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런맛 봤더니 슬슬 ‘감’이 오네요
▲ 홍순국 메이저리그 사진전문기자 |
요즘 우리 선수들 경기하는 걸 지켜보면 ‘이기는 야구’가 어떤 건지를, 어떻게 해야 이길 수 있는지를 확실히 깨달은 것 같아요. 타자가 타석에 나가서 삼진을 먹거나 땅볼로 아웃되더라도 투수를 편하게 놔두질 않습니다. 파울볼을 치더라도 끝까지 물고 늘어지죠. 아웃이 되더라도 끈질기게 매달립니다. 수비에서 실수가 거의 없고 불펜도 이전에 비하면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잘하고 있어요. 지난 번 제가 일기에서 어린 선수들이 많은 팀이다 보니 잘나갈 때는 확 올라가고, 그 반대의 상황에선 밑으로 쉽게 쏠린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었어요. 성급한 생각일지는 몰라도, 지금의 팀 분위기를 봤을 땐 올 시즌 클리블랜드가 이전과는 아주 많이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이 있습니다.
오늘 경기에서 4회 초 1이닝 동안 무려 10점이나 득점을 올렸습니다. 11-0으로 앞서 있는 상황이었지만 더그아웃 분위기는 점수를 낼 수 있을 때 더 올려야 한다는 거였죠. 설령 20-0으로 이기고 있어도 한 타석 한 타석이 중요한 게 선수들입니다. 그게 모두 자신을 평가하는 고과와 연관돼 있기 때문이에요.
무엇보다 지난해 부상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던 해프너의 완벽한 부활이 클리블랜드의 대단한 힘으로 작용하고 있어요. 지금 트리플A에 있는 사이즈모어도 우리가 원정경기를 마치고 클리블랜드로 돌아가면 바로 합류한다는 소식이 들리네요. 역시 저만 정상적으로 가동되면 클리블랜드의 타순이 막강하겠죠?^^
자, 이제부터 제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오늘 경기까지 개막 후 7게임을 치렀고 27타수 3안타, 1홈런, 2타점, 4득점, 3볼넷, 9삼진, 2어시스트(보살), 타율은 0.083에서 0.111를 기록했습니다. 단순히 숫자만 놓고 봤을 땐 팀의 3번타자로서 고개를 들 수 없는 저조한 성적입니다. 그러나 전, 지금이 시즌 막바지가 아니라는 걸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어요. 앞으로 155게임이 남아 있습니다. 얼마든지 제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 거란 자신이 있거든요.
무엇보다 시범경기 때와는 달리 시즌 들어가면서 몸에 힘이 들어가는 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어요. 잘하려는 욕심이 큰 게 문제였어요. 경기 비디오를 반복해 보면서 저한테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찾으려고 노력했는데 스윙도 그렇고 방망이 휘두르는 타이밍도 모두 좋았어요. 단, 너무 잘하려는 의욕이 앞서다보니 생각과 몸이 따로 나간 거예요. 마음을 비우라고요? 그건 너무 잘 알고 있는 정답입니다. 그런데 그게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숙제인 것 같아요. 지금의 저한테 야구는 테크닉이 아닌 멘탈입니다. 정신적인 부분이 야구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어요.
다행히 지난 보스턴전에서 마쓰자카를 상대로 홈런을 치며 조금씩 타격감이 살아나고 있는데요, 저한테 마쓰자카는 일본 선수이기보단 그냥 메이저리그의 한 투수일 뿐입니다. 언론에서 보는 것처럼 마쓰자카를 통해 홈런을 뽑아냈다고 해서 특별히 더 기쁘고, 의미가 있는 건 전혀 아니라는 얘기죠. 힘들 때 좋은 스윙이나 만족스러운 타구가 나오면 조금씩 슬럼프에서 벗어나게 되더라고요.
새벽에 중계 보시느라 출근하는 데 지장받는 많은 팬들을 위해서라도 제가 더 기쁜 소식 전해드릴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오늘은 시원하게 맥주 한 잔 하고 잠자리에 들어야겠습니다.
시애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