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세가 부른다면 평양이라도 달려갈거야
▲ 축구 인생 전반전을 성공적으로 뛰고 있는 박지성을 만나 후반전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박지성한테 이번 휴가는 시즌 중일 때보다 더 바쁘게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베트남 자선경기와 자신의 이름을 딴 동아시아유소년축구대회 등을 진행하면서, 그는 남다른 보람을 갖게 되었다.
“베트남에서 열린 아시안드림컵은 여러 가지 면에서 의미가 컸어요. 대회 전후로 진행상의 문제는 있었지만, 우리가 목표로 했던 소기의 성과는 이뤘다고 보거든요. 오랜만에 즐겁게 경기를 했어요. 어려운 상황에서도 베트남까지 찾아준 선수들, 그 무더위 속에서 웃음을 잃지 않고 열심히 뛰어준 ‘친구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어요. 내년에도 아시안드림컵을 열 계획인데, 이번에 경험한 일들을 통해 더 의미있는 자선경기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겁니다.”
# 평양
베트남 자선경기에 참가한 선수들 중 일본의 미우라와 정대세는 자신들의 이름을 딴 자선경기를 열고 싶다는 바람을 피력했다. 특히 정대세는 자선경기를 열게 될 경우, 제일 먼저 초청하고 싶은 선수로 박지성을 꼽았다.
“제 여건만 허락된다면, 당연히 가야죠. 평양이요? 그럼요. 다른 선수들이 날 위해 장소 불문하고 베트남을 찾았듯이 절 초청한 선수의 자선경기가 평양에서 열리든, 일본에서 열리든, 갈 수만 있다면 갈 예정이에요. 그게 예의라고 생각해요.”
# 타이틀
베트남 자선 경기 때 박지성은 ‘선수’가 아닌 ‘이사장’이었다. 대회의 호스트로서 모든 사항들을 점검하며 대회 진행을 준비했고, 비행기로 도착하는 선수들을 반갑게 맞이하느라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그래서 생각난 질문이 박지성이란 이름 뒤에 어떤 타이틀이 붙는 게 좋은지에 대한 궁금증이었다.
“아직은 제 이름 뒤에 이사장이란 타이틀이 붙는 게 어색하죠. 그러나 나중에는 붙을 수밖에 없는 타이틀이기 때문에 익숙해지려고 합니다. 학교에선 대학원생 신분인데, 학위를 따려면 세미나도 해야 하고 교수님들이 내주신 과제도 충실히 해야 하니까 학생인 것도 좋고요, 가장 좋은 건, 제 이름 뒤에 아무 것도 안 붙는 것입니다(웃음).”
박지성은 현재 명지대 체육학부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2010학년도 명지대 체육학부 석사과정에 등록해 3학기를 마친 그는 이번 휴가 동안 대학원에서 ‘유소년 축구 부상 관리 현황’을 주제로 세미나 발표를 하는 시간도 가졌다. 박지성의 지도 교수인 박종성 체육학부 교수는 “박지성이 은퇴 후의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는 얘길 듣고 영국에 있는 동안 공부를 계속할 것을 권유했었다”면서 “운동과 공부를 병행한다는 게 힘들지만, 전화와 인터넷 강의, 리포터 제출 등의 방법으로 3학기를 마쳤다”고 설명했다. 또한 박 교수는 “세미나 준비하면서 박지성이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았다. 중간에 포기할 뻔했는데, 스스로 위기를 잘 극복해 갔다. 석사와 박사 과정까지 마치면 명지대 교수로 초빙할 계획도 갖고 있다”고 밝혔다.
# 소개팅
박지성이 휴가차 귀국하기 전, 아버지는 “휴가 때 지성이가 소개팅을 할 지도 모른다”고 귀띔했다. 실제로 여성을 소개 받은 적이 있을까. 아버지는 “날 통해서가 아닌 다른 사람을 통해 만난 것 같은데, 이렇게 다시 출국해 버렸으니, 그 만남이 이어지겠는가”라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박 씨는 “여유 있게 만남을 자주 가지면서, 사람이 편해지고, 감정이 싹트고, 그래야 영국 가서 자주 연락도 하고, 인터넷으로 화상 통화도 하고 그러는데, 한두 번 만났다가 헤어지는 사람과 그 인연을 이어간다는 게 어려운 일이다”면서 “지성이가 축구를 그만둬야 제대로 된 연애를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설명한다.
박지성에게 자신과 관련된 열애설 기사가 나올 때마다 어떤 생각이 드는지를 물었다.
“언론에서 제 연애사에 대해 상당히 관심이 많다는 걸 새삼 느끼게 돼요. 이제 박지성이란 사람한테 나올 얘기가 열애설밖에 없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그만큼 결혼할 나이가 됐다는 거겠죠? 하긴 홍콩에 갔을 때 홍콩 기자들도 그 얘길 묻더라고요.”
