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적끼리의 대결 ‘배짱’서 이겼다
▲ 춘란배 결승 3번기 제3국에서 이세돌 9단(왼쪽)이 난적 씨에허 7단을 격파하고 세계 정상임을 확인했다. 이로써 이세돌 9단은 통산 열다섯 번째 세계 타이틀을 차지했다. |
어쨌거나 결승3번기는 예상대로 어려운 싸움이었다. 6월 27일의 1국은 이세돌이 흑으로 길게 가지 않고 169수 만에 불계승, 기선을 제압했으나 씨에허가 곧장 반격, 29일의 2국을 이겨 승부는 원점으로 돌아갔다.
3국은 쉬는 날 없이 바로 30일. 3국은 초반이 2국과 같았다. 똑같은 정석을 들고 나온 것은 기세와 오기의 싸움. 각자 연구를 했다는 얘기였는데, 하룻밤의 연구에서는 씨에허가 앞섰다. 혼자였던 이세돌에 비해 씨에허는 공동연구가 가능했을 것이니 홈그라운드의 이점이었다. 씨에허는 초반 득점을 발판으로 엄청난 세력을 구축했다.
<1도> 흑3이 그것이다. 우상귀의 변화는 프로 고수들에게도 새로운 연구 과제를 제공한 형태이니 우리 아마추어는 기다릴 수밖에 없거니와, 그 다음 씨에허는 좌하귀 백에 흑1로 걸치고 백2 받을 때, 검토실은 흑A 뛰고 백2 벌리며 구축하고 다시 흑3으로 진지를 쌓는 진행을 예상하고 있었지만, 씨에허는 여기서도 연구가 되어 있다는 듯 흑3으로 비상한 것. 관전자들의 경탄 속에 바둑판에는 공포가 깔리는 순간이었다.
검토실이 잠깐 숨을 고른 후 “삭감해야겠지. 백D 정도인가? 더 깊으면 위험하지?”라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 때 이세돌은 백4, 외곽 삭감이 아니라 적진의 심장부로 뛰어들고 있었다. 검토실은 흑3보다 더 크게, 백4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며 “역시 이세돌!”이라면서 마주보며 웃었다.
<2도> 흑1은 당연한 밀어올리기. <1도> 백4가 그 투혼의 불꽃은 인정하겠지만, 이처럼 <2도> 흑1 정도로도 다음 행보가 어렵지 않겠느냐는 것이 한국 응원석의 우려였건만, 이세돌은 “무슨 그런 걱정을…” 하는 듯 백2, 4로 붙이고, 이단젖혔고, “백2, 4가 강렬하지만 흑3, 5에서 7이면 백이 흑5 한 점을 축으로 잡을 수 없으니 답답하다”는 검토실의 걱정에는 백8로 대답해 주었다.
다음 진행은 흑A, 백B, 흑C. 거기서 백은 D의 맥을 짚어 백4, 8 두 점을 버림돌로 외곽을 다지며 타개의 실마리를 찾는다. 그래서 검토실의 의견은 “흑은 A가 아니라 E 쪽으로 밀고 백C 때 흑B로 뛰는 것이 좋았다”는 것인데, 그러나 두 가지 모두 어려운 얘기.
<3도>는 우상귀 정석 접전과 우변 공방이 끝난 후의 제3라운드. 백은 다행히 선수를 잡아 1로 흑를 협공했고 흑2로 미끄러져 들어가 백9까지. 이게 국후 논란이 되었다. 결과나 승부 여하, 옳고 그름을 떠나 흑은 2로 들어갈 것이 아니라 <4도> 흑2처럼 중앙으로 나가고 싶다는 것이었다. 단순히 흑A로 한 칸 뛰는 것도 백B로 같이 뛰어 좀 싱겁고….
<5도> 흑1이 나타났다. 부분적으로는 우하변을 흑A로 지키는 것이 정수. 그러나 백1로 흑가 잡히는 것이 싫다. 제법 크다. 그리고 흑를 살려야 중앙에 길게 늘어선 백 대마를 노려볼 수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게 패착이 되었다. 백2로 씌우고 4로 찝은 수, 이게 묘수였다.
<6도> 흑은 1로 잇든지 해야 하는데, 이으면 백은 중앙에서 2, 우하변에서 4를 선수한 후 6으로 젖혀 나오는 수가 있다. 흑7, 9에는 백8, 10에서 12로 흑이 한 수 부족.
<7도>처럼 흑1로 여기를 잇는 것은 백2가 기다리고 있다. 흑A면 백은 똑같이 역시 백B와 흑C를 교환한 후 D로 젖힌다. 잡혀 있던 우하 백 넉 점이 이렇게 살아오면, 그것도 거꾸로 흑 두 점을 잡으며 살아오면 역시 승부는 끝. 흑은 <5도> 흑1이 아니라, 여기를 두고 싶다면 달리 뒀어야 했다.
<8도>처럼 흑1로 몰아 잡아야 했다는 게 대체적인 의견. 이래도 백2처럼 들여다보는 수가 있을 듯하지만, 이건 흑3으로 커버가 된다.
실전은 <7도>처럼 진행되었고, 이세돌 9단은 그것으로 흐름을 완전히 뒤집었으며 이후 승부처는 없었다.
침착의 대명사, 씨에허가 어떻게 <5도>와 같은 실수를 했을까. 중국의 위빈 9단은 “중국 선수들이 한국 선수들에 비해 종반이 좀 약하다”는 말로 아쉬움을 달랬다. 한·중의 프로 고수 관전자들의 감상은 좀 달랐다.
“큰 승부에서는 관록과 배짱도 큰 몫을 하는 법인데, 씨에허 7단이 세계대회 예·본선에서는 이세돌 9단을 여러 번 이겼지만, 타이틀이 보인다고 느끼는 순간 굳어졌던 것 같다.
“<3도> 흑2가 그런 거다. 쉽고 안전한 길로 가자는 유혹을 떨치지 못한 수라는 느낌이다. <4도> 흑2로 전선을 넓히며 한번 해 보자고 나가야 했다. 상대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1도> 백4를 보라. 유리할 때 강하게 나가는 것, 이세돌 9단은 그게 전문이고, 그 점에서, 기세에서 씨에허 7단이 밀린 느낌”이라는 것. 이세돌은 천적 얘기를 종식시키며 날개를 하나 더 달았다.
이광구 바둑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