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로 성큼성큼 ‘정치 무게’ 늘리기
▲ 야권 대권주자로서 국제외교에 나서고 있는 손학규 민주당 대표. 청와대사진기자단 |
손 대표는 방중 기간 베이징을 방문해 시진핑(習近平) 국가 부주석을 비롯해 중국 측 고위인사들을 면담할 예정이다. 천안함 침몰사건 이후 막혀 있는 남북 간 대화를 필두로 6자회담 재개 문제까지 동북아 전반의 안보상황과 경제협력 방안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눌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차기 주석으로 내정돼 있는 시 부주석과의 만남은 손 대표에게 ‘차기 지도자끼리의 조우’라는 모습도 연출할 수 있다. 정치권이 손 대표의 방일과는 또 다른 차원에서 그의 방중을 예사롭지 않게 바라보는 이유다.
손 대표는 방중길에 베이징뿐만 아니라 내륙 도시 충칭도 방문해 보시라이(薄熙來) 충칭시 당서기 겸 상무부 부장과도 만난다. 손 대표가 경기도지사 시절 보 당서기는 랴오닝성 성장이었다. 두 자치단체가 결연사업을 펼치면서 두 사람도 두터운 교분을 쌓았다. 이번 손 대표의 방중에도 보 당서기가 깊이 관여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보 당서기는 내년 당 대회에서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9명 중 한 사람으로 선출될 것이 확실시되는 차세대 지도자 중 한 사람이다.
이와 관련, 손 대표의 한 측근은 “이명박 정부 들어 북한뿐만 아니라 중국과의 불편한 관계가 이어지면서 동북아의 불안정성이 커지고 있는데, 손 대표가 유력 정치지도자로서 둥북아 평화의 이니셔티브를 쥘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손 대표 주변에선 “손 대표가 주장한 ‘민생진보’의 영토적 개념을 확장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까지 나온다.
박선숙 전략홍보본부장은 “손 대표의 중국과 일본 방문은 한반도 정세 등 외교문제에서도 야당이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다는 뜻”이라며 “대안세력으로서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다 당직자들은 내년 총선 때부터 실시되는 재외국민 투표를 겨냥해 재외동포들과의 접촉면을 넓혀야 하는 것도 당 대표로서 간과할 수 없는 일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손 대표가 방일기간 중 민단 관계자들과 만난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하지만 손 대표의 활동 반경이 넓어질수록 이에 대한 ‘견제’도 만만치 않게 전개되고 있다. 이미 이 대통령과의 영수회담 결과에 대해 “구체화된 성과가 없었다”는 평가가 나왔던 흐름과 맞물려 “손 대표가 당이 아니라 대표직을 이용해 개인 정치에만 몰두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
비주류연합체인 ‘쇄신연대’의 문학진 의원은 방송에 출연해 공개적으로 방일과정의 문제를 지적하며 “손 대표가 당을 이끌면서 정체성이 모호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면서 “정체성이 계속 의문시되면 차기 대권주자로서 전반적인 신뢰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당내 견제세력들은 손 대표의 중국 방문에서 불거질 현안들에 민감해 있다. 대북문제를 포함한 동북아 전반의 안보상황과 관련한 의제가 양측 관심사항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지난 1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동영 최고위원은 손 대표가 일본 방문 중에 말한 ‘원칙 있는 포용정책’을 문제 삼았다. 정 최고위원은 “‘원칙 있는 포용정책’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말”이라며 “마치 우리의 포용정책, 햇볕정책이 원칙이 없는 포용정책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는 우리 당의 ‘6·15의 정신, 9·19 합의 정신, 10·4 실천의 정신’의 계승과 발전이라는 햇볕정책의 취지에 수정을 가하는 것으로 오해를 줄 수 있다”며 “당원에게 설명이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이에 손 대표는 “원칙 없는 포용정책은 ‘종북 진보’라는 오해를 살 수 있다”고 반박했다. 그는 “북의 세습 체제 자체나 핵 개발을 찬성하고 지지할 수는 없다”면서 “원칙 있는 포용정책은 평화를 유지하고 개방을 촉진하는 포용정책으로, 교류 협력을 통한 평화 체제를 구축하고 공동 번영을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자 정 최고위원은 “포용정책은 시대착오적인 세습체제를 찬양하는 정책이 아니고, 포용을 통해 북한 핵 포기를 이끌어낸 정책”이라며 “이걸 종북 진보라고 말한 것은 대단히 유감스러운 표현”이라고 맞섰다. 그는 “지난번에 (손 대표가) 햇볕정책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라고 해 우리 당 정체성에 심대한 훼손이 있었지만 이해하고 넘어갔다. 그러나 이번은 외국 정상과의 자리에서 ‘핵과 미사일에 대한 단호한 대응이 원칙 있는 포용정책’이라고 말했다”며 물러서지 않았다.
손 대표도 “북한의 미사일, 핵, 납치 문제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취하면서도 북한을 적극 포용해서 개혁과 개방의 길로 갈 수 있게 하고 평화의 정책으로 나아가는 것이 원칙 있는 포용정책이며, 이것이 우리 당의 변함없는 정책”이라고 재차 설명했다.
하지만 정 최고위원이 “종북 진보라고 발언한 데 대해 해명하고 취소하라”고 요구하고 나서면서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손 대표는 “다음에 하자”며 최고위원회의를 비공개로 전환했다. 손 대표의 대권 행보가 탄력을 낼수록 그를 겨냥한 견제의 강도도 그만큼 거세질 것임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박공헌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