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나면 선발”, “다음 생에도 마무리”
▲ 최고의 마무리로 꼽히는 ‘레전드’ 김용수와 현역 최고 마무리 오승환이 만났다. 새삼 달라진 마무리 투수의 위상에 대해 김용수는 “요즘 투수들 복에 겨웠다”며 껄껄 웃는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김용수(김): 사석은 처음이다. 공석에선 2004년 LG 2군 투수코치를 할 때 단국대와의 연습경기에서 처음 봤다. 당시 LG 투수들을 챙기기 바빠 (오)승환이의 투구를 눈여겨보지 않았다. 하지만 주변에서 하도 “단국대 투수 오승환 공이 참 좋다”는 말을 자주 해 누군지는 잘 알고 있었다.
오승환(오): 나도 사석에선 선배님을 처음 뵙는다. 하지만, ‘당연히’ 선배님에 대해선 잘 알고 있었다. ‘LG의 레전드’로 불릴 만큼 최고의 투수가 아니었나. 내가 직접 마무리 투수를 맡다 보니까 뼈저리게 느끼는 건데, 227세이브는 정말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웃음).
박: 역대 최고 마무리와 현역 최고의 마무리로 꼽힌다. 마무리는 어떤 계기로 시작했나.
김: 1985년 MBC(LG의 전신)에 입단할 때 꽤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런데 이게 웬걸, 프로 첫 해 특별한 보직이 없었다. 팀 사정에 따라 오늘 선발로 등판했다가 내일 구원으로 나가는 일이 연속됐다. 1986년 고 김동엽 감독이 LG 사령탑으로 부임했을 때 투수코치에 “선발과 마무리 가운데 하나를 맡겨 달라”고 요청했다. 이틀이 지나서 투수코치가 “앞으로 마무리를 맡아라”고 지시했다. 그게 마무리 인생의 시작이었다.
오: 2005년 삼성에 입단했을 때 첫 번째 보직은 마무리 앞에 등판하는 셋업맨이었다. 마무리 욕심이 있었지만, 내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보직이 아니었다. 그러다 원정경기 중이던 어느 날 아침, 투수코치님이 내 방으로 전화를 거셨다. “승환아, 오늘부터는 마지막에서 대기하라”고 하시고는 전화를 끊으셨다. 무슨 말씀이신가 싶었는데, 그날 경기에서 가장 마지막 이닝에 등판했다. 경기가 끝나고, 기록을 보니 내 이름 옆에 홀드 대신 세이브가 적혀 있었다.
박: 1980, 1990년대 마무리와 2000년대 마무리는 여러 면에서 차이가 크다.
김: 1986년 기록을 봐라. 60경기에 등판했는데 투구이닝이 무려 178이닝이었다. 말이 마무리 투수지, 3이닝 이상은 우습게 던졌다. 지금도 기억이 생생한데 그해 MBC가 치른 9연전 가운데 내가 8경기에 나와 3승5세이브를 챙겼다. 그것도 지금처럼 마지막 이닝에만 나온 게 아니었다. 6회부터 등판해 경기를 마무리한 적이 셀 수 없이 많았다. 사람들이 누가 선발이고, 마무리였는지 모를 정도였으니까. 그래도 그때는 그게 정상인지 알고, 군말 없이 던졌다(웃음).
오: 선배님처럼 6회부터 등판한 경기는 한 번도 없었다. 마지막 1이닝을 막았던 게 대부분이었던 것 같다. 물론 한국시리즈 때는 4이닝까지 던진 적도 있다. 하지만 정규시즌엔 3일 연속 등판하거나 3이닝 이상 던지면 꼭 하루는 휴식일이 제공됐다.
박: 마무리 투수는 매일 등판을 준비해야 한다. 5일에 한 번씩 등판하는 선발투수보다 자기관리에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할 것 같다.
김: 승환이 말을 들으니 지금 투수들은 복에 겨워 사는 것 같다(웃음). 우리 때는 정말 마무리라도 던질 투수가 없으면 지는 상황에서 등판하기도 했다. 매일 등판하니 몸 관리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주변에서 나보고 “김용수는 술 담배를 멀리하고 집과 야구장만 오간다”고 했는데, 솔직히 그거 다 유언비어였다. 남들 하는 거 다하고 다음 날 등판이어도 마실 술 다 마셨다(웃음). 그런데도 마흔이 넘도록 현역에서 뛴 건 아무리 폭음해도 다음 날 유니폼을 입을 땐 선수로서 최상의 몸을 만들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16년 동안 현역에 있으면서 러닝을 거른 게 딱 두 번밖에 없었다니까.
