 더 많은 연봉을 주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캠프 내내 코칭스태프는 혹시라도 신연봉제 때문에 선수들의 사기가 떨어질까봐 노심초사했다. 그러나 막상 시즌을 시작하니 생각지도 못한 효과가 나왔다. 평소에는 개인 성적에만 신경 쓰던 선수들이 희생번트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서로 결승타를 때리려 눈에 쌍심지를 켠 것이다. 그도 그럴 게 득점의 디딤돌이 되는 희생번트와 결승타의 고과 점수가 큰 점수 차에 나오는 솔로홈런보다 훨씬 높기 때문이었다.
불펜투수들도 확 달라졌다. 선발과 마무리 투수만 주목받는 한국 프로야구에서 불펜투수는 ‘머슴’으로 통한다. 연봉도 선발과 마무리보다 턱없이 낮다. 하지만 선발투수만큼이나 리드를 잘 지킨 불펜투수에게 높은 고과점수를 주는 신연봉제가 시행되면서 머슴은 단숨에 마운드의 주인공이 됐다.
LG 선수들은 “개인 성적보다 팀 승리에 얼마나 이바지했는지가 고과 산정의 핵심이 되면서 선수들의 팀플레이가 몰라보게 좋아졌다”며 “연봉이 대폭 깎일 때는 서운했지만, 이제는 신연봉제의 장점을 알고 그에 맞는 플레이를 한다”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지난해 박 감독은 몇 차례 선수들과 마찰을 빚었다. 2군행을 통보받은 봉중근의 아내가 미니홈피에 박 감독을 힐난했고, 이형종 역시 미니홈피를 통해 박 감독의 기용방식에 대해 불만을 터트렸다. 여기다 서승화도 구단에 쌓인 불만을 여과 없이 털어놓으며 박 감독은 ‘선수관리에 문제가 있는 사령탑’으로 낙인찍혔다. 야구계는 박 감독의 흔들리는 리더십이 다음 해에도 이어질까 우려했다.
유일하게 SK 김성근 감독만이 “초보감독은 누구나 그런 어려움을 겪는다”며 “내년부터는 박 감독이 팀을 장악하고, 자기 색깔을 낼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 감독의 예상이 맞았다.
박 감독은 지난해와 달리 선수단을 완전히 장악했다. 일찌감치 리빌딩보단 4강 진출을 목표로 내세운 박 감독은 이름값을 철저히 배제하고 실력본위의 주전 경쟁을 선언했다. 팀의 비전에 따르지 않는 선수는 과감하게 도태시킬 것이라고 엄포를 놨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박 감독의 지도력을 반신반의했던 선수들도 “올 시즌은 감독님이 베테랑 감독처럼 느껴진다”며 그 이유로 “투수교체와 대타, 작전 등이 놀라울 정도로 잘 맞아떨어지고 있다”라고 밝혔다.
박 감독은 “지난 시즌을 치르며 유독 4월에 약한 팀 성적이 최대 문제라는 걸 깨달았다”고 털어놨다. 한국 프로야구는 4월 성적이 그해 전체 성적을 책임질 정도로 비중이 막대하다. SK가 한국시리즈 4년 연속 진출에 성공한 것도 4월 승률이 6할 이상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박 감독이 지난해 시즌이 끝나자마자 진주 캠프를 시작으로 일본 교육리그, 미국 플로리다 마무리 캠프, 미국 사이판과 일본 오키나와 스프링캠프 등 총 5개월에 달하는 기나긴 훈련 대장정을 떠난 것도 시즌 개막인 4월에 선수들의 컨디션을 최고조로 만들기 위한 포석이었다.
LG 젊은 투수들은 5개월 동안 무려 4000개 이상의 투구수를 기록하며 제구 보완에 애썼다. 2009, 2010년 2년 연속 5점대였던 LG의 팀 평균자책이 올 시즌 3점대로 떨어진 건 결코 우연이 아니란 소리다.
지난해 LG는 57승 5무 71패를 기록했다. 57승 가운데 외국인 투수가 책임진 승수는 단 9승이었다.
외국인 선발투수 부진은 LG 성적 하락의 주원인이었다.
LG 프런트는 ‘수준급 외국인 투수 확보가 팀 성적에 직결한다’는 믿음으로 미국과 도미니카를 오갔다. 결국, 레다메스 리즈와 벤자민 주키치 두 수준급 투수를 영입하는 데 성공했다.
리즈는 한국 프로야구 사상 최고액 외국인 선수로 알려졌다. 미국인 에이전트 사이엔 “리즈를 영입하는 데 이적료와 옵션 포함 270만 달러(약 29억 원)가 들었다”는 소문이 퍼져있다. 주키치도 다른 팀들의 외국인 선수보다 몸값이 높은 편이다. 그렇다고 LG 프런트가 두 선수를 무작정 영입한 건 아니었다. 두 선수의 품성과 한국 프로야구 적응 여부를 자세히 분석했다. 메이저리그 성적과 이름값에만 치중했던 예전의 LG와는 전혀 달랐다.
이런 노력을 주효한 것일까. 리즈와 주키치는 유일한 휴식일인 월요일에도 잠실구장에 나와 훈련을 한다.
선수와 코칭스태프 그리고 프런트의 의식이 확연하게 바뀐 LG의 선전은 가을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