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려는 욕심이 제 발목 잡아요
코치라고 해서 일방적인 강요를 하는 것도 없고, 선수의 인격을 존중하고, 무슨 얘기를 하더라도 특히 야구에 대해선 굉장히 조심스러워 하는 편이에요. 그래도 전 경기장 밖에서 만나면 많은 걸 물어봐요. 특히 존 누널리 코치는 2007년 클리블랜드 마이너리그에서부터 인연을 맺게 됐고, 지난해부터는 메이저리그에서 한솥밥을 먹고 있는 터라 누구보다 저에 대해 잘 아는 분입니다. 지금 제 슬럼프(?)가 조금 길어지고 있는 이유에 대해 저도 잘 알고 있고, 누널리 코치 또한 훤히 꿰고 있기 때문에 오늘 저녁 식사 자리에선 그 해결방법에 대해 허심탄회한 얘기를 나눴습니다.
가장 빨리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단 한방입니다. 한두 게임, 아니 한 게임만이라도 제대로 된 플레이를 하기 시작하면 감이 확 살아날 것 같은데, 그 타격감이 왔다 갔다 하니까 더 힘들고 미칠 것만 같네요. 너무 잘하려는 욕심이 제 발목을 잡고 있는 건 분명해요. 다른 거 다 잊고 오로지 야구만 생각하고, 여유 있게 이 상황들을 견뎌내야 한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는데, 타석에 들어서면 상대팀 투수가 몸쪽 공을 던질까? 직구로 승부할까? 아니면 공을 밖으로 뺄까? 등등의 오만가지 생각을 하다 보니 방망이가 제대로 나가지 않습니다.
지난해 모두 경험했던 투수들임이 분명한데도, 왜 올 시즌에는 모두 처음 대하는 투수들처럼 느껴지는지 모르겠어요. 어느 기자가 이런 질문을 하더라고요. 어떤 투수가 제일 까다롭냐고요. 당시엔 솔직히 대답하지 못했는데, 제 마음 속 대답은 모든 투수들이 다 상대하기 어렵다는 내용이었어요.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른 선수들과 달리 꾸준히 경기에 출전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방망이를 못 치면 수비라도 잘하고, 도루 기회가 엿보이면 죽을 둥 살 둥 전력을 다해 뜁니다.
오늘, 아내와 전화통화를 했는데 이런 얘길 하더라고요. 아마도 아내와 결혼한 뒤 처음으로 들었던 야구와 관련된 내용이었을 겁니다. “무빈 아빠! 올 시즌 1할대로 끝내도 좋으니까 아무 생각 말고 하고 싶은 대로 해. 한 해 야구하고 그만둘 거 아니잖아. 야구 인생 길게 보면, 올 시즌이 당신 인생에서 아주 작은 부분일 수도 있으니까, 마음의 짐 모두 내려놓고 편히 가자고. 응?”
그렇습니다. 아내 말대로 제 야구 인생은 길게 남아있습니다. 셋째가 태어나도 침대 살 돈도 있고 기저귀와 분유값이 모자라서 걱정하지 않을 정도의 능력도 있습니다. 이 정도면 저 행복하지 않습니까? 안타와 홈런이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추신수가 사라지는 건 아니잖아요. 호흡을 길게 갖고 마인드컨트롤을 잘해야 될 것 같습니다.
미네소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