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을 넘어…‘희망슛’ 쏴라!
▲ 지난 6일 수원 삼성과의 경기 후 가시마 앤틀러스 선수들이 지진 피해자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보냈다. 로이터/뉴시스 |
일단 챔스리그 진행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서울과 전북이 원정을 떠나 여장을 풀었던 나고야와 오사카 지역은 지진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았다. 진앙지와 상당히 가까웠던 가시마 구단의 경우, 클럽하우스에 균열이 났고 훈련장과 홈구장이 일부 파손되기는 했지만 다행히 한국으로 원정 경기를 떠나온 바람에 일정에 차질을 빚지는 않았다.
지진 사태 직후 가시마 구단은 “챔스리그를 예정대로 진행할 수 있겠느냐”는 한국 프로축구연맹과 AFC 측의 문의를 받고 피해 상황을 종합한 리포트와 관련 사진 등 각종 자료들을 발송해 대회 연기를 진지하게 검토하기도 했다. 챔스리그를 통해 다시 시작한 J리그는 오는 23일 재개될 예정이다.
하지만 후쿠시마 원전 폭발 우려로 인한 방사능 유출 가능성은 남아 있었다. 원전 지대에서 수백㎞ 떨어진 나고야 현지는 비교적 평온한 분위기였으나 길에서 만난 대다수 시민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 오사카 역시 마찬가지.
한데, 일본 마스크에는 묘한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 K리그 팀들이 준비한 마스크와는 전혀 다른 용도로 활용됐던 것. 방사능 유출을 우려해 마스크를 준비한 서울, 전북에 반해 일본 국민들이 착용한 마스크는 시내 먼지와 송진 가루를 막기 위함이었다.
놀랍게도 나고야만 해도 대다수 시민들은 방사능과 관련한 정보를 거의 얻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래도 K리그의 준비는 철저했다. 서울과 전북 선수단도 별도 훈련 장비와 함께 마스크와 세정제를 따로 준비해 원정을 다녀왔다. 오는 19일 가시마와 격돌할 수원 삼성은 직접적인 피해를 입었던 가시마 원정에 대비, 미리 일본을 다녀왔던 구단들과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물론 전반적인 타격은 컸다. 클럽하우스 및 경기장 파손 등 직접적인 피해를 당했던 구단들은 J리그만 기준으로 했을 때, 가시마와 베갈타 센다이 등 두 곳이었지만 스포츠 자체가 무기한 연기되다보니 어쩔 수 없이 선수단에 휴가를 줘야 했다. 더불어 모자란 전력을 아끼기 위해 스포츠 종목과 기후 조건을 고려해 진행되는 야간 경기들을 전면 취소하게 됐다.
외국인 선수들도 동요가 심했다. 자신과 가족들의 안전을 우려해 입단을 확정한 뒤, 팀을 퇴단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알비렉스 니가타의 브라질 출신 미드필더 존 파울로 다 실바. 니가타 구단은 이달 초 “파울로가 지진 사태 이후 선수 생활을 일본에서 유지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입장을 전했다”고 발표했다.
스폰서가 떠나는 일도 일어났다. 후쿠시마 원전 지대 방사능 유출로 막대한 타격을 입은 도쿄전력이 J2리그(2부 리그) FC도쿄와 스폰서 협력을 취소했다. 이로 인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스폰서를 떠나보내야 했던 FC도쿄가 엄청난 금전적 손해를 감수해야 했음은 물론이다. 여기에 도쿄전력이 별도로 운영하던 여자축구 실업 팀은 아예 팀 해체 위기에까지 내몰렸다.
FC도쿄로 이적하려 했던 호주 수비수 제이드 노스는 아예 메디컬 테스트를 받던 날, 지진을 경험해 한동안 팀 합류를 미뤘던 케이스였다.
그러나 J리그, J2리그를 누비는 한국 선수들은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지진 소식이 전해진 뒤 대한축구협회와 프로연맹, 에이전트들은 부랴부랴 선수들과 연락을 취해 안전을 확인했으나 한국으로 유턴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잠시 귀국해 위험한 시기에는 몸을 피했다가 금세 선수단 훈련에 합류해 일정을 함께했다.
지진 발생과 함께 일본 내국인은 물론, 수많은 외국인들이 부랴부랴 서둘러 일본을 떠나는 사태가 발생했다. 최악의 상황, 만일의 사태에 대처하는 건 분명 당연한 일이었으나 공교롭게도 바로 여기서 인기 척도가 엇갈리기도 했다.
특히 일본 축구계에서 활동 중인 외국인 사령탑들의 희비가 갈렸다. 작년 중순 부임해 1월 카타르 아시안컵까지 이란 대표팀을 이끌다가 J리그 시미즈 S펄스 지휘봉을 잡은 압신 고트비 감독은 여진이 계속되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팀을 지휘해 일본 팬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안겼다.
시미즈 구단이 연고한 시즈오카 현은 지진에 큰 피해를 입지는 않았으나 상황은 썩 좋지 않았다고 한다. 지난 달 17일에는 무려 강도 6.5에 가까운 지진이 발생해 선수단에게 어쩔 수 없이 무기한 휴가를 부여해야 했다. 긴박한 상황에서 고트비 감독은 일본 언론을 통해 “시미즈에 끝까지 남아있겠다”고 선언한 뒤 귀국길에 오르지 않았다.
반면 일본 대표팀을 이끌고 있는 이탈리아 출신 명장 알베르토 자케로니 감독은 쓰나미와 지진 발생과 동시에 다른 외국인들처럼 유럽으로 훌쩍 떠났다. 물론 3월 29일 오사카 나가이 스타디움에서 열렸던 일본 대표팀과 J리그 선발 팀 간의 자선 경기에 참가하기 위해 잠시 일본으로 되돌아왔으나 대회가 끝나자마자 다시 이탈리아로 떠나 빈축을 샀다. 당시 J리그 선발 팀을 이끌었던 나고야의 스토이코비치 감독도 고트비 감독과 같은 선택을 내린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 프리랜서 스포츠 저널리스트 니시무라 씨는 “자케로니 감독과 고트비 감독은 똑같은 입장에서, 전혀 다른 선택을 했다. 물론 모두가 두려워했던 상황에서 귀국한 자케로니 감독을 콕 짚어 비난할 수는 없겠지만 그의 태도가 의연한 자세를 취했던 고트비 감독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일부에서 서운한 감정을 품었던 것도 당연하다”고 말했다.
나고야(일본)=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