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이냐 전략이냐 ‘알쏭달쏭’
▲ 손학규 민주당 대표의 최근 좌향좌 행보를 놓고 진정성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 15일 민주당 원내대표실에서 가진 긴급 의원총회에서 손학규 대표가 자리하고 있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손 대표의 최근 일정은 서민층의 문제에 야당의 역할을 강조하며 내걸었던 ‘민생 진보’ 노선보다는 훨씬 왼쪽으로 설정돼 있다. 그는 지난 13일 ‘2차 희망대장정’을 시작했다. 지난 1월부터 100일간의 1차 희망대장정에서 전국을 돌며 삶의 현장을 둘러본 데 이어, 2차 대장정에 공식 돌입한 것이다.
손 대표는 첫 일정으로 14일 극심한 노사갈등을 겪고 있는 부산 영도구 한진중공업을 찾았다. 이 자리에서 그는 “한진중공업 문제는 고용불안, 정리해고의 불안에 떨고 있는 전 국민의 문제이고 민생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정치권의 문제”라며 “지금 국민은 한진중공업을 통해서 재벌이라는 집단이 국민을 어떻게 대하는지 지켜보고 있다”고 강한 견제 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국민들은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에게 ‘해고자를 복직시켜 달라’, ‘김진숙 씨를 살려 달라’고 편지를 쓰고 있다”면서 “이제 조 회장이 직접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가 이날 한진중공업을 찾은 것은 야권통합의 대상인 이정희 민주노동당, 조승수 진보신당,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가 모두 한진중공업 문제에 ‘올인’하고 있는 만큼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대응하는 인상을 줘서는 안 된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정동영 최고위원 등 당내 비주류 측을 견제하는 의미가 담겼다는 분석도 많다. 정 최고위원이 최근 회의에서 “민주당이 한진중공업 문제에 너무 미온적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쏴붙인 게 그의 부산행을 재촉했다는 얘기다.
그러나 손 대표의 ‘개입’은 그 정도의 수위에서 멈출 것으로 보인다. 손 대표는 15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정 최고위원이 “오는 30일 3차 희망버스는 제1야당의 당력을 걸고 결합할 필요가 있다. 최고위원회의를 85호 크레인 앞에서 개최하자”고 압박했으나, 즉답하지 않았다.
손 대표 측근들은 “그 정도까지는 힘든 것 아니냐”는 반응이다. 제1 야당 대표로서 먼저 국회의 입법권과 정부 견제력을 발휘해 조정하는 데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는 게 이유다. 혹여, 보수층과 여당으로부터 ‘무책임한 거리 정치’라는 공세를 받게 될 경우 자신의 지지기반인 중도층에서도 비난을 자초할 수 있다는 셈법이 담겨 있다.
손 대표가 노동문제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는 것은 자신의 노선에 대해 당 내의 시선이 엇갈리는 상황에서 선명성을 부각시키며 갈등 조정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주당의 대권주자로서 서민·중산층이란 과녁을 벗어나지 않겠다는 의지도 내보이고 있다. 그것이 그를 둘러싸고 “‘진짜 진보’냐, ‘의도적 진보’냐”라는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배경이다.
손 대표의 직접적인 발언을 분석해 봐도 스스로 중도와 진보 사이를 ‘전략적으로’ 오가는 정황이 감지된다. 그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자신의 이념노선에 대해 “지금은 진보의 시대”라며 “이명박 정권의 등장으로 겉으로는 보수주의가 승리하고 진보는 끝난 것처럼 보였지만 그때부터 복지 문제에 대한 비판적 성찰은 시작됐다”고 했다.
그는 이어 “진보와 보수를 크게 아울러야 집권할 수 있다”면서 “그런 점에서 내 개인적 성향을 어느 한 지점에 점으로 놓을 순 없다고 본다”고도 했다. 손 대표는 그러면서 한나라당 전력을 거론하는 데 대해 “나는 원래 진보다. (경기지사 시절에도) 손학규는 가장 진보적 정책을 취했다고 자부한다”고 강조했다. 자신의 노선 설정을 ‘시대의 흐름’에 맞추고 있음을 내비친 발언들이다.
하지만 아군과 적군을 떠나 정치권 인사 대부분은 그의 이념성향을 진보 쪽보다는 보수와 중도의 중간 지점에 있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이광재 전 강원도 지사는 최근 중국 연수를 떠나기에 앞서 “(차기 대선 경쟁에서) 손 대표와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간에 불꽃 튀는 경선이 있기를 희망한다”면서 “중도와 중도진보의 멋진 경선이 이뤄지면 의미 있는 결과가 탄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측근 인사마저 손 대표가 스스로 주장해온 ‘중도진보’의 적임자로 문 이사장을 선택한 것이다. 친노그룹의 정서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조승수 진보신당 대표는 “주요 의제에 대한 인식을 보면 손 대표는 보수적 자유주의자라는 느낌이 든다”면서 “더 적극적으로 해석해도 중도 자유주의 이상을 넘기 힘들다고 생각된다”고 했다. 조 대표는 “민주당 내에서 가장 진보적 자유주의자는 솔직히 정동영 의원”이라고도 평가했다.
손 대표는 ‘나는 진보다’라고 외치고 싶겠지만, 야권통합 협상을 벌여야 하는 상대가 그를 평가하는 ‘현실’과는 여전히 그 괴리가 크다. 이 역시 ‘리얼 진보’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실질적인 배경이 되고 있다.
손 대표는 당분간 민생 행보에 전력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 측근 의원은 “손 대표의 노선을 두고 말들이 많지만, ‘진보가 강화된 중도’로 보면 된다”면서 “지금은 중도와 진보를 아우르는 정책기조의 포지셔닝에 힘써야 할 국면”이라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손 대표는 중소상인(11일), 중소·벤처기업(12일), 중소기업중앙회(13일) 등을 차례로 만나며 애로를 듣고 자신의 구상을 내놓을 예정이다. 당 차원에서도 정책방향에 대한 발표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현장탐방 수준에 머물지 않는 정책대안 제시가 목표다.
손 대표의 행보에 진보 색채가 자꾸 덧칠해지면 ‘반값 등록금’ 정책이 불거졌을 때부터 목소리를 키웠던 당내 중도파들의 반발도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강봉균, 김효석, 박상천, 박병석 의원 등이 그들이다. 반면 손 대표의 걸음이 중간지대를 맴돌면 정동영 최고위원 등 당내 진보세력의 태클 강도도 심해질 것이다. 향후 ‘손학규식 진보’가 당내 논란을 통과하며 어떤 궤적을 그려갈지 자못 궁금해진다.
박공헌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