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도원 ‘10연승 꿈’ 자충으로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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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통한의 자충수와 일격필살의 역끝내기. 국민 MC 유재석을 닮았다는 문도원 2단(20)의 행진이 7연승에서 끝났다. 문 2단은 3월 22일 서울 홍익동 한국기원 1층 바둑TV 스튜디오에서 열린 제9회 정관장배 한-중-일 여자 삼국지에서 중국의 네 번째 주자 탕이 2단(23)에게 백을 들고 169수 만에 불계패했다. 10연승 신화를 기대하며 중계 모니터를 떠나지 않던 팬들은 아쉬움의 탄식을 금치 못하면서도 “우리의 기대가 오히려 부담이 되었을 수도 있다. 7연승만으로도 너무 잘한 것. 그동안 수고 많았다”면서 문 2단에게 격려의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문 2단은 7연승을 달릴 때, 거의 매판 초·중반까지의 불리한 형세를 종반에 뒤집으면서 급기야 무슨 드라마 제목 같은, ‘역전의 여왕’이라는 별명도 얻었던 것인데, 이번 대국에서는 중국 여자 서열 1~2위를 다투는 강자인 탕이의 대마를 그것도 초장에, 멋지게 다 잡아 놓고도 거꾸로 역전패했다.
<장면 A>가 그것이다. 상변 흑들의 대마가 함몰 직전이다. 상변 백진을 삭감하러 왔다가 이 지경이 된 건데, 삭감의 첫 수가 흑45, 초장에 한번 크게 붙자마자 탕이가 문도원의 케이오 펀치를 맞은 것. 그런데 ….
흑1, 3으로 단수치며 나왔다. 돌을 거두지 않으려면 이것밖에 없다. 그러나 검토실은 이미 결론을 내려놓고 있었다. 몇 걸음 못 간다. 대마가 잡혔다는 것. 여기서 승부도 끝났다는 것이었다.
백4, 얼른 보면 최강수 같았던 이게 통한의 패착, 전무후무 10연승 신화를 시샘한 마의 한 수였다. 계속해서….
<A-1도>는 실전진행. 흑1로 잇자 백2로 끊었다. 이래도 흑이 잡히는 것 아닌가? 그리고 어쨌든 잡으면 되는 것 아닌가? 아니었다. 흑3으로 여길 잇고 버티자, 이제는 백4의 곳 패가 승부가 되었다. 패만 나도 흑이 곤란한 것 아닌가? 아니다. 백이 패에 지면 우상 백이 떨어진다. 부담은 반반인 것. 그렇다면 문제는 팻감인데, 팻감은, 흑은 부지기수였던 것.
우선 흑5에 백6이 불가피하다. 생략하면 흑A로 늘어 6의 곳을 끊고 나와 장문 치는 수와 B의 곳 장문 치는 수가 맞보기. 백은 그대로 나락인 것. 게다가 흑은 좌하 C쪽에 팻감 공장이 있었다. 백도 우상 방면 D의 곳에 팻감이 아주 없지는 않지만, 그건 손해 팻감인 데다 몇 개 되지도 않는다.
<A-2도>는 한참 패싸움을 하고 나서 백이 패를 해소하는 장면. 흑1 팻감에 백은 더 이상 응수할 수가 없다. 백2로 잇자 흑3으로 천금 같은 요석 3점이 떨어졌다. 백도 상변 흑 5점, 대마의 절반을 잡았다고는 하나 흑3에 비하면 그야말로 새 발의 피. 또 선수를 잡아 좌하 백4로 크게 잡아 들였으나 횡재한 흑은 더 이상 뭘 바라겠느냐는 듯, 흑A, 백B, 흑C, 백D까지 상변을 죄면서 챙길 것은 다 챙긴 후 유유히 5로 뛰어 분쟁의 불씨를 없애며 중앙 경영에 나섰다.
허망한 역전. 이 원인이 <장면 A>의 백4였다. 이게 <A-1도>의 흑1을 불렀으니까. 흑에게 백의 공배를 한 수 공짜로 메우게 해 준 것이니까. <장면 A>의 백4는 10연승 꿈을 스스로 망친, ‘역사적 자충’이었다.
<A-3도>처럼 그냥 백1로 끊었으면 그만이었다. 흑2에는 백3으로 끝. 흑2 전에 흑A로 이쪽을 밀어 놓는 것도 지금은 별 의미가 없다. 우하 방면에 백, 이른바 사두, 뱀 대가리가 머리를 내밀고 있다.
탕이의 역전승으로 대회 분위기가 바뀌는 것 같았다. 중국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일본은 노장 요시다 미카 8단(40) 한 사람만 남았으니 어려울 게 없을 것이고, 4명이 남은 한국이 여전히 절대 우세지만, 중국에는 루이나이웨이 9단(49)이 있으니까 승부는 이제부터라고 전열을 추스르는 모습이었다.
3월 23일 탕이 2단 대 요시다 미카 8단의 대결. 요시다가 관서기원의 맏언니뻘로 한때는 ‘여류 본인방’을 제패했던 관록이 있다 하지만 어느덧 노장. 더구나 주부의 몸으로 최근 몇 년 동안은 아이를 키우느라 바둑 공부에 소홀했다는 것이어서 전전 예상은 6 대 4, 탕이의 우세였다.
실제 바둑 내용도 그랬다. 백을 들고, 중반 초입에 리드를 잡은 탕이는 바둑이 거의 끝날 때까지 리드의 끈을 놓치지 않았다. 어떻게 변해도 흑이 덤을 낼 수 없는 형세라는 것이 검토실의 진단이었다. 그러나 골인을 몇 미터 앞둔 시점부터 탕이는 방심하는 것 같았고 요시다는 추격의 불을 댕겼다. 정밀하고 정확한 수순으로 한 집 한 집 따라붙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역끝내기 4집을 해치우면서 역전에 성공했다. 1집반 간발의 차이였다.
요시다 미카 8단은 집념의 역끝내기 일발로 일단 일본을 침몰 위기에서 건졌지만, 3월 24일 한국 김미리 초단(20)에게 백을 들고 187수 만에 불계패, 아쉽게 퇴장했다. 그러나 40세 주부, 아줌마의 힘을 보여 준 것은 인상적이었다. 아이를 다 키워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니 내년에도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이광구 바둑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