오: 나는 잠을 푹 자는 편이다. 하루 7, 8시간씩 자는 것 같다. 지난해까진 과음을 하기도 했는데, 올 시즌은 최대한 자제하고 있다. 선배님 말씀처럼 투수는 운동장에서 어떻게 준비를 하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
박: 어느 야구전문가가 그랬다. “김용수와 오승환은 마무리 투수가 갖춰야 할 모든 조건을 충족한다”고. 마무리가 갖춰야 할 모든 조건이란 무엇인가.
김: 마무리하면 강속구 투수를 연상할 거다. 1990년대 초반만 해도 선동열, 박동희를 빼면 나보다 속구 구속이 빠른 투수는 드물었다. 시속 140㎞ 중반 이상을 던지는 투수가 흔치 않았다. 나도 구속 덕을 본 게 사실이다. 그러나 마무리도 투수다. 투수에게 가장 중요한 건 제구다. 1980년대만 해도 난 변화구라곤 슬라이더밖에 던지지 못했다. 다행히 타자들의 정교함이 떨어졌던 시절이라, 변화구만 요리조리 잘 던져도 꽤 효과를 봤다. 하지만, 요즘 타자들은 변화구 대처능력이 좋아서 웬만한 변화구엔 속지 않는다. 오히려 정확한 제구로 타자들의 타격 타이밍을 빼앗는 게 유리하지 않나 싶다.
오: 같은 생각이다. 마무리의 첫 번째 덕목은 제구다. 나 같은 경우도 위기에 몰렸을 땐 세게 던지려는 생각보단 포수가 원하는 코스로 정확히 던지려는 데 초점을 맞춘다. 내가 생각하기에 진정한 힘은 시속 160㎞를 던지는 어깨가 아니라 시속 145㎞의 속구를 원하는 코스로 던질 줄 아는 영리함과 제구라고 본다.
김: (갑자기 오승환을 바라보며) 아니 그걸 잘 아는 투수가 6월 28일 잠실 LG전 10회 때는 왜 윤상균한테 슬라이더를 던졌어? 그냥 속구만 던져도 칠 타자들이 없는데, 투 스트라이크 노 볼에서 슬라이더를 던지다가 홈런 맞을 뻔했잖아.
오: (윤)상균이가 단국대 동기다. 장단점을 잘 안다고 자부했다. 아마도 속구를 노리리라 판단했다. 그래서 내 딴에는 유인구를 던진다고 던졌는데, 변화구를 노릴 줄은 몰랐다. 만약 다른 구장이었으면 담장을 넘어가지 않았을까 싶다(웃음).
김: 마무리는 속구가 최고의 무기이자 최상의 변화구란 사실을 잊으면 안 돼. 특히나 몸쪽 속구는 제구만 잘되면 마구다. 그런데도 요즘 투수들은 몸쪽 속구를 던지지 못한다. 왜냐? 타자가 맞을까 겁이 나고, 가운데로 몰려 큰 걸 맞을까 두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무리는 ‘타자가 좀 맞으면 어때’하는 식의 배포가 있어야 한다.
박: 김 감독은 현역 시절 3번이나 최우수 구원투수에 올랐다. 16년 동안 20세이브 이상도 7번 이상 기록했다. 오승환도 세이브 부문 1위에 3번이나 올랐고, 3번 이상 30세이브 이상을 기록했다. 하지만, 대우나 명성에서 보면 지금의 마무리가 훨씬 앞선다는 생각이다.
김: 지금 마무리는 선택받은 선수들이다. 우리 때는 완전 노가다였다(웃음). 대우도 형편없었다. 아무리 세이브를 많이 기록해도 다음 해 연봉은 25% 상한선에 묶여 그 이상 오르지 못했다. 1986년 1점대 평균자책에 26세이브나 올렸지만, 다음 해 연봉은 300만 원만 올랐다. 더 웃긴 건 당시는 세이브 2개를 1승으로 쳐줬다는 것이다.
오: 요즘은 확실히 예전보다 마무리 투수가 많이 부각되는 것 같다. 류현진(한화)이 나타나기 전까지 연봉 상승률도 내가 제일 높았다(웃음). 하지만, 지금 마무리에 대한 대우는 당연하다고 본다. 마무리는 선발보다 선수생명이 길지 않다. 등판 부담감과 스트레스도 매우 높고.
박: 마무리 투수들에게 물어보면 힘들기도 하지만, 성취감과 희열이 말도 못하게 강하다고 한다. 그 맛에 마무리를 맡는다는 투수들도 많은데.
김: 이유가 있다. 1점 차 승부에 등판하면 모든 이의 시선이 투수에게 집중한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시쳇말로 피가 마른다. 내 공 하나로 동료의 다음 해 연봉이 결정되기에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팽팽한 긴장감이 더해진다. 그때 타자에게 이기면 뭔가가 폭발하듯 굉장한 희열감이 터져 나온다. 하지만, (손사래를 치며) 다시 태어나면 선발로 뛰면 뛰었지 절대 마무리는 맡지 않을 거다(웃음).
