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뽀로로’ 1조 거절… 내 자식 내가 키울 것”
▲ 오콘 김일호 대표를 만나 최고의 토종 애니메이션 캐릭터 ‘뽀로로’의 탄생·성장 비화에 관해 들어봤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뽀로로’에게 이만큼 잘 어울리는 수식어가 있을까. 브랜드 가치가 1조 원에 달한다는, 그야말로 현존하는 최고의 국산 캐릭터다. 최근 남북 합작으로 인한 미국 수출 논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마스코트 선정 논란 등 뽀로로에 대한 관심은 어린이와 부모를 넘어 이제 사회 전반적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최근 이슈는 물론 탄생·성장 비화와 비전까지, 생각 같아선 뽀로로와 인터뷰를 하고 싶지만 불가능한 일. 대신 뽀로로 공동기획·제작사이면서 특히 제작부문 주축을 담당한 오콘(OCON) 김일호 대표이사(43)와의 인터뷰를 소개한다.
“지난 2001년 초 애니메이션업계 관계자들이 모인 편한 저녁자리였어요. 그 때가 3D 기술이 본격적으로 도입되던 때였는데 ‘제대로 된 애니메이션 한번 만들어보자’는 얘기가 있었고 흔쾌히 의기투합해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뽀로로, 아니 그때까지는 이름도 정해지지 않은 캐릭터는 그렇게 잉태됐다. 그리고 점차 모습을 갖춰간다.
“캐릭터를 돋보이게 하고 순수한 눈을 배경으로 일상의 에피소드를 담은 소담한 애니메이션으로 방향을 잡았죠. 캐릭터는 철부지에다 호기심 많고 실수투성이, 뒤뚱뒤뚱 걸으면서도 날고 싶다는 꿈을 가진 펭귄으로 설정됐어요. 완성되지 않은 아이들의 표상, 아이들의 친구로요.”
김 대표에 따르면 취학 전 어린이 애니메이션은 재미있으면서 교육적인 내용이 들어가야 성공할 수 있다. 그는 “재미와 교육의 균형을 잘 잡으려고 애썼다”고 밝혔다.
당시 김 대표를 포함해 주요 스태프들은 유아를 둔 부모들이었다. 직업적 작업을 뛰어넘어 자신의 자녀에게 자랑스레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 것으로 조율된 셈이다. 김 대표는 “아주 중요한 ‘본질’을 갖추었다”고 평했다. 그렇게 3년여의 산고 끝에 지난 2003년 11월 <뽀롱뽀롱 뽀로로>가 EBS의 전파를 타고 세상에 태어났다.
이제 관심의 초점을 뽀로로 탄생의 주역 김일호 대표로 옮겨보자. 그는 충청남도 조치원 시골의 복숭아 과수원집 아들로 태어나 초등학교 1학년 때 서울로 올라왔다.
“사실 다른 아이들보다 애니메이션을 덜 보고 자란 편이죠. 유아기를 보낸 시골 마을 전체에 TV가 1대밖에 없었거든요. 대학 때에서야 관심을 갖고 영상 동아리에서 활동했죠. 결정적인 것은 1995년 개봉한 <토이스토리>를 봤을 때였어요. ‘아, 저런 영상으로 감동을 줄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대학 졸업 후 LG전자 디자인연구소에 입사한 그는 1996년, 2년여 만에 직장을 박차고 나온다. 그리고 퇴직금 400만여 원으로 컴퓨터를 장만하고 원룸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주로 아는 선배들이 주는 용역 작업이었다. 그러나 사업이 정상 궤도에 오르기 전에 IMF 외환위기를 맞는다.
“신혼집 전세금을 빼서 직원들 월급 주고 망하기 직전에 IBRD(국제부흥개발은행)에 신청했던 2억 원가량 운영자금이 나와 기사회생했죠. 그렇게 위기가 지나고 나서 보니까 내 것을 하지 않으면 사업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애니메이션 개발에 들어갔고 바로 수주형 비즈니스를 다 끊었어요. 돈줄이 사라지니 어려움이 계속됐죠.”
이후 벤처 붐이 일면서 김 대표는 “비전을 팔아서” KT와 일본계, 홍콩·대만계 자금을 들여왔고 세계적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의 투자도 받을 수 있었다. 오콘은 이후 시사 애니메이션 ‘나잘난 박사’ 등으로 이름을 알리다 <뽀로로>와 <디보>(2006년)로 대박을 친다. 그렇게 인기작을 내놨지만 의외로 회사 실적은 좋지 않다. 계속 적자를 보다 지난 2009년에서야 흑자로 전환한 것. 지난해도 당기순이익 6억 원을 올렸을 뿐이다. 이유가 뭘까.
“간단합니다. 1조 원에 팔라는 제안을 거절했습니다만, 뽀로로의 현재 재무제표상 자산가치가 얼마일 것 같아요? ‘0원’입니다. 100억 원을 투자해 작품을 만들었더라도 5년간 정기상각을 통해 제로가 됩니다. 뽀로로 디보는 상각이 끝났습니다. 차기작에 비용은 계속 들어가니 적자가 날 수밖에요. 이런 경우 미국에선 70배를 쳐주는데, 우리나라 은행에서는 ‘심증은 있으되 물증이 없다’고 해요. 수익이 날 때까지 기다려주지도 않아요. 콘텐츠 사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제도 개선과 참을성 있는 지원이 절실합니다.”
그럼에도 김 대표는 향후 수익성을 자신한다.
“캐릭터는 통계적으로 데뷔 3년이 고비입니다. 이후 7년을 넘기면서부터는 브랜드화가 됐다고 봅니다. 뽀로로는 9년차인데 계속 성장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지금 막 해외시장이 열리고 있습니다. 지금껏 매출이 적었던 것도 직접사업을 하지 않아서 그런데 내년에 영화가 개봉하고 테마파크와 의류사업이 본격화합니다. 2015년 매출 목표가 2000억 원입니다.”
5년 만에 매출 40배. 뽀로로라면 가능할 법하다. 한데 그의 비전은 사업적 성공에 있지 않다. 장기적으로 사업부문도 분리할 예정이다.
“저는 원래 작가, 쟁이였죠.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좋은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작지만 크리에이티브가 강한 회사가 될 겁니다. 비즈니스를 디즈니에게 맡기는 픽사처럼요.”
오콘은 이달 말 판교에 뽀로로 테마파크와 어린이 도서관을 갖춘 신축 사옥으로 이전한다. 그동안 척박한 환경 속에서 기반을 다진 김 대표는 그곳에서 날아오를 듯하다. 뽀로로가 사고의 틀을 깨고 ‘물속에서 난’ 것처럼.
이성로 기자 roile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