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국회의원 등 사람 모아, 성남시 공무원 3인 동석”…“걸리면 큰일 나는 건데, 공무원이” 부적절 문제 인식
당시 자리에 동석한 공무원들은 은수미 시장 선거 캠프 출신으로, 경찰 수사 중에 있는 ‘성남시 채용 비리’ 피의자 신분으로 확인됐다. 은 시장 ‘심복’으로 꼽히는 N 씨는 이를 알고도 이들로부터 탄원서를 받았다. 다만 은 시장 측은 구체적 가담 내용은 몰랐다는 입장이다.
은수미 성남시장은 2020년 2월 6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항소심에서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았다가 대법원 판결로 기사회생했다. 공직선거법상 선출직은 100만 원 이상의 벌금형이 확정되면 당선이 무효된다. 은 시장은 2020년 10월 16일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에서 벌금 90만 원을 선고받았다.
대법원 판결 당시 은 시장 측은 선처를 구하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탄원서에는 “성남시민인 아래 탄원인들은 위 사건 피고인인 은수미 현 성남시장에 대한 2심(항소심) 재판부의 판결이 부당하다고 판단해 본 탄원서를 올리오니 부디 깊이 참작하여 선처해 주길 바란다”는 내용이 담겼다.
그런데 이 탄원서 작성에 성남시 소속 공무원이 개입했다는 정황이 포착됐다. 일요신문은 당시 상황을 알 수 있는 녹취록을 입수했다. 이에 따르면 성남시 공무원들은 탄원서 마련을 위해 사전에 모의했던 것으로 보인다. 녹취록은 제보자와 N 씨의 통화 내역이다. N 씨는 성남 중원 지역구 청년위원장으로 2018년 지방선거 때 은 시장 선거 캠프 핵심 인물로 알려져 있다. 모의 자리 이후 작성된 탄원서 역시 N 씨가 받았다.
녹취록에 따르면 2020년 4월 26일 오전 10시경 성남 모처에 전직 국회의원 L 씨, 민주평통 성남시 상임위원장 H 씨, 성남시 유관단체장 등을 포함한 30여 명이 모였다. 이 자리에는 성남시장 비서실 분석관 H 씨, 조정관 K 씨, 팀장 K 씨 3명이 동석했다. 이들은 현재 경기남부경찰청이 수사 중에 있는 ‘성남 채용 비리’ 사건의 피의자 신분이기도 하다.
녹취에 따르면 N 씨는 제보자와의 통화에서 “K 팀장이 주최를 했고, 사람을 모았다”며 “K(조정관)도 왔다”고 했다. N 씨는 “H(분석관)이 적으면서 염탐하고 갔다”고 말했다.
이 자리를 김 팀장이 마련해 유관기관 단체장들을 모았고, K 조정관과 H 분석관이 동석했다는 점을 유추할 수 있는 부분이다. 아울러 H 분석관이 이 자리에 참석한 점이 단체장들에게 ‘보여주기’ 식이었다는 점도 알 수 있다. K 팀장은 은 시장 선거 캠프 사무국장 출신으로 인수위 정무특보를 거쳤다. 은 시장 취임 후 성남시 임기제 6급으로 채용됐다.
제보자가 N 씨에게 “HOO, 그거 걸리면 큰일 나는 건데. 공무원이”라고 하자 N 씨는 “그쵸. 거기 있는 것 자체가 안 되는 거예요”라고 답했다. 이는 공무원들이 이런 자리에 참석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문제 인식으로 보인다.
H 분석관이 과거에도 탄원서를 수집했고 이를 은 시장이 인지했다는 점을 의심할 만한 내용도 있다. N 씨는 “탄원서 그때 예전에 쓴 거랑 비슷하게 쓰는 것 같다”며 “예전에 작위적으로 우리가 써갖고 했지 않나. HOO이 (탄원서) 써서 들고 다니다가 욕먹은 것 아니냐”고 했고, 제보자는 “시장님이 지금 가장 두려워하는 게 그런 것들”이라며 “저번에도 HOO이 그랬다가 시장님한테 욕 먹었다”고 받아쳤다.
녹취에 따르면 자리에 참석했던 Y 변호사가 대표 발언자로 나서 단체장들이 소속 단체 회원들에게 탄원서를 받아오도록 했다는 정황도 있다. “Y 변호사가 대표로 발언했냐”는 제보자 질문에 N 씨는 “그렇다”고 했고, “단체장들만 모였으니깐 각자 할당을 해준 것”이냐는 제보자의 말에 N 씨는 “그렇다”며 “본인(Y 변호사)이 초안을 짠다 이거다. 그리고 단체장들이 회원들한테 (탄원서) 받아 와라. 그런 식으로 말하고 우리가 많이 받아야 한다…”고 답했다. Y 변호사가 탄원서 마련에 일조했던 것으로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Y 변호사는 은 시장의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의 변호를 맡았던 인물이다. 성남도시개발공사 비상임 이사, 성남시립의료원 감사 등을 거쳐 현재 성남시 고문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Y 변호사가 소속된 로펌은 최근 성남시의 대장동 법률자문단을 맡았다.
이름이 거론된 성남시 공무원들은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탄원서 작성과 무관하다는 입장을 전했다. H 분석관은 “그걸 지금 알아서 뭐 할려고 하나. 거기 탄원서 작성할 때 시민사회단체 분들이 자리 끝나고 밥을 먹자고 해서 갔던 것”이라며 “그날 뭘 하는 건지 몰랐다. (탄원서에) 가담한 부분은 전혀 없다”고 했다.
