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 대신 단 ‘별’…그만한 훈장이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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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구본무 LG 회장과 강유식 부회장, 이건희 삼성 회장과 이학수 부회장, 정몽구 현대차 회장과 김동진 총괄부회장. | ||
삼성의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 LG의 강유식 부회장, 현대자동차의 김동진 부회장, 이재경 두산 사장, 손길승 SK 회장, 박찬법 아시아나 사장 등은 지난해 불법정치자금 제공 혐의로 징역 8월∼2년6개월의 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대부분 2∼4년의 집행유예도 함께 받았기 때문에 실제로 형을 산 경우는 드물었다.
당시 세간의 관심은 대기업들의 오너들이 법적 처벌을 받느냐 여부였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무혐의 처리를 받았다. 직접적인 증거를 포착하지 못했다는 것이 검찰이 밝힌 이유였다.
1년여가 지난 지금 총수의 죄과를 덮어쓴 ‘전문경영인’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예상대로’ 그들은 승승장구를 거듭하고 있다.
삼성그룹의 구조조정본부장이기도 한 이학수 부회장은 대한민국 전문경영인 중 대선자금 수사결과에 의하면 제일 큰손이었다. 한나라당에 3백40억원, 노무현 후보측에 30억원, 자민련에 15억4천만원을 대선자금으로 제공한 혐의로 징역 2년6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당시 이 부회장은 정치권에 제공한 자금은 모두 이건희 회장의 재산이라고 해 횡령 혐의를 벗어났고, 이 회장의 재산이 워낙 많기 때문에 몇백억원 정도는 자신이 이 회장에게 보고하지 않고 집행할 수 있었다고 주장해 수사가 이 회장에게 번지는 것을 ‘몸’으로 막아섰다. 당시 이 부회장과 함께 정치자금을 담당했던 이는 김인주 구조조정본부 재무팀장과 윤석호 구조본 기획팀장이었다.
삼성에서 이 부회장과 함께 정치권에 대선자금을 제공한 실무를 담당한 김인주 부사장은 검찰의 수사와는 상관없이 지난해 사장으로 승진한 뒤 구조조정본부 차장을 맡고 있다. 또 대선 당시 구조본 기획팀에서 대선자금 실무를 맡았던 윤석호 전무는 지난해 삼성SDS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대선자금 폭풍을 막아낸 이학수 부회장은 이후 ‘대한민국 넘버3’라는 말까지 들으며 그룹 안팎에서 더욱 확고한 위치를 다지며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대선자금 배분에 투입됐던 삼성의 ‘전문경영인’들이 모두 승진하거나 건재하다는 얘기다.
한나라당에 대선자금으로 1백50억원을 ‘차떼기’로 전달해 징역 1년6월, 집행유예 3년을 받은 LG그룹의 강유식 부회장도 대선자금 수사 국면 이후 그룹 내 전문경영인 중 서열 1위를 확고히했다.
2002년 3월부터 1년간 구조조정본부장을 지낸 강 부회장은 LS그룹과 GS그룹이 분리될 때 조정 과정에서 큰 역할을 했으며, LG카드 사태가 벌어졌을 때에도 구본무 회장을 대신해 청문회에 나서는 등 궂은 일에 몸을 아끼지 않는 2인자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는 (주)LG 대표이사 부회장과 LG화학 이사회 의장, LG 사내대학의 학장과 연수원인 인화원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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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길승 전 sk 회장(왼쪽)과 최태원 회장 | ||
스타렉스 차량을 직접 몰고 정치자금을 제공한 실무자였던 최한영 부사장은 지난해 그룹을 총괄·조절하기 위해 신설된 전략조정실 사장으로 승진한 뒤 올해 3월 마케팅총괄본부장으로 발령받았다. 김동진 부회장은 현대자동차의 글로벌 경영을 맡고 그 자리를 최 사장이 이어받은 것. 최 사장은 정몽구 회장의 두터운 신뢰를 얻은 대표적인 인물로 99년 이사대우로, 같은 해 12월 상무로, 2001년 전무, 2002년 부사장, 2004년 사장으로 고속승진한 것으로 유명하다.
SK그룹 구조조정본부 재무팀장을 거쳐 대선 당시 구조본 본부장을 맡았던 김창근 부회장은 당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승용차를 이용해 한나라당에 1백억원을 제공했었다. 또 자민련 이한동 의원에게 2억원을 직접 전달하기도 했다.
문제는 다른 대기업들과는 달리 SK는 총수가 SK사태의 여파로 구속되는 바람에 2인자 ‘전문경영인’들의 활약이 빛을 발할 틈이 없었다.
대선자금 제공과 관련해 손길승 회장은 징역 3년에 벌금 3백억원의 실형을 선고받고 구속되었다가 항소심 과정에서 보석으로 풀려난 상태다. 손 회장은 SK의 분식회계에 대해서도 함께 재판을 받고 있다.
김창근 부회장 역시 구조본부장으로 있을 당시 SK글로벌에서 벌어진 분식회계의 책임을 지고 SK(주)의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올해 3월 SK케미칼의 대표이사로 전격적으로 경영일선에 복귀했다. 그의 대표이사 복귀는 최태원 회장의 친정체제 강화와 맞물리고 있어 주목받고 있기도 하다.
분식회계와 관련해 최태원 회장은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현재 진행중인 2심에서 손길승 회장이 법정 진술을 통해 적극적으로 ‘내탓이오’라는 전략을 쓰고 있어 2심 결과가 주목받고 있다.
대선자금 제공으로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씩을 받은 박찬법 아시아나항공 사장과 오남수 금호아시아나 사장도 그룹의 성장과 함께, 대선 자금 수사 이후 그룹 내 입지가 더 강화되고 있는 경우다. 아시아나항공은 지난해 매출액 3조를 넘어서 사상 최대의 실적을 올렸다. 박 사장은 올해에도 3조 이상의 매출액과 1천7백억원의 순이익을 낼 것을 목표로 경영일선에 나서고 있다.
오 사장은 금호아시아나그룹 전략경영본부 총괄사장으로 금호그룹의 구조조정을 통한 사상 최대 매출이라는 상승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다.
금호아시아나그룹과는 달리 조양호 한진해운 회장은 재계순위 30위권 이내 그룹사의 오너 중에서는 유일하게 법정에 서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을 1심에서 선고받아 대조를 이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