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양에서 호랑이로 변신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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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7일 평창 알펜시아 리조트 스키점프대 앞에 정치인과 시민이 모인 가운데 ‘평창 유치’ 응원전이 펼쳐졌다. 등에 응원문구를 그린 주민들 모습.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평창 쾌거’의 4대 비결
IOC총회의 투표는 우리가 흔히 접하는 정치선거와는 아주 다르다. 작게는 수만, 많게는 수천만 명의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대중선거와는 달리 자기들만의 문화를 가진 100명 안팎의 IOC 위원들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명분, 하드웨어, 정부지원, 국민여론 등도 중요하지만 결정적으로 승부를 가르는 요소는 IOC 위원들을 만나 설득하는 구체적인 유치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기본적으로 비행기를 타고 외국을 다니며 IOC 위원 한 사람, 한 사람을 설득한 사람들의 공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즉, 흔히들 말하는 평창유치위의 ‘톱4’인 조양호 유치위원장, 이건희 IOC 위원, 박용성 대한체육회장, 김진선 특임대사와 문대성 IOC 선수위원, 프리젠테이션을 통해 스타로 떠오른 나승연 대변인 등의 공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유치위원회와 함께 7월 8일 귀국한 정병국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기자회견에서 “(유치위원회는) IOC 윤리규정에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IOC 위원들을) 접촉했다. 조그만 대회라 하더라도 IOC 위원들이 참석한다고 하면 직접 갔다. 이건희, 문대성 IOC 위원은 위원으로서의 활동에 집중하면서 접촉했다”고 설명했다. 이를 구체적으로 보면 유치위원회는 또 필드를 뛴 유치위 주요인사들의 정보를 취합해서 IOC 위원 한 명당 적게는 3장에서, 많게는 10장까지 구체적으로 성향, 취향 등을 분석해 정리했다고 한다. 이를 크로스체킹(교차확인)을 통해서 누가 어떤 인적관계를 맺고 있는지까지 확인했다. 이 작업을 통해 유치위는 최종 투표를 앞두고 자체 분석을 통해 48~64표(98~100명 참석 전제)를 얻을 것으로 예상했다. 투표수가 95표로 줄었는데도 63표가 나왔으니 최대치를 넘는 득표가 나온 것이다. 나름 IOC 위원들에 대한 로비가 제대로 효과를 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IOC 내부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김운용 전 IOC 부위원장은 “전체적으로 88서울올림픽 때부터 쌓아온 한국의 스포츠계 성과, 정부 지원, 유치위 활동, 국민의 염원, 신장된 한국의 국력 등 이번 평창 쾌거에는 다양한 요인이 밑바닥에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2007년 과테말라 총회 패배 이후 집권한 현 정부가 지난 4년간 가용자원을 최대한 활용하고, 이를 정리정돈하는 컨트롤타워 노릇을 제대로 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즉, 여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건희 삼성 회장을 사면, 복권해 IOC에서 활동하도록 조치했고 이후에도 다양한 유치활동을 정부가 중심이 돼 하나로 엮어냈다는 것이다.
김 전 부위원장은 “올림픽과 같은 메이저 이벤트는 G20 수준의 주요국가가 아니면 힘들다. 이들 중에서 한국처럼 거국적인 차원에서 유치활동을 펼치는 나라는 드물다. 이 때문에 IOC 위원들 사이에서는 한국의 이런 응집된 문화가 부럽다는 말이 많이 나오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세 번째는 삼성의 힘이다. 삼성은 이미 한국을 넘어 글로벌기업, 그 중에서도 최고 수준으로 발돋움했다. IOC 스폰서 등 막강한 경제력은 물론이고, 외국에서 기업이미지도 아주 좋다. 명문대학을 나온 외국인들이 삼성(해외지사)에 입사하기를 원하고, ‘삼성명함’이 신원보증서처럼 여겨질 정도다. 여기에 전 세계에 퍼져있는 삼성 임직원들이 갖고 있는 영향력, 조직력, 정보력 등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하다. 이번 유치과정에서 이건희 삼성 회장은 몸을 낮춰 동료 IOC 위원들을 ‘접대하는 수준’으로 대했다. 지난 1년 반 동안 11차례에 걸쳐 170일간 해외 출장을 다니며. IOC 위원 110명을 최소 한 번 이상씩 만났다고 한다.
