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대위 원톱, 별동대 구성, 진보 통합 승부수…원팀 균열과 당내 노선 갈등이 발목 잡을 수도
그러나 이재명 위기론의 본질은 사라지지 않았다. 당 안팎에선 “이재명 딜레마가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우려가 끊이지 않는다. 산토끼를 잡으려니 집토끼 눈치가 보이는 게 대표적이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구조적 열세인 세대 분포는 그야말로 난공불락이란 평가다.
“질 수 있다는 우려가 윗선에도 공유된 것으로 안다.”
정치권 한 관계자의 말이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민주당 열세’라는 대선 판세 전망이 여권 수뇌부에 전달됐다. 위기의 시작은 대장동 특혜 의혹이었다. 인파이터인 이 후보조차 “국민의 허탈한 마음을 읽는 데 부족했다”며 “진심 어린 반성과 사과가 먼저여야 했다”고 했다.
이 후보는 당·정·청 갈등을 각오하고 드라이브를 걸었던 전 국민 재난지원금도 전격 철회했다. 중도 외연 확장을 위한 승부수였지만, 여의도 정치권 안팎에선 “이 후보의 최대 강점인 실행력에 큰 타격을 입었다”는 분석도 나왔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최근 일부 여론조사에선 이 후보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를 턱밑까지 추격했지만, 여의도 한 인사는 “이 후보가 득점한 게 아니라, 윤 후보의 컨벤션 효과(정치적 이벤트 이후 지지도 상승 현상)가 잦아든 것”이라고 평가절하했다.
이 후보가 열세라는 판세는 민주당 싱크탱크 민주연구원 분석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연구원 실무선에선 내년 3·9 대선의 변곡점으로 △10월 10일(민주당 대선 경선) △11월 5일(국민의힘 대선 경선) △연말·연초(12월∼1월) △내년 설 민심(2월 전후)를 꼽았다. 이 중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양당 대선 경선의 컨벤션 효과를 가늠하는 변곡점이었다. 여기서 판정승을 거둔 쪽은 윤 후보였다. 윤 후보 지지도는 대선 경선 직후 40%대 중반까지 치솟았다.
특히 여권을 고심에 빠뜨린 것은 세대별 지지의 ‘구조적 열세’다. 여야 관계자 말을 종합하면, 2030에선 윤 후보가 이 후보를 6 대 4로 앞선다. 전체 유권자 30% 수준인 60대 이상에선 윤 후보가 압도한다. 50대에선 5 대 5다. 이 후보가 비교우위를 보인 세대는 40대인데, 유권자 비율은 10%대 후반에 그친다. 통상적으로 60대(이상 포함)의 투표율이 가장 높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 득표 격차는 더 커질 수 있다는 뜻이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이준석호를 출범시킨 20대의 보수화가 여권의 아킬레스건”이라며 “이 격차를 어떻게 좁히느냐가 관건”이라고 했다.
대선 초반 위기를 맞은 이 후보는 세 개의 비단 주머니를 꺼냈다. 이 후보의 필살기는 △선대위 원톱 배치 △광흥창팀과 유사한 별동대 구성 △진보 통합이었다. 먼저 이 후보는 선대위 전권을 쥐고 최전선에 섰다. 이재명 선대위는 훈수만 두는 의원들을 뒤로 빼고 실무진을 전진 배치하는 ‘슬림화·스마트화’를 선언했다.
민주당은 ‘당직자 총사퇴’로 이 후보 앞길을 터줬다. 대장동 사과·전 국민 재난지원금 철회에 이은 이재명식 정면 돌파의 연장선이다. 특히 여권 내부에선 당직자 총사퇴 직후 ‘제2의 광흥창팀’ 가동이 초읽기에 돌입했다는 얘기까지 흘러나왔다. 핵심은 기민하게 움직이는 ‘실무 별동대’다. 이에 따라 이 후보 측 핵심인 ‘성남 라인’과 경선 캠프 보좌진 그룹이 전진 배치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뿐만이 아니다. 진보 통합에도 시동을 걸었다. 민주당은 11월 20일 열린민주당과 합당 추진을 전격 선언했다. 이 후보가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철회한 지 하루 만이다. 여권 관계자에 따르면 양당의 당대당 통합은 다수 의원에게는 공유되지 않는 극비리였다. 열린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통합 선언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쉽지 않을 것 같다”며 “(실무선에서) 물밑 접촉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11월 셋째 주 중반을 넘어가자, 이 후보의 전 국민 재난지원금 철회(19일)를 시작으로, ‘민주당과 열린민주당 당대당 통합 추진 선언(20일)→이재명 선대위 전면 쇄신안 발표(21일)→여당 당직자 총사퇴(24일)’ 등의 메가톤급 변수가 대선 한복판에 소환됐다. 이 후보 특유의 승부사 기질이 발휘된 셈이다.
