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 열풍에 내부 고름 터졌다
▲ 구로구에 위치한 K 공구상가 관리회사 대표 일가의 상가 잠식 및 탈세 의혹이 제기돼 세무당국이 조사에 나섰다. 윤성호 기자 cybercoc1@ilyo.co.kr |
지난 6월 28일 국세청에는 K 공구상가 소유주 대표와 상가 관리업체인 ‘G 유통관리’에 대한 유착 및 탈세의혹이 접수됐다. 접수된 탄원서에 따르면 A 씨 일가는 17년간 상가 관리회사를 운영해 오면서 4억 원의 관리예치금을 전용하고, A 씨의 딸이자 전 상가 상인회 대표였던 B 씨는 출근을 한 번도 하지 않은 채 연간 수천만 원의 급여를 차명으로 지급받은 의혹이 제기됐다. 또 A 씨 일가는 관리회사 대표직을 이용해 관리비를 연체한 상가에 대해 가압류 조치 후 경매에 부쳐 이들 상가를 잠식해 온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국내 굴지의 공구용품유통 전문상가를 둘러싸고 제기된 A 씨 일가의 상가 잠식 및 탈세 의혹의 진상을 들여다봤다.
이번에 문제가 불거진 K 공구상가는 역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내부시설이 열악해 그동안 20여 업체가 폐업하고 손님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등 어려움을 겪어 왔다.
현재 K 공구상가의 213명 상가 소유주들은 ‘K 공구상가 상인회’라는 소유주 단체를 만들어 소유주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또 상가 관리업무를 담당하는 관리회사는 ‘G 유통관리’인데, 공구상가가 준공되기 전 관리를 맡았던 용역회사가 나가고 난 뒤부터 현재까지 17년 동안 관리를 맡고 있다.
국세청에 접수된 탄원서에는 여섯 가지 의혹들이 구체적으로 제기돼 있다. A 씨 일가의 급여지급 문제, A 씨의 딸인 B 씨가 급여를 차명으로 지급받았다는 의혹, 유통관리회사의 불법 임대업 운영에 따른 탈세 의혹, 상인회 대표 및 관리회사 대표직을 이용한 상가 잠식 의혹, 사라진 관리예치금에 대한 의혹, 상인회 및 관리회사의 불투명한 운영자금 실태 등이다.
이번 의혹의 중심에 있는 A 씨는 K 공구상가 상인회 대표를 맡고 있고, 아들 C 씨와 부인 D 씨는 G 유통관리의 대표와 관리소장으로 재직 중이다. 한마디로 A 씨 일가가 상가 상인회 대표부터 상가 관리회사까지 장악하고 있는 셈이다. 취재결과 아들 C 씨는 2011년 6월부로 관리회사 대표직에서 물러난 것으로 확인됐다.
탄원서에 제기된 첫 번째 의혹은 관리예치금 부분이다. 상가 관계자에 따르면 초기 상가 관리예치금은 6억~9억 원 선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현재 남아 있는 관리예치금은 약 2억 원에 불과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사라진 관리예치금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상인회 대표 A 씨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애초에 알려진 관리예치금의 액수부터 잘못됐다”며 “관리예치금은 대부분 미수 관리금을 메우는 데 쓰였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탄원서에는 A 씨 일가가 17년간 상가 관리회사를 운영해 오면서 4억~7억 원가량의 관리예치금이 사라졌는데 이는 A 씨 일가가 상가 매입에 사용했다는 의혹이 적시돼 있다. 실제로 2002년 이전 입주 당시 분양 받은 점포가 13개였던 A 씨 일가는 관리회사 대표직을 이용해 점포수를 늘렸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주로 소유주가 관리비를 연체하면 점포를 가압류한 뒤 경매에 부쳐 정보를 잘 아는 점을 이용해 해당 물건을 잠식해 왔다는 것이다. 실제로 A 씨 일가는 2002년 이후 시공사와 시행사의 물량을 사들이는 방식 등으로 현재는 상가 내에 총 138개의 점포를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렇게 A 씨 일가가 잠식한 점포들은 A 씨와 부인, 아들, 딸들이 각각 수 십 개씩 소유하고 있는데 심지어 9세 손자도 5개 점포의 소유주로 돼 있다. 이에 대해 A 씨는 “시공사였던 미도파와 시행사였던 한정산업이 부도가 나면서 미도파 측에서 법정관리가 되기 전에 급하게 내놓은 물량을 사들인 것 뿐”이라고 말했다.
탄원서에 따르면 급여 지급 부분에도 의혹이 제기됐다. 2010년 A 씨 일가의 연간 급여는 상인회 대표로 있는 A 씨가 6960만 원, G 유통관리 대표였던 아들 C 씨가 6700만 원, 관리소장을 맡았던 부인 D 씨가 2400만 원을 각각 수령했다. 상인회는 대표 한 명만 있는데도 고액의 연봉도 모자라 접대비 등 각종 지출 비용이 수천만 원에 이른 것으로 전해졌다.
상인회 전 대표였던 딸 B 씨가 대표 재직 시절 급여를 차명으로 지급받았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B 씨는 2004년~2008년까지 상인회 대표를 역임한 바 있다. 상가 관계자는 B 씨가 상근대표였지만 출근도 하지 않고 급여를 연간 약 7000만 원씩 차명으로 지급받았다고 주장했다. 현직 판사로 재직 중인 남편 K 씨가 공직에 있기 때문에 B 씨가 급여를 차명으로 지급받은 것이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A 씨 일가는 또 관리 사무실에서 불법으로 자신들이 소유한 점포임대사업과 부동산 중개업까지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문제는 이들이 임대계약을 맺는 과정에서 일부만 세금계산서를 발행하고 대부분 계산서를 발행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A 씨는 “내가 공인 중개사 자격증이 있지만 정식으로 신고하고 중개업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임대를 하면서 중개수수료를 받지 않았다. 따라서 중개수수료에 대한 세금 계산서를 발행할 필요가 없었다. 다만 임대계약서는 모두 작성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상가 관계자들은 “모든 임대 계약 시에는 임대료에 대한 세금계산서를 발행해야 한다”며 여전히 무자료 거래에 따른 탈세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자신의 일가족을 둘러싼 갖가지 의혹에 대해 A 씨는 “이전에도 이런 모함은 있었다. 근래에 상가 재개발 얘기가 나오자 상가관리권을 노리고 이러는 것 같다”고 반박했다. 상가 관계자들에 따르면 일부 언론을 통해 ‘경인로변 4대 공구상가 재개발사업 계획’이 발표되자 K 공구상가 상인들도 이에 발맞춰 상가 재개발 논의를 시작한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지난 3월 21일 총회에서 상인회 및 관리회사 임원 측은 아파트형 공장을 지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반대 입장의 소유주들은 오피스텔이나 아파텔 등 향후 임대사업으로 인한 가치를 바라볼 수 있는 형태의 재개발을 원해 서로 이견을 보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제보를 접수한 세무당국 관계자는 “재개발 열풍이 상가 내부의 갈등을 부르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이해관계자들 간의 주장이 대립되는 경우가 많아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며 섣부른 판단을 경계했다.
이훈철 기자 boazh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