여기에 영어에 능통한 둘째사위 김재열 대한빙상연맹회장(제일모직 사장)까지 거의 외국에 살다시피하며 이 회장을 도왔다. 7일 유치가 확정된 후 눈물을 보일 정도로 그간 총력을 기울인 것이다. 프랑스 안시의 유치위원장이 삼성을 겨냥해 “나는 특정 기업을 위해 올림픽 유치에 나서지 않았다”고 말한 것이 오히려 부메랑이 돼 IOC 위원들의 반발을 샀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이번 유치활동에서 삼성파워는 강력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유럽 등 외부환경도 평창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2010·2014 평창 유치 도전 당시, 유치위원회 국제사무총장을 역임했고 이번에는 국제자문역을 맡고 있는 윤강로 씨는 “한국이 우려했던 토마스 바흐 IOC 부위원장(독일)의 정치력이 발휘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즉, 워낙에 평창이 막강하니 이번에는 바흐가 무리수를 두지 않았다는 분석이 많다. 지금 상태로는 가만히 있으면 2013년 무혈입성을 하다시피 차기 IOC 위원장이 되고 그러면 최대 12년 동안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데 괜히 반발을 살 수 있는 ‘압력’을 행사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 오히려 바흐에게는 자신이 IOC 위원장이 되는 데 큰 부담이 됐던 뮌헨을 덜었다고 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이번 투표에서 경계했던 유럽표 가운데 절반 이상이 평창으로 쏠렸고, 특히 2020하계올림픽과 2022동계올림픽 유치를 희망하는 주요 유럽국가의 IOC 위원들이 평창의 새로운 지평을 선택했다고 후문이 계속 나오고 있다.
#평창의 과제
올림픽을 전문으로 취재해온 영국의 한 기자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올림픽 유치가 결정되면 유치도시는 양에서 호랑이로 변한다.” 이는 유치전까지는 IOC 위원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간이라도 내줄듯이 고분고분해야 하지만 일단 유치가 결정되면 수많은 이해관계로 인해 IOC 및 IOC 위원들과 힘겨루기를 벌인다는 뜻이다.
평창유치위원회의 윤강로 국제자문은 “유치도 유치지만 사실 성공개최를 위한 준비과정이 더 어렵고, 더 중요할 수 있다. IOC 내부를 더 잘 아는 사람이 필요하다. 예컨대 유치 때는 악역이 필요 없지만 대회준비과정에서는 IOC를 상대로 따질 건 따지고, 요구할 것은 요구하는 전문가가 필요하다. 88서울올림픽, 2002한일월드컵 그리고 각종 국제대회를 한국에서 많이 치러본 사람들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올림픽준비에는 조직위원회가 중심이 된다. IOC 규정에 따라 유치에 성공한 도시는 5개월 이내에 조직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 당연히 조직위원회의 수장인 조직위원장이 누가 되느냐가 중요하다. 보통 유치위원장이 조직위원장을 맡는 것이 관례지만 통상 정치권력의 의중과 IOC의 입김이 크게 작용한다. 평창의 경우, 현재 조양호 유치위원장과 김진선 특임대사가 강력한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조양호 유치위원장은 유창한 영어를 바탕으로 한 신선한 리더십이, 김진선 특임대사는 강원도지사를 지낸 강력한 행정력에 국내외 폭넓은 인맥이 각각 강점이다. 하지만 워낙에 국민적인 관심을 많이 받고, 인사 및 재정에서 큰 권한이 있는 까닭에 정치권력과 가까운 인사가 발탁될 가능성도 있다. 88서울올림픽의 경우에도 노태우 전 대통령, 육사 출신으로 체육부 장관을 거친 고 박세직 씨 등 실력자가 조직위원장을 맡은 바 있다.
IOC는 개최도시와의 각종 업무를 협의하는 조정위원회를 구성하는데 보통 실사단(평가단)단장을 지낸 이가 조정위원장을 맡는다. 이를 기준으로 하면 평창은 구닐라 린드버그(64·스웨덴) IOC 위원이 총책을 맡을 가능성이 크다. 각종 난제들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린드버그가 중요한 까닭에 린드버그와 말이 잘 통하는 국제통의 역할도 중요하다.
한편 흑자올림픽, 아니 흑자가 아니더라도 최소한 경제적 올림픽으로 치러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유치 확정 직후 평창동계올림픽의 직간접 경제효과가 작게는 16조 원부터 많게는 65조 원에 달한다는 보도가 잇달아 나오고 있다. 하지만 ‘동계올림픽 잔혹사’라는 말이 말해주듯 올림픽이 본격적으로 비대화된 1990년대 이후 동계올림픽 개최도시는 거의 모두 무용지물이 된 거대 시설물관리 등으로 인한 막대한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평창의 경우도 낙관은 금물이다. 일단 강원도가 100% 지분을 갖고 있는 강원도개발공사는 지긋지긋한 알펜시아 저주를 털어버려야 한다. 2004년부터 평창군 대관령면 용산리와 수하리 일대 489만 2560㎡에 1조 6900억 원을 들여 조성에 들어갔다. 스키장, 골프장, 고급빌라와 콘도 등의 시설이 2010년 7월 완공됐다. 하지만 분양이 절반도 안 되며 7000억 원의 빚더미에 올랐다. ‘올림픽 유치를 위한 필수 시설’이라는 명분 하에 사업을 밀어붙였고, 하루 1억 747만 원씩 연간 392억여 원의 이자를 부담하는 처지가 됐다. 물론 이번 평창유치로 극적인 반전이 기대되고 있지만 좀 더 지켜볼 일이다.