열린민주당과 합당을 두고는 “진보 대통합의 문을 연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일각에선 ‘안철수·김동연·심상정’까지 아우르는 매머드급 진보 통합 시나리오에도 군불을 땐다. 이 후보 측 핵심 관계자는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물론,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나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함께하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나”고 했다.
그러나 당 일각에선 “당내 통합도 못 하는데…”라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원팀 균열 중심엔 이낙연 전 대표가 있다. 이 전 대표는 낙선 후 정치적 잠행을 이어가고 있다. 이 후보와는 10월 24일 서울 종로 모처에서 만난 후 현재까지 양자 간 회동은 없었다. 일부 의원들은 “이 후보와 송영길 대표가 이낙연 전 대표를 껴안지 않는다”며 ‘이낙연 홀대론’을 제기했다.
이 후보와 이 전 대표의 전화통화도 10월 20일 이후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양측은 이 후보 측 정성호 의원과 이 전 대표 측 박광온 의원이 ‘(원활히) 협의하자’는 내용 정도만 공유했다. 하지만 이후 “이 전 대표가 어떠한 역할도 맡겠다고 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양측은 한층 더 틀어졌다. 당시 이 전 대표는 이런 내용을 흘린 이 후보 측을 향해 강하게 항의했다. 최근엔 이 전 대표 측 이상이 제주대학교 교수가 이 후보를 ‘적폐’로 규정하고 “민주당에서 축출해야 한다”고 말해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친조국 성향’의 열린민주당과 합당 과정에서 촉발된 노선 갈등도 이재명 딜레마를 증폭시켰다. 당대당 통합 논의 직후부터 민주당 강경파와 온건파는 강하게 부딪쳤다. 송영길 대표와 친문 강경파들은 “당이 가야 할 길”이라며 속도전을 예고했다. 하지만 이재명 선대위 공동상황실장인 조응천 의원은 “조국의 강을 건너지 않고 어떻게 중도의 마음을 돌리겠느냐”고 비판했다.
온건파 의원들은 “(이 정도의) 노선 갈등은 서막에 불과하다”며 “부동산을 비롯한 정책부터 이명박·박근혜 사면을 포함한 정치적 문제에서 사사건건 대립할 것”이라고 했다.
관전 포인트는 이 후보 스탠스다. 그는 11월 23일 YTN 인터뷰에서 이와 관련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의혹이) 사실이라면 책임지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수세 국면의 타개책으로 친조국을 외치는 열린민주당과 합당을 택하면서도 조국 사태에 선을 긋는 원칙론을 앞세운 것이다. 궁지에 몰린 이 후보가 ‘전략적 공존’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 후보가 조국 수호 논란을 자초했던 문재인 정부와 차별화를 하면서도 친조국 정당을 껴안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후보의 차별화 전략은 문재인 정부 정책에 방점을 찍었다. 문 대통령과 친문계를 직접 공격하기보다는 경제를 비롯한 정책 각론만 차별화하겠다는 뜻이다. 이 후보 측이 “대통령과 차별화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은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앞서 친문 핵심 윤건영 민주당 의원은 11월 13일 언론 인터뷰에서 “차별화는 마이너스 정치”라고 꼬집었다.
여기엔 ‘선 집토끼·후 산토끼’ 잡기 포석이 숨어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문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보다 이 후보의 선호도가 낮은 만큼, 전면적인 차별화로는 이익의 손익계산서를 가질 수 없다고 판단한 셈이다. 민주당 중진 의원은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층을 먼저 포섭한 뒤 중도 외연 확장을 하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도 청와대 및 친문 강경파와 충돌할 가능성은 여전히 살아있다. 이 후보 측 한 인사는 “이재명의 민주당은 당연한 것”이라며 “문재인 정부와 이재명 정부가 어떻게 같을 수 있겠느냐”고 갈등을 숨기지 않았다. 이재명발 별동대가 본격 가동된다면, 원팀 균열의 원심력은 더 커질 수도 있다. 이 경우 친노(친노무현) 좌장인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와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의 구원 등판 움직임도 빨라질 전망이다.
이들의 등판이 문재인 색채 강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은 이 후보의 또 다른 고민이다. 문재인 정부와 차별화하려는 이 후보 전략과 엇박자를 낼 수도 있다는 뜻이다. 승부수를 띄운 이 후보가 조기에 골든크로스(지지도 역전 현상)를 달성하지 못할 땐 차별화 전략의 효과는 줄어든다. 당 내부에서도 “대통령보다 지지도가 낮은데 차별화 효과가 있겠느냐”는 말도 나온다. 여권 한 관계자는 “답은 기승전 지지도”라며 “이 후보가 반전을 꾀하지 못한다면, 당내 잠복하던 친문계와의 갈등이 표면화될 수 있다”고 했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