# 설문조사
‘여자 아나운서들이 꼽은 결혼하고 싶은 남자 1위’ ‘여자 연예인들이 꼽은 결혼하고 싶은 남자 1위’ ‘대한민국 스포츠 스타 넘버 원’ 등등 그동안 <일요신문>에서 설문조사를 벌일 때마다 박지성은 1위에 이름을 올렸다. 설문조사 얘기를 꺼냈더니, 박지성 하는 말이, “그거 언제 적 설문조사예요? 아주 옛날 거 아니에요?”하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전 만인의 연인보다는 한 여자의 남자로 남고 싶어요. 그런데 그게 쉽지가 않네요.”
# 재계약
요즘 박지성을 인터뷰할 때마다 빼놓지 않고 물어보는 질문이 있다. 바로 맨유와의 재계약 여부다. 마침, 박지성을 만난 날 ‘퍼거슨 감독이 박지성과의 재계약을 원하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가 나왔다. 재계약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직접 물었다.
“아직 협상이 진행 중이에요. 그 협상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는 알 수가 없어요. 축구선수들의 계약이 한 쪽에서 하고 싶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잖아요. 양측이 모두 만족해야지만, 사인을 할 수 있는 거니까요. 맨유요? 당연히 남고 싶죠. 하지만 협상이 잘 되지 않으면, 다른 팀으로 갈 수밖에 없어요. 전 정말 이적이든 잔류든, 마음 편히 생각하거든요. 기자 분들이 더 민감하신 것 같아요.”
숱한 이적설들에 대해선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말하는 박지성. 지금까지 자신을 둘러싼 이적설이 비일비재했고, 단 한 번도 에이전트의 입을 통해 직접 전해 들은 내용이 없기 때문에 이적설 기사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단다.
아버지 박 씨 또한 아들의 재계약 여부를 크게 마음에 두지 않고 있었다. “지금 맨유 데이비드 길 사장이 휴가를 갔다. 이번 주 돌아오면 1차 협상에서 서로 주고 받았던 사안들을 놓고 다시 2차 협상을 가질 예정이다. 지성이 계약 기간은 1년 더 남았고, 재계약 시점은 8월 말까지라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고 있다.”
# 애슐리 영
맨유는 얼마전 애스턴 빌라의 애슐리 영을 영입했다. 박지성과 같은 포지션의 스타플레이어라 매스컴에선 박지성과 치열한 경쟁을 벌일 것으로 예상했지만, 정작 박지성은 담담한 속내를 내비쳤다.
“지금까지 제 포지션에 많은 선수들이 영입됐었어요. 오베르탄, 발렌시아 등등. 애슐리 영이 합류한다고 해도 그 경쟁 체제는 크게 달라지지 않아요. 그건 맨유 선수라면 감당해야 하는 부분이고요. 맨유는 빅클럽이고, 계속 좋은 선수들을 보강해야 하기 때문에 좋은 선수들이 들어오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박지성이 애스턴 빌라와 맞붙었을 때 상대팀 선수로 본 애슐리 영은 어떤 선수였을까.
“프리미어리그 올해의 영 플레이어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아주 훌륭한 선수예요. 애스턴 빌라에서도 좋은 능력을 펼쳐보였고, 영국대표팀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내는 선수죠. 애슐리 영의 합류로 맨유 스쿼드가 한층 탄탄해졌다는 느낌을 줘요.”
# 지동원
2011-2012시즌에는 프리미어리그에서 세 명의 한국 선수들이 활약할 예정이다. 가장 ‘막내’는 선덜랜드에 입단한 지동원. 이미 왕고참이 된 박지성으로선 막내의 합류를 내심 반기면서도, 약간의 걱정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제가 처음 네덜란드에 갔을 때 기대와 걱정이 반반이었어요. 동원이도 같은 기분일 거예요. 그러나 (이)청용이가 잘 헤쳐 나가고 있잖아요. 동원이도 청용이를 보면서 많은 걸 보고 배웠으면 좋겠어요. 전 맨유 입단 후 매 순간을 위기라고 생각했어요. 언제 제 자리가 바뀔지 모른다는 생각에 긴장감을 놓지 않고 살았어요. 동원이도 그런 마음가짐으로, 프리미어리그 무대에 잘 적응해 가길 바랍니다.”
# 전반전
박지성은 <다큐멘터리 3일>이란 방송에서 자신의 축구 인생을 ‘3-0으로 앞선 전반전’이라고 표현했다. 그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전반전이란 의미는 현역 선수일 때를 말하는 거예요. 은퇴하게 되면 이제 후반전을 뛰게 되겠죠. 3-0이란 숫자는 축구선수로서 큰 성공을 이뤘고, 그 정도의 성공을 스코어로 표현한다면 3-0 정도 될 것 같았어요. 하지만 이제 최고의 자리에서 내려오면서 점점 실점을 하게 될 겁니다. 아무래도 (맨유에) 좋은 선수들이 보강되고, 나이도 한 살 더 많아졌고…. 이전 시즌과는 조금 차이가 있겠죠? 그렇다고 고꾸라지진 않아요. 아직은 가야 할 길이 남아 있으니까요.”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