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노 정권판 대북송금 사건?
▲ 2007년 남북정상회담(왼쪽)과 검찰이 부산저축은행을 압수수색하는 모습. 정치권과 검찰 안팎에서는 부산저축은행이 캄보디아에 투자한 돈 일부가 북한으로 들어갔다는 의혹이 확산되고 있다. |
지난 7월 2일 서초동 대검청사에 뜻밖의 인물이 나타났다. 세계검찰총장 회의 참석 차 방한한 추온 챔타 캄보디아 검찰총장이었다. 이번 만남은 김준규 검찰총장의 요청에 의해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김 총장은 “중수부가 하고 있는 부산저축은행 수사에 협조해 달라”고 요청했고, 추온 챔타 총장 역시 적극 지원을 약속했다고 한다.
특히 양국 검찰 수장은 부산저축은행이 캄보디아에 은닉한 것으로 의심되는 자금 추적 공조를 논의했다. 이에 앞서 김 총장은 5월 말 대검 수사진을 캄보디아에 파견한 바 있다. 검찰의 한 고위 인사는 “부산저축은행 수사의 성패는 캄보디아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면서 “부산저축은행의 사업 초기 단계부터 면밀히 살펴보고 있다. 현재 구속된 인사들을 여러 차례 불러 재조사해 의미심장한 결과들을 얻었다”고 귀띔했다.
검찰이 캄보디아로 흘러들어간 자금의 수사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09년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을 수사하던 중수부는 캄보디아와 베트남 등지에서 정체불명의 뭉칫돈을 발견한 것으로 전해진다. 박연차 게이트 수사에 관여했던 한 검찰 관계자는 “그 돈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이후 ‘올 스톱’됐다”고 떠올렸다. 당시 중수부는 박 전 회장 이외에도 부산저축은행 2대주주였던 박형선 해동 건설 회장(구속)에 대해서도 주목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박 회장 주도로 부산저축은행이 캄보디아에 거액을 투자하는 과정에서 석연치 않은 부분들이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검찰은 박 전 회장과 박 회장 등이 캄보디아를 통해 비자금을 조성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내사를 벌였지만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하자 이를 중단했다. 그런데 이번에 부산저축은행 수사에 착수하면서 지난 파일들을 다시 꺼내든 것이다.
검찰이 추산한 바에 따르면 부산저축은행이 캄보디아에 투자한 금액은 5000억 원 안팎이다.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서 30㎞ 떨어진 곳에 조성할 예정이었던 신도시 ‘캄코시티’(3500억 원대), 신국제공항(700억 원대), 고속도로(550억 원대), 캄코뱅크(170억 원대) 등이 부산저축은행의 주요 사업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 중단되거나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투자한 돈을 사실상 날린 셈이다. 검찰은 초기 사업비용으로 쓰였던 2000억 원가량을 제외한 3000억 원의 용처가 불분명하다고 보고 있는데, 이 가운데 상당액을 부산저축은행 경영진이 비자금으로 조성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현재 검찰은 부산저축은행이 대출 통로로 이용하기 위해 캄보디아에 자체 설립한 10여 개의 SPC(특수목적회사) 관계자들을 불러 조사 중이다. 또한 검찰은 부산저축은행 경영진이 조세회피지역에 세운 페이퍼컴퍼니에 돈이 흘러들어갔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부산저축은행 수사의 핵심으로 떠오른 캄보디아 투자 건에서 검찰이 ‘키맨’으로 꼽고 있는 인물이 바로 박형선 해동건설 회장이다. 검찰은 박 회장이 부산저축은행의 캄보디아 사업을 사실상 진두지휘했다는 진술을 확보하고 그 과정을 면밀히 들여다보고 있다. 박 회장은 박연차·강금원 회장 등과 함께 대표적인 ‘친노 기업인’으로 꼽힌다. 인간적인 신뢰로 치면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가장 가까운 사람은 박 회장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박 회장은 평소 노 전 대통령을 ‘형님’으로, 권양숙 여사를 ‘형수님’으로 불렀다는 후문이다. 박 회장 부부는 청와대도 한 차례 방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광주일고를 나온 박 회장은 자신의 동문들이 경영하고 있는 부산저축은행의 캄보디아 투자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2006년과 2007년 박연호 회장, 김양 부회장 등과 함께 직접 캄보디아를 방문하기도 했다.