이밖에 정부 차원에서 평창특별법을 재정해 구체적인 지원책을 마련하고, 또 세계인의 이목을 끌어들이고, 동북아평화에 기여하는 등 성공개최를 위해 ‘남북단일팀 구성’ 등도 추진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유병철 스포츠전문위원 einer@ilyo.co.kr
김운용 전 IOC 부위원장 ‘평창 쾌거’ 소회
“로비의 스타일이 달라졌다”
“이제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그리고 나는 이제 역사가 됐다.”
일본 게이오대학의 방문교수로 현재 일본에 머무르고 있는 김운용 전 IOC 부위원장이 이번 평창 쾌거와 관련해 의미심장한 말을 전했다. IOC나 한국스포츠외교에 바야흐로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는 것이다.
김 전 부위원장은 “이제 나도 역사가 된 느낌이다. 요즘 IOC를 보면 사마란치나 내가 IOC를 이끌었던 시대와는 확실히 다른 것 같다. 과거에는 사마란치와 내가 협력하면 안 되는 것도 되게 만들었다. 객관적으로 부족한 것이 많았던 태권도를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만든 것이 대표적인 예다. 그런데 이번 평창 유치 성공을 보니 자크 로게 위원장이나, 토마스 바흐 부위원장 등이 영향력을 크게 행사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2009년 오바마 대통령의 시카고와 사마란치의 마드리드가 탈락하고,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가 2016년 하계올림픽을 유치할 때부터 그런 조짐이 보였는데 이제 IOC 내부의 투표 패러다임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물론 아직도 유럽 백인들이 IOC의 주류를 장악하고 있지만 영향력이 많이 퇴색했다는 것이다.
한국스포츠 외교와 관련해서도 “예전에는 IOC 위원 한 명의 개인기에 전적으로 의존했다. 그 과정에서 고생도 많이 하고, 찬사도 많이 들었다. 하지만 이번 유치활동을 보니 삼성을 활용하는 이건희 IOC 위원, 문대성 선수위원은 물론이고, 정부, 대한체육회, 강원도 등 가용한 모든 자원을 다 활용했다. 이것이 제대로 효과를 냈다고 할 수 있다. 향후 한국 스포츠외교는 다양한 루트를 확보하게 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IOC의 중요한 스폰서인 삼성파워는 물론이고, 문대성, 김연아 등 스포츠스타 출신과 나승연 대변인과 같은 스포츠외교관이 역량을 더 키울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전 부위원장은 현재 일본에 머물며 친분이 두터운 IOC 위원들에게 평창을 지지해줘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고 있다. 7월 17일 귀국 후에는 <김운용이 만난 거인들> 단행본 발간에 전념할 계획이다. [철]
“로비의 스타일이 달라졌다”
“이제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그리고 나는 이제 역사가 됐다.”
일본 게이오대학의 방문교수로 현재 일본에 머무르고 있는 김운용 전 IOC 부위원장이 이번 평창 쾌거와 관련해 의미심장한 말을 전했다. IOC나 한국스포츠외교에 바야흐로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는 것이다.
김 전 부위원장은 “이제 나도 역사가 된 느낌이다. 요즘 IOC를 보면 사마란치나 내가 IOC를 이끌었던 시대와는 확실히 다른 것 같다. 과거에는 사마란치와 내가 협력하면 안 되는 것도 되게 만들었다. 객관적으로 부족한 것이 많았던 태권도를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만든 것이 대표적인 예다. 그런데 이번 평창 유치 성공을 보니 자크 로게 위원장이나, 토마스 바흐 부위원장 등이 영향력을 크게 행사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2009년 오바마 대통령의 시카고와 사마란치의 마드리드가 탈락하고,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가 2016년 하계올림픽을 유치할 때부터 그런 조짐이 보였는데 이제 IOC 내부의 투표 패러다임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물론 아직도 유럽 백인들이 IOC의 주류를 장악하고 있지만 영향력이 많이 퇴색했다는 것이다.
한국스포츠 외교와 관련해서도 “예전에는 IOC 위원 한 명의 개인기에 전적으로 의존했다. 그 과정에서 고생도 많이 하고, 찬사도 많이 들었다. 하지만 이번 유치활동을 보니 삼성을 활용하는 이건희 IOC 위원, 문대성 선수위원은 물론이고, 정부, 대한체육회, 강원도 등 가용한 모든 자원을 다 활용했다. 이것이 제대로 효과를 냈다고 할 수 있다. 향후 한국 스포츠외교는 다양한 루트를 확보하게 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IOC의 중요한 스폰서인 삼성파워는 물론이고, 문대성, 김연아 등 스포츠스타 출신과 나승연 대변인과 같은 스포츠외교관이 역량을 더 키울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전 부위원장은 현재 일본에 머물며 친분이 두터운 IOC 위원들에게 평창을 지지해줘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고 있다. 7월 17일 귀국 후에는 <김운용이 만난 거인들> 단행본 발간에 전념할 계획이다. [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