오: 일반 팬들은 기록만 보고 “넌 오늘 쉬었잖아”하실지 모르지만, 마무리는 1점 차로 지고 있을 때도 몸을 풀어야 한다. 언제 역전해 등판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선발은 연습시간도 정해져 있고, 자기 시간도 많지만, 정말이지 마무리는 정규시즌 땐 항상 등판대기를 해야 한다. 그런 점은 정말 고달프지만,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고 마운드 위에서 동료와 하이파이브를 나누면 모든 것을 보상받는 기분이다. 난 다시 태어나도 마무리로 뛰고 싶다(웃음).
박: 반대로 블론세이브를 기록하는 날엔 죽을 맛일 듯싶다.
김: 지금도 기억에 선한데, 1987년인가 연속으로 블론세이브를 범했을 때 아이들이 뒤에서 “방화범, 김용수!”하고 놀리곤 했다. 그때 충격으로 한동안 관중이 없을 때만 운동장에 나가 훈련했다. 마무리는 심적으로 참 힘든 보직이다.
오: 마무리는 9경기를 잘 막아도 1경기에서 블론세이브를 범하면 앞선 9경기는 모두 어디론가 사라진다. 4일간 열심히 준비해 5일째 승을 따내려고 등판했던 선발투수에게도 정말 미안하다. 간혹 선발투수가 내 등을 두들겨 줄 때가 있는데, 그럴 땐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다.
박: 가장 기억에 남는 마무리 경기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김: 태평양과 맞붙었던 1994년 한국시리즈 1차전이다. 7회까지 1-1 동점이었다. 8회 초 1사 1, 2루가 되자 선발 이상훈이 내려갔다. 당시엔 내가 등판할 줄 알았다. 그런데 차동철이 등판하지 뭔가. 아쉽게 볼넷이 나오면서 1사 만루가 됐고, 그제야 내가 마운드에 올랐다. 속으로 ‘이게 뭐하자는 플레이인가’ 싶었다(웃음). 1사 1, 2루와 1사 만루는 부담감이 하늘과 땅 차이다. 그때 타자가 김동기였는데, 투 스트라이크 스리 볼까지 가는 접전 끝에 백도어 슬라이더를 던져 병살타를 유도했다. 그때 잘 막은 게 LG가 두 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나도 덕분에 한국시리즈 MVP에 올랐고.
오: 2005년 두산과의 한국시리즈 2차전이 기억에 남는다. 당시 연장 10회 2-2 동점에서 무사 1, 2루 위기에 마운드에 올랐다. 운 좋게 무실점으로 막으면서 3-2 역전에 성공했다. 그땐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던졌는데 선배님처럼 한국시리즈 MVP에 오르는 행운까지 누렸다.
박: 한국 프로야구 30년사에서 가장 돋보이는 마무리 투수들이었다. 빠르면 내년 시즌에 후배 오승환이 선배 김용수의 세이브 최다기록을 깰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두 사람의 감회가 남다를 듯싶다.
김: 기록은 언제든 깨지라고 있는 거다. 지금은 투수 분업화가 잘 돼 있어 오승환이 아니어도 누군가 내 기록을 깨리라 본다. 가끔 “요즘 마무리처럼 철저히 세이브 상황에서만 나왔다면 300세이브 이상도 기록했을 것”이라는 말을 듣는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승환이가 10년 이상 몸 관리를 잘해서 400세이브 이상을 기록했으면 좋겠다.
오: 지난해 부상을 당하면서 목표를 말하는 게 두려워졌다. 하루하루 열심히 살다 보면 좋은 결과가 있지 않을까 싶다. 솔직히 선배님처럼 세이브 부문에선 큰 기록을 남기고 싶다. 무엇보다 앞에서 말했 듯 마무리 투수도 김 선배처럼 장수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그것이 김 선배가 개척하신 길을 이어가는 일이라 본다.
마지막으로 두 사람이 정의하는 ‘마무리란 무엇인가’를 듣고 싶다.
김: 마무리는 곧 고달픔이다. 쉬는 날도 없고, 항상 긴장하기 때문에 부상 확률도 높다. 비록 1이닝 정도를 던지지만, 선발의 8이닝만큼이나 힘도 든다. 그러나 경기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공을 던진다는 의미에서 보람도 꽤 크다. 어쩌면 마무리는 경기결과뿐만 아니라 모든 이의 환희와 고통을 마무리하는 이들인지 모르겠다.
오: 나도 같은 생각이다. 마무리는 내 인생이 아니라 다른 이의 인생을 책임지는 역할이라고 본다. 사명감과 책임감이 없으면 좀체 수행하기 어려운 보직인 것 같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