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설 소란 10대 수용자 진압 교도관 즉각 직위해제…교도관들 “검찰 수사관 부친 입김 탓” 법무부 “적법 조치”
최근 일요신문이 만난 한 교도관의 얘기다. 지난 추석 당일인 9월 21일 수원구치소에서 일어난 사건 때문에 전국 교도관들이 들썩이고 있다. 사태가 점점 커지자 10월 26일 법무부 차원에서 대응 메시지를 내기도 했다. 교도관들의 불만의 발단은 한 10대 수용자에서부터 시작됐다.
9월 21일 10대 수용자 A 씨는 수원구치소 방 안에서 시찰구(재소자들의 동정을 살피기 위해 감방 문에 만든 감시 구멍)를 막고 소란을 피우는 등 규율 위반 행위를 했다고 한다. 수도권 기관에서 근무 중인 교도관 B 씨는 “당시 상황을 잘 아는 교도관들 얘기를 종합해보면 A 씨는 교도관들에게 반말하며 욕을 했고, 폭행하려고 위협하는 등 규율을 위반했다. 교도관들은 규율 위반 수용자에 대해 장비를 통해 정상적으로 진압했다. 규율 위반 행동을 제재하는 게 우리 임무”라고 설명했다.
교도관들은 A 씨를 데리고 사무실로 가 조사를 했다. 9월 24일 A 씨는 수원구치소 측에 자신이 사무실 내에서 다수의 직원으로부터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법무부 교정본부 측 설명에 따르면, A 씨는 변호인 접견을 하면서 위 폭행 사실을 외부와 검찰 수사관인 아버지에게 알려 달라고 했다. A 씨 아버지는 이 사실을 접했고 곧바로 수원구치소 측에 조치를 요구했다.
A 씨 아버지 요구 때문인지 일반적인 교도소 내 사고에 비하면 강도 높은 조사가 시작됐다고 한다. A 씨 신고 이후 곧바로 교정본부가 움직였다. 교정본부 지시에 따라 서울지방교정청 직원들이 수원구치소를 방문했고 CCTV 영상 등 관련 증거와 A 씨 피해진술을 확보했다.
25일 교정본부는 검토 결과 사안이 중대하다고 판단해 서울지방교정청과 합동으로 조사반을 구성해 조사를 시작했다. 이 조사는 야간 근무가 끝난 직원이 집도 가지 못할 정도로 강도 높았다고 한다. 야간근무는 17시부터 다음날 오전 8시까지다. 교도관이 구치소 밤샘 근무가 끝난 뒤 곧바로 퇴근하지 못하는 건 매우 이례적이라고 알려졌다. 조사가 본격화되면서 사건에 연루됐다는 혐의를 받는 수원구치소 교도관 2명은 곧바로 직위해제됐다.
교도관은 수용자에게 고소를 당해도 기소 여부로 직위해제를 결정하는 게 일반적인데 이번 건은 관례와 달랐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에 법무부 측은 “해당 수용자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직위에 있다면 직위해제하는 게 원칙이다”라고 밝혔다.
교정본부 측에서는 공지를 통해 “규율위반 수용자가 동행 및 조사과정에서 폭행당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추가 수사 중이다. 업무수행 중 발생한 강제력 행사가 정당한 업무 집행으로 인정되는 범위 내인지, 정당한 업무 집행을 넘어서 과잉이나 폭행으로 인정되는지에 대해 현재 조사 및 수사 진행 중인 상황이다”라고 설명했다.
강도 높은 수사에 교도관들은 A 씨 아버지 입김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또 다른 수도권 기관 소속 교도관 C 씨는 “수용자가 교도관들에게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거나 절차에 문제가 있었다고 문제 삼는 것은 꽤 자주 있는 일이다. 다만 이번처럼 즉각적으로 교정본부가 직접 개입해 일이 진행되는 일은 절대 없다”라고 말했다.
교도관 내부 게시판에는 A 씨 아버지가 교정본부에 압력을 행사해 전격적이며 편파적인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B 씨는 “이 사태가 A 씨 아버지의 입김 때문이라는 얘기로 게시판이 발칵 뒤집혔다. ‘이제는 우리가 검찰 수사관에게도 끽 소리도 못하냐. 어쩌다 이렇게 됐냐’는 글이 올라왔다”고 말했다.
추석에 일어난 일이 수그러들지 않고 오히려 점점 커지자 결국 10월 26일 법무부 보안과장이 직원들 전체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해당 메일에는 대략적인 사건 개요와 설명이 적혀 있었다. 교도소 전체 메일은 일반적으로 행사 안내, 격려 공지 등에 쓰일 뿐 이런 식의 해명은 사실상 최초라는 게 교도관들의 공통적인 목소리다. 보안과장의 메일을 두고 법무부 측은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의혹을 부풀리고 음모론을 제기해 잡음을 차단하고자 메일을 보낸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보안과장은 메일을 통해 “게시판에 A 씨 수용자 아버지 때문에 조사가 (비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내용의 글이 게시되고 이에 동조하는 글이 다수 있다. 하지만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현재 진행되는 조사는 어떠한 외부의 영향 없이 교정본부의 판단에 의해 적법절차에 따라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설명에도 교도관들의 분노는 전혀 가라앉지 않고 있다고 전해진다. B 씨는 “이메일 시스템이 만들어지고 특정 사안에 대해 해명 메일을 보낸 게 처음인 것 같다. 약 20년 넘게 교정직 생활을 했지만 손에 꼽을 만한 황당 사건이다”라면서 “보안과장은 정상적인 절차라고 하는데 수용자들이 폭행이나 심지어 린치를 당했다는 주장을 해도 교정본부가 내려와 보는 일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데 피해자 주장만으로 곧바로 조사 인원이 내려와서 퇴근도 안 시키고 조사하더니 즉각 직위해제시키는 이 과정 전체가 이례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라고 주장했다.
법무부 측은 “일선 교도소, 구치소 내에서 자체적으로 조사 및 해결할 수도 있다. 다만 일부 교도관들 주장과는 다르게 사안이 중대하고 심각하면 교정본부가 개입하는 일도 종종 있다”고 반박했다.
A 씨로 인한 충돌은 교정본부와 일선 교도관들 사이 심적 갈등도 깔려 있다는 설명도 나온다. 역시 수도권 기관에서 근무 중인 교도관 D 씨는 “같은 교정직이라고 하더라도 법무부 교정본부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은 일선 교도관들 상황을 잘 모른다. 일선 교도관들은 오히려 수용자에게 맞아도 그냥 넘어가고, 절차 문제를 진정당하거나 고소당하는 게 부지기수다. 요즘 CCTV가 다 있는데 교도관이 일방적 폭행한다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도 모르고 갑자기 직위해제부터 하니 화가 난 거고 누군가의 ‘입김’ 때문 아니냐는 추정도 나온 거 같다”고 말했다.
보안과장이 밝힌 조사 결과 발표에도 기대하는 교도관은 별로 없었다. 교도관들은 “만약 정상적이고 적법한 진압 결과였다고 하더라도 교정본부 측에서 그대로 발표할 리 없다. 만약 적법한 진압이었다면 자신들이 징계를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교도관들은 기대하지 않고 있다고 본다”라고 입을 모았다.
한편 법무부 측은 일요신문의 질의에 “조사 중인 사안이라 추가적으로 자세한 내용을 말하기 어렵다”고 답변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