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등 밟고 ‘동남풍’ 올라타기
▲ 지난달 31일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대구시 달성군 소재 대북경북과학기술원(DGIST)에서 신성철 초대총장 취임식장에 들어가기 전 신공항과 관련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연합뉴스 |
그러나 일부 정치권 전문가들은 “자신의 발언이 미칠 파장을 충분히 예상하고 있을 박 전 대표가 이 대통령의 정책결정에 대해 반대 입장을 밝힌 것은 향후 친이계와 분명한 선긋기를 할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라고 분석하며, 박 전 대표의 대권행보 방향이 이전과는 사뭇 달라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표가 가장 중시하는 것은 원칙과 신뢰다. 이 생각은 한 번도 변한 적이 없었다. 세종시 문제 때도 그랬고 이번 동남권 신공항 문제도 마찬가지다. 국민과의 약속이기에 지켜야 한다는 기본적인 원칙을 고수했을 뿐이다.”
한 친박계 관계자는 박 전 대표의 ‘동남권 신공항’ 발언에 대해 이러한 입장을 전했다. 박 전 대표가 정부의 동남권 신공항 건설 백지화 발표에 대해 반대 입장을 밝힌 것은 이례적인 것이 아니라, 박 전 대표가 줄곧 강조해온 ‘원칙과 신뢰’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박 전 대표 스스로가 자신의 발언이 미칠 영향력을 모르지 않는 만큼, 정부 입장에 대해 ‘반대’ 의견을 공개적으로 나타냈을 때엔 그 파장을 감안한 선택을 했을 것이 당연하다. 여기엔 대략 세 가지 정도의 계산이 담겨 있다는 분석이다.
첫째, 영남지역 민심을 고려한 판단이었다는 것. 한 정치컨설턴트는 “차기 유력 대권주자로서 박 전 대표가 자신의 주된 지지 세력인 영남권의 민심에 반하는 입장을 표명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현재 박 전 대표의 영남권 지지율은 다른 주자들이 넘볼 수 없을 만큼 독보적이지만, 신공항 이슈는 이 지역의 민심을 뒤흔들 수 있는 사안이다. 박 전 대표로선 자연스러운 선택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예상대로 박 전 대표의 발언 이후 영남지역 여론은 크게 요동치고 있다. 한나라당 대구지역 국회의원 11명은 3월 30일 공동성명을 통해 “백지화는 명백히 잘못된 결정”이라며 “대통령은 국민 앞에 사과하고 국민과 한나라당에 대해 응분의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남 지역 국회의원들은 대통령을 향해 격분하며 심지어 ‘탈당’ 요구까지 하고 있는 상황. 결과적으로 대구 및 영남권을 중심으로 한 박 전 대표의 지지세는 더 크게 확산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두 번째로, 박 전 대표가 가진 ‘신뢰정치’의 이미지를 이어가겠다는 계산이다. 한 정치컨설턴트는 “박 전 대표에게는 이미 세종시 문제 때의 ‘학습효과’가 있다. 세종시법에 대해서도 박 전 대표는 이번과 똑같이 신뢰와 약속을 강조하며 이 대통령과 반대 입장에 섰고 충청민심을 얻는 이득을 가져왔다. 원칙을 강조하는 박 전 대표 특유의 이미지를 대권주자로서도 계속해서 이어가겠다는 입장 표명이다. 자연스럽게 차기 대선공약으로 이행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비치며 대권 입지도 높이는 효과를 얻었다”고 설명했다. 결과적으로 박 전 대표가 ‘세종시로 충청민심을 잡고, 신공항으로 영남민심을 다졌다’는 평이다.
마지막으로, 박 전 대표가 ‘노린’ 가장 큰 이득은 바로 친이계의 일부 지지를 끌어오겠다는 계산이라는 분석이다. 이명박 정부 임기 후반기에 들어서며 이미 한나라당 내에서는 ‘미래권력’에 대한 줄서기에 들어가고 있는 양상이다. 현재로선 가장 가능성이 높은 박 전 대표를 향한 ‘구애’가 친박계는 물론, 친이계 일부에서도 시작된 상황. ‘시점’만을 고민해오던 친이계에겐 이번 신공항 이슈가 ‘도화선’이 되었다는 분석이다.
박 전 대표의 동남권 신공항 추진 주장 발언 이후, 영남권 의원들은 친이·친박을 가리지 않고 이명박 정부를 향한 비판을 함께 하고 있다. 지난 30일 대통령을 향한 공동성명을 밝힌 이들 중에는 친박계는 물론 이 대통령의 최측근 중 한 명인 주호영 의원과 친이계 이명규· 배영식 의원 등도 포함됐다.
그런데 박 전 대표가 동남권신공항 문제를 계기로 이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면서 당내 친이주자인 김문수 경기지사의 입지가 달라질 가능성도 주목되고 있다. 그동안 친이계는 김태호 전 경남지사, 정운찬 전 총리 등 주자 띄우기에 연이어 실패하며, ‘차기 도모’에 골머리를 앓아왔던 상황. 이번 신공항 이슈로 인해 영남권에 뿌리를 둔 박 전 대표와의 ‘거리감’을 다시 확인한 수도권 중심 친이계가 현재로선 가장 지지율이 높은 친이 주자인 김문수 지사를 부상시킬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는 것. 김 지사 역시 이에 발맞추어 정부의 동남권 신공항 유치 백지화 방침에 대해 정부 결정에 ‘찬성’하는 주장을 해 눈길을 끈다.
김 지사는 지난 3월 31일 <일요신문>과의 인터뷰(70~71면 참조)에서 박 전 대표를 겨냥해 “국민과 약속한 일이니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것은 맞지 않다. 여러 가지 타당성을 따져보고 실익이 없다고 판단해 결정된 일인데 국익을 생각하지 않고 과거에 했던 공약이니까 무조건 지켜야 한다는 것은 표만을 생각한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했다. 김 지사는 또 세종시 문제에 관해서도 “정말 지방에 청사 이전이 필요하다면 대전 청사 옆에 지을 수도 있는 것 아니냐. 2600만 평이라는 엄청난 땅과 혈세를 들여 만들었을 때 과연 그것이 국민과 국익을 위한 일인지 따져봐야 한다. 약속이니까 무조건 지키라는 건 그럴듯해 보이지만 무책임한 발언”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박 전 대표가 세종시 이슈에 이어 동남권 신공항 문제로 이 대통령과 또다시 각을 세웠지만 대통령과 갈라서는 ‘최후의 카드’까지 꺼내들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그러나 지난해 8월 회동 이후 이 대통령과 화해모드를 이어온 박 전 대표가 본격적인 대권행보를 앞두고 첫 신호탄을 ‘청와대’ 방향으로 쏜 것은 의미심장해 보인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일 신공항 백지화 방침에 대한 특별기자회견에서 “지역구(대구)에 내려가서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박 전 대표의) 입장도 이해한다”며 갈등을 막는 봉합 수순에 들어갔다. 그러나 ‘훗날’을 안심할 수 없는 이 대통령과 수도권 친이계로선 ‘박근혜 대항마’ 찾기를 계속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여 여권의 대권게임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