K 팀장 역시 “탄원서 한 거 없다. 쓴 적도 없다. 자리에 간 건 휴가여서 선배를 보러 자리에 간 것”이라고 했다. K 조정관은 “난 지나가는 사람이었다. 탄원서는 전혀 모르는 일이다. 지나가다 사람들 있어서 인사만 했다”고 했다.
법조계에서는 공무원들이 탄원서 작성에 연루됐다면 직권 남용과 정치 중립 의무 위반 소지가 있을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한 법조인은 통화에서 “공무원의 정치 중립 의무 위반 여부는 지금 상황에서 충분히 (성립)될 수 있다. 다만 직권남용 여부는 이 자리에서 공무원들의 구체적인 행위를 좀 더 들여다봐야 할 것”이라고 자문했다.
탄원서를 둘러싼 의혹은 현재 경기남부청에서도 수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언급했듯 관련된 공무원 3명은 은 시장 선거 캠프 출신으로 성남시와 산하기관에 부정 채용됐다는 채용 비리 사건의 피의자다. 경기남부청 관계자는 통화에서 "수사 관련된 사안은 더 이상 알려줄 수 없다. 사건마다 보안 여부가 다르다"고 했다.
은수미 시장 측은 “시장님이 시의회 등 지역사회에서 탄원서를 써주시는 분들이 있었다는 건 알고 있었다. 탄원서 얘기가 있었고, (이를) 아셨다. 다만 탄원서 작성 가담은 (아셨는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아울러 공무원의 직권 남용 여부와 관련해서는 “(당시 자리에 있었던) 해당 공무원들이 지역사회 흐름이나 상황을 알고 있는 것이 당연한 역할 중 하나라는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고 전했다.
제보자의 녹취 전문
<1>
제보자 : OO아. 탄원서 받으러 누구 왔다고?
N 씨 : 그때 LOO(전직 의원). 그리고 민주평통 성남시 상임위원장 HOO.
제보자 : 공무원은?
N 씨 : HOO(분석관) KOO(조정관).
제보자 : 양식 같은 거 갖고 왔어?
N 씨 : 아니오. YOO 변호사. 와서 설명하더라고.
제보자 : 상황이 어떻게 됐는데. 어디로 왔는데?
N 씨 : 거기 신협 5층 중앙시장 XXX 나이트 알죠. 5층 숯불XX?
제보자 : 고기집이야?
N 씨 : 고기집 아니라 그냥 무슨 회의장 같은 데였는데.
제보자 : 사람들을 걔네가 모았어?
N 씨 : 네. KOO 팀장이 한 거고. XX팀장 있잖아. 주최를 거기서 한 거고. 나는 청년 대표로 왔고. KOO(조정관)도 왔고.
제보자: HOO(분석관)은 뭐했는데.
N 씨 : HOO(분석관)이 적으면서 염탐하고 갔어요. 각만 팔다 간 거죠. 자기가 이렇게 한다.
제보자 : Y 변호사가 대표로 발언했어?
N 씨 : 그쵸. 여기가 무죄 유죄로 마지막 따지는 거니깐 어떻게든 탄원서를 각자 자기 단체별로.
제보자 : 아 단체장들만 모였으니깐 각자 할당을 해준 거구나.
N 씨 : 그치. (Y 변호사가) 자기가 초안을 짠다 이거지. 그리고 단체장들이 회원들한테 (탄원서) 받아 와라. 그런 식으로 말하고 우리가 많이 받아야 한다….
제보자 : HOO 그거 걸리면 큰일 나는 건데. 공무원이.
N 씨 : 그쵸. 거기 있는 것 자체가 안 되는 거예요.
제보자 : 그게 저번 주 화요일인가.
N 씨 : 화요일 아침 10시 반.
제보자 : 아침 10시 반? 일과 시간인데?
N 씨: 네.
<2>
제보자 : (탄원서) 양식은 언제 준대.
N 씨 : 아 이번 주까지 써 갖고 준다는데. 아직도 안 나왔나 봐요.
제보자 : 메일로 주는 거야. 어떻게 주는 거야.
N 씨 : 메일로 안 주고 작성해서 주겠죠. 단톡방 만든다고 했거든요. 나는 몰라. 지금 카톡이 안 돼서.
제보자 : 이번 주까지 (탄원서) 양식을 만들어서 뿌린다고? 도장만 찍으라는 건 무슨 뜻이야.
N 씨 : 탄원서 그때 예전에 쓴 거랑 비슷하게 쓰는 것 같아. 예전에 저희는 작위적으로 우리가 써갖고 했잖아. HOO(분석관)이 (탄원서) 써서 들고 다니다가 욕먹은 것 아냐?
제보자 : 그날 몇 명 모였냐.
N 씨 : 한 20명은 넘은 거 같은데.
제보자 : 20명에서 30명 사이?
N 씨 : 그쵸.
제보자 : 단체장들이야 협회장들이야 뭐야.
N 씨 : 어디 XX복지협회 회장. 협회 뭐 있고. XX향우회도 있었고.
제보자 : 시장님이 지금 가장 두려워하는 게 그런 것들인데. 저번에도 시장님한테 그랬다가 욕먹었거든. HOO(분석관) 지가 탄원서 대표로 하겠다고.
설상미 기자 sangm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