검찰은 박 회장이 지난 2009년 캄보디아에 세운 해동엔지니어링&건설과 부산저축은행의 SPC들이 밀접하게 연관됐다는 물증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저축은행에서 나간 돈이 SPC를 거쳐 ‘친노’ 박 회장에게로까지 이어졌는지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다. 일단 검찰은 수감 중인 박 회장을 상대로 오리무중인 3000억 원의 행방을 추궁하고 있다.
중수부의 한 관계자는 “박 회장이 입을 열지 않고 있다. 캄보디아 정부와의 공조 등 다른 방법을 모색하는 중”이라고 털어놨다. 그러나 현재 검찰은 수사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아직 캄보디아에선 제대로 된 금융거래 시스템이 확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캄보디아로 유입된 돈을 찾기도 어려운 마당에 그 돈이 또 다른 3국으로 나갔을 경우엔 사실상 자금 추적이 힘들다는 게 검찰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이런 가운데 정치권과 검찰 안팎에선 부산저축은행이 캄보디아에 투자한 돈 중 일부가 북한으로 들어갔다는 의혹이 확산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여권 전직 고위 관료는 “2007년 10월 개최된 고 노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간 정상회담 직전에 부산저축은행이 세운 회사 두 곳에서 북한으로 돈이 송금됐다는 첩보를 여권 핵심부가 입수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지금 중수부가 쫓고 있는 3000억 원 중 일부가 포함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귀띔했다.
검찰 역시 부산저축은행의 몇몇 SPC가 참여정부 당시 북한과 돈 거래를 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한다. 검찰의 또 다른 관계자는 “자본금 수억에 불과한 SPC들이 수백억을 부산저축은행으로부터 빌렸는데, 이 돈 흐름이 심상치가 않다. (구체적 내용은) 아직 밝히긴 어렵다”면서 “부산저축은행이 2007년 8월 캄보디아에 172억 원을 자본금으로 하는 ‘캄코뱅크’를 세웠는데 여기를 통해 오고 간 돈을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권은 이 내용을 최대한 ‘이슈화’한다는 전략을 검토하고 있다. 저축은행 국정조사에서 야권의 거센 공세가 예상되는 만큼 반격할 ‘거리’로 삼겠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의 한 초선 의원은 “요약하면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뒷거래를 했다는 것 아니냐”면서 “참여정부가 국민의 정부시절에 있었던 대북송금을 특검까지 하면서 사법처리했던 것을 감안하면 사실일 경우 그 책임을 면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여권 일각에선 참여정부가 부산저축은행의 캄보디아 투자에 전폭적인 지원을 했다며 그 ‘특혜’의 배경을 파헤치겠다는 의지를 내비치기도 한다. 지난 2006년 10월 금융감독원이 저축은행의 해외 PF 대출을 허용했고, 그로부터 한 달 뒤 고 노 전 대통령이 캄보디아를 방문한 이후 사업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는 것에 의심을 품고 있는 것이다. 또한 2007년 참여정부 주요 인사들 몇몇이 캄보디아에 여러 차례 방문한 기록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에 대해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이명박 정부 실세들이 연루된 저축은행 비리 본질을 호도하기 위한 것이다.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행위를 계속할 경우 심판을 받을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러한 정치권 공방과는 별개로 검찰은 부산저축은행이 투자했던 돈의 실체를 끝까지 규명한다는 방침이다. 검·경 수사권 조정과 관련해 얼마 전 사퇴 의사를 밝혔던 김준규 총장 역시 부산저축은행 수사는 임기와 상관없이 지속돼야 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검찰 내부에선 ‘북한’이 거론된 이상 수사가 계속될 수 있을지에 회의감을 품는 이들이 적지 않은 모습이다. 결국 이명박 대통령 의중에 따라 수사 향방이 정해질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고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로 한때 존폐 위기까지 내몰렸던 중수부로서는 더욱 부담감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한 검찰 고위 인사도 최근 사석에서 “내년 총선도 있는데…. 현 정권에서 섣불리 이 사안을 건드리려고 하겠느냐”면서 “사실로 드러나서 수사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고 하더라도 참여정부 대북송금 특검처럼 검찰이 맡지는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