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멧 강제·원동기면허…“정부 하루 빨리 해결책 마련해야”
전동킥보드 주행과 관련해 규제가 생기면서 이용자들의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타기 너무 번거롭다’는 것이다. 반면 전동킥보드 이용과 사고가 급증한 만큼 전동킥보드 주행 규제는 불가피하다는 전문가들의 지적도 나온다. 전동킥보드 운행 규제와 관련한 논란을 심층취재했다.
#안 써도 필요하다 VS 그럴 바엔 폐지해라
전동킥보드를 이용하려면 △헬멧 착용을 의무로 하며 △원동기 면허를 보유해야 하고 △자전거 도로를 이용해야 한다. 정부가 지난 5월부터 시행한 도로교통법 개정안에 실린 내용이다. 개정안이 시행된 지 7개월이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우선 헬멧 착용에 대한 찬반이 첨예하다. 실제로 한국소비자원이 지난 9월 27일 발표한 전동킥보드 공유서비스 안전실태 조사 자료를 보면 공유킥보드 이용 사례 64건 중 2건의 이용자만이 헬멧을 착용했다. 그만큼 이용자들이 헬멧을 착용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안전이 위협받는데도 불구하고 이용자들이 헬멧을 착용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전동킥보드의 강점인 편리함이 없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동근 퍼스널모빌리티산업협의회 팀장은 “(헬멧 착용 의무화 탓에) 전동킥보드 이용이 적게는 30%에서 많게는 70%가 줄었다고 각 회사가 아우성”이라며 “괜한 규제로 개인형이동장치 공유산업이 축소되진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정구성 JC&Partners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개인형이동장치 도입에 앞장선 선진국에서도 성인에게 전동킥보드 이용시 헬멧 착용을 강제하는 곳은 별로 없다”고 강조했다.
헬멧 착용 의무가 필요하다 측 주장도 강하다. 당초 전동킥보드로 인한 사건사고가 급격히 늘어나는 탓에 이를 막아보고자 했던 데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김동영 한국개발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전동킥보드가 도로교통법에서 온전한 지위를 얻으려면 충분히 안전이 보장돼야 한다”며 “당장 전동킥보드를 이용하다가 사망하는 일을 막기 위해서라도 헬멧을 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헬멧 착용의 불편함 때문에 이용자가 줄어든다는 말에 김 연구원은 “전동킥보드의 편익이 헬멧 착용의 불편함보다 작은 것”이라며 “소비자가 선택할 만큼 혁신적이며 유용한 수단이라는 점이 증명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헬멧 착용 의무보다 아예 전동킥보드의 속도 제한이 현실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용자든 보행자든 차량이든 충분히 대응 가능할 만큼 속도가 느리면 헬멧 착용 의무를 지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전제호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정부가 현재 시속 25km인 전동킥보드 최고 속력을 자전거 평균 속력인 시속 15km까지 낮춰야 한다”며 “이용자의 안전 의식과 성숙한 문화가 조성된 후에 제한속도를 높이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닮은 듯 다른 킥보드와 오토바이
원동기 면허 보유 조항도 논란이다. 이를 반대하는 쪽에서는 원동기 면허를 따기 위해 필요한 이론과 조작 능력이 전동킥보드 이용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의문이라고 주장한다. 정구성 변호사는 “오토바이는 교차로에서 좌회전하려면 1차선에서 신호를 받으면 되지만, 자전거 도로가 없을 때 전동킥보드는 차도 우측 가장자리에서 주행하기 때문에 좌회전할 수 없다”며 “킥보드를 끌고 건널목을 2~3번 건너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원동기 면허 시험에는 전동킥보드와 맞지 않는 문제도 상당하다”고 덧붙였다.
현재로선 그나마 전동킥보드의 조작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이 원동기 면허라는 게 면허 보유를 찬성하는 쪽의 설명이다. 전제호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이용자가 늘어나면서 자격 관리와 감독 측면이 중요해졌다”며 “원동기 면허로 이용 연령도 제한하고 책임도 부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동킥보드 면허를 따로 발급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는 의견도 있다. 정 변호사는 “온라인 이론 테스트 통과자를 대상으로 인증서를 발급해주는 싱가포르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며 “테스트 안에 전동킥보드만의 특성과 주행 방법을 담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킥보드 도로는 어디에
가장 큰 문제는 전동킥보드 전용 도로가 없다는 점이다. 전동킥보드가 이용해야 하는 자전거도로는 이미 자전거만으로도 포화 상태고 끊기는 길이 많다. 보행 겸용도 76%를 차지해 전동킥보드가 다니기에는 불편하고 위험하다. 정구성 변호사는 “전동킥보드 운행의 안전성이 떨어지고 보행자도 위협을 느끼는 상황”이라며 “주행유도선을 분명히 표시하거나 가장자리에 저속도로를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희철 한국교통연구원 모빌리티전환연구팀 팀장은 “도로에는 자동차도로, 자전거도로, 인도, 세 가지가 있는데 전동킥보드가 인도로 다니면 보행자에게 위협을 가할 수 있어 자전거도로, 자동차도로 순으로 이용하게 했다”며 “결국 도로 확충 등 인프라와 법적 제도를 갖추고 이용자의 성숙한 시민의식도 하루 빨리 길러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에서는 서범수 국민의힘 의원 중심으로 제한속도를 낮추는 등의 내용의 도로교통법 일부개정법률안부터 발의한 상태다. 서범수 국민의힘 의원실 관계자는 “전동킥보드의 제한속도를 낮추고 바퀴를 키워서 운행 안전성을 높여 아예 보도에 내놓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답했다. 정부의 더 적극적인 움직임을 촉구하는 의견도 나온다. 정구성 변호사는 “모든 조치가 법령과 관계된 것들인 만큼 정부가 앞장서서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웅배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