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기소의견, 검찰 1년 8개월 장고 끝 불기소…고소인 “어처구니없다” 검찰항고 방침
11월 18일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김원호 부장검사)는 김건모 성폭행 사건을 불기소 처분했다고 밝혔다. 김건모가 무혐의라는 결론이다. 검찰은 신중한 처분을 위해 시민들이 참여하는 검찰시민위원회 의결까지 거쳤는데 여기서도 혐의없음 결정이 나왔다.
검찰의 불기소 처분 결정은 김건모의 혐의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고소인 주장에 따르면 사건이 발생한 것은 2016년 8월이며 장소는 유흥업소의 룸 안이다. 고소장이 제출된 게 2019년 12월임을 감안하면 경찰과 검찰은 3년 4개월 전에 유흥업소 룸 안에서 벌어진 일의 실체를 밝혀내야 했다. 당연히 룸 안에는 CCTV도 없었다.
물론 성범죄의 경우 피해자 진술이 증거 능력을 갖는다. 대부분의 성범죄가 CCTV가 없고 타인이 없는 장소에서 벌어지기 때문에 피해자 진술의 증거 능력을 인정하지 않으면 혐의 입증이 매우 어려워진다. 그렇다고 피해자 진술이 절대적인 증거는 아니다. 구체적이고 일관성이 있어야 하며 비합리적이거나 모순되는 부분이 없어야 한다. 또한 허위로 피고소인에게 불리한 진술을 할 만한 동기나 이유도 없어야 한다.
왜 검찰은 김건모를 무혐의로 판단해 불기소한 것일까. 검찰은 불기소 처분 사실만 밝혔을 뿐 그 이유 등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검찰 수사가 상당히 오랫동안 이뤄졌다. 담당 부서인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가 ‘텔레그램 n번방 사건’ 처리에 집중해야 하는 등 물리적인 한계로 있었지만, 김건모 사건을 두고 다양한 진술과 증거, 정황 등이 상충해 수사 자체에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 것으로 보인다.
기본적으로 김건모는 문제의 그날 바로 그 유흥업소를 방문한 것은 인정했지만 매니저가 동석해 해당 여성(고소인)과 단 둘이 있었던 적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 증거로 해당 업소에서 150만 원을 결제한 신용카드 기록을 제출하며 “그 술집에서 여성 도우미를 불러서 술을 마시면 가격이 훨씬 더 비싸게 나온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마담 등 당시 그 유흥업소에 있었던 참고인들 대부분이 경찰 조사 과정에서 김건모에게 유리한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2020년 1월에는 김건모의 배트맨 티를 직접 제작한 제작자가 한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시점은 2016년 8월인데 자신이 배트맨 티셔츠를 제작한 것은 2016년 겨울이었다고 밝혔다. 이는 고소인이 가세연과의 인터뷰에서 “날 강간할 때 배트맨 티셔츠를 입고 (김건모가) 자꾸 TV에 나왔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김건모 측은 고소인이 성폭행이 벌어졌다고 주장한 날 유흥업소 방문 전 다른 곳에서 찍은 사진을 증거로 제출하며 그날 김건모가 배트맨 옷을 입고 있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고소인이 김건모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들도 눈길을 끌었다. 2017년 4월 초 고소인은 김건모에게 “ㅋㅋㅋ같은뱅기탔오ㅋㅋㅋㅋㅋ”라고 보냈고 김건모는 답장하지 않았다. 문자를 보낸 시점은 고소인이 성폭행 당했다고 주장한 시점 8개월 뒤다. 성폭행 당해 오랜 기간 고통스러웠다는 가세연에서의 발언과는 잘 연결이 되지 않는 문자 메시지다.
다만 2018년 3월 고소인은 당시 불거졌던 미투 운동을 언급하며 사과할 마음이 있는지를 묻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고 김건모는 또 답변하지 않았다. 이 문자는 성폭행을 당했다는 고소인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증거가 될 수 있었다.
한편 고소인은 검찰의 불기소 처분에 대해 검찰항고를 할 것으로 보인다. 가세연은 불기소 처분 소식이 알려진 11월 18일 밤 고소인과 이뤄진 전화통화를 공개했다. 여기서 고소인은 “어처구니없다. 조사를 확실하게 한 건지 모르겠다”라며 “김건모가 아니라고 해서 아닌 건 아니지 않냐? 나는 사실이 확실하다. 몇 년 동안 정신적인 피해를 입었는데, 항상 힘들어하며 살고 있는데…. 이런 결과는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강용석 변호사는 “오늘 소식을 들었는데 무슨 이유로 불기소를 했는지 들어보고 나서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말했고, 김세의 가세연 대표는 “우리가 항고해서 꼭 이길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이 불기소 처분을 내리면 고소인은 불기소처분 이유통지서를 발급받아 살펴본 뒤 30일 내에 관할 고등검찰청장에게 항고장을 제출해 검찰항고를 할 수 있다. 검찰항고를 통해 재기수사명령 또는 기각처분이 내려지는데 기각처분이 나오면 법원에 재정신청을 할 수 있다. 강용석 변호사는 그 첫 단계인 불기소처분 이유통지서 발급을 언급하며 검찰항고 여부를 상의하자고 고소인에게 밝힌 상황이다.
검찰의 불기소 처분으로 김건모가 성폭행 혐의를 벗고 관련 논란이 끝나는 상황으로 보이지만 아직까진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상황이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김은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