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식 너무 닮아 출연 금지, 이덕화 카리스마 탓 미화 논란, 장광 오해 피해 모자 쓰고 연기
가장 대표적인 전두환 전문 배우는 고 박용식이다. MBC 드라마 ‘땅’과 KBS 1TV ‘다큐멘터리극장’, MBC ‘제3공화국’과 ‘제4공화국’, 1998년 ‘성공시대’ 등에서 전두환 역할을 연기했다.
사실 고인은 전두환 씨를 닮아 고초를 겪은 배우로 더 유명하다. 1967년 TBC 4기 탤런트로 데뷔해 왕성한 연기활동을 펼치며 1974년 TBC 연말 우수 연기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박용식은 1981년부터 4년간 방송출연을 금지당했다. 단순히 대통령을 닮았기 때문이었다. 이로 인해 생활고를 겪게 되면서 10년 동안 방앗간을 운영해야 했다.
4년 뒤 가발을 써서 대머리를 가리는 것을 조건으로 방송 활동이 허용됐고 전두환 씨가 퇴임한 1988년 2월이 돼서야 가발을 벗고 정상적인 연기 활동 재개가 가능해졌다.
1991년에는 전두환 씨의 요청으로 두 사람이 만나기도 했다. 당시 상황을 보도한 경향신문에 따르면 이 자리에서 박용식이 “벗겨진 대머리 때문에 TV 출연을 못하게 되었을 당시 30대 중반으로 원망스러운 생각도 들었다”고 말하자, 전두환 씨가 “본의 아니게 피해를 준 것 같아 참 미안하다”고 사과했다고 한다.
적어도 박용식에게는 사과를 했다. 만약 전두환 씨의 빈소를 박용식이 찾아 조문했다면 사과에 이은 용서의 그림이 완성됐을 수 있었지만 박용식은 2013년 8월 향년 6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당시 캄보디아에서 영화 ‘시선’ 촬영 중이던 고인은 바이러스성 패혈증 증세를 보여 경희대학교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지만 결국 사망했다. 캄보디아에서 유행하던 유비저균에 감염된 것이 사인으로 밝혀졌고 고인은 국내 첫 유비저균 감염 사망자가 됐다.
전두환 역할로 가장 강렬한 인상은 남긴 배우는 이덕화다. 박정희 전 대통령 암살(10·26), 12·12 군사 반란과 제5공화국, 삼청교육대, 6월 민주항쟁 등 한국 현대사의 굵직한 줄기를 보여준 MBC 드라마 ‘제5공화국’에서 이덕화는 카리스마 넘치는 전두환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특히 전두환 씨의 말투와 음성을 거의 완벽하게 재현해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를 위해 이덕화는 ‘성대모사의 달인’으로 불린 개그맨 최병서에게 특별 과외까지 받았다. 최병서는 이덕화의 처조카 사위다.
카리스마 넘치는 이덕화의 연기가 너무 빼어났던 탓에 당시 전두환 미화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이에 이덕화는 “배우의 주관을 더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연기하고 있다”며 “‘제5공화국’을 보며 전두환이 멋있다고 말한다면 드라마 내용은 안 보고 껍데기만 보고 운운하는 것일 뿐이다. 인물의 내면을 평가해 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장광은 MBC드라마 ‘삼김시대’와 영화 ‘26년’에서 전두환 역할을 맡았다. 사실 전두환 역할과의 첫 인연은 1995년에 방영된 SBS 드라마 ‘코리아 게이트’였다. 이 드라마에서도 전두환 역할이 중요했는데 그 배역은 배우 정종준이 소화했다. 박용식이 같은 기간 MBC에서 ‘제4공화국’을 출연하면서 정종준이 대머리 가발을 쓰고 전두환 역할을 소화했다. 그리고 이 드라마에 장광은 소장 계급의 장군으로 출연했다. 문제는 정종준과 장광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었는데, 장광이 너무 전두환 씨와 닮은 게 아닌가. 이에 고석만 PD는 실내 장면이지만 장광이 모자를 쓰도록 연출했다.
3년 뒤인 1998년 SBS 드라마 ‘삼김시대’의 연출을 맡은 고석만 PD는 비로소 장광을 전두환 역할로 캐스팅한다. 그렇지만 장광에게는 아쉬움이 남는 드라마가 됐다. 애초 56부작으로 기획된 ‘삼김시대’는 작가 교체 등의 어려움을 겪으며 26부작으로 조기 종영됐다. 성우 출신 배우로 비로소 드라마 주요 캐릭터로 캐스팅된 장광 입장에선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는 조기종영이었다.
2011년 영화 ‘도가니’를 통해 비로소 존재감을 드러낸 장광은 다음 해 영화 ‘26년’에 캐스팅된다. 정확한 배역 명은 전두환이 아닌 ‘그 사람’이었는데 누가 봐도 전두환 역할이었다. 그렇게 장광은 드라마 ‘삼김시대’의 아쉬움을 영화 ‘26년’으로 대신할 수 있게 된다.
눈길을 끄는 부분은 이 세 배우의 묘한 인연이다. 우선 이덕화와 장광은 동국대 연극영화과 동기다. 그리고 장광은 KBS 15기 공채 성우로 고 박용식의 딸 박지윤(KBS 31기 공채 성우)의 성우 직속 선배다.
이외에도 전두환 역할을 소화한 배우들이 많다. 앞서 언급한 SBS 드라마 ‘코리아게이트’의 정종준, MBN 다큐 드라마 ‘대한민국 정치비사’의 윤동환 등이 있고, 최근에는 영화 ‘남산의 부장들’의 서현우도 있다. 서현우 역시 배역 이름은 전두환이 아닌 ‘전두혁’이었지만 누가 봐도 전두환 역할이었다. 많은 이들이 MBC 라디오 다큐드라마 ‘격동 50년’도 기억하고 있다. 여기서 전두환 목소리는 성우 신성호가 맡았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김은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