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 비율 낮아” 상장 후 매수 우위 수급 예상…금리 인상·오버행 등 악재 넘어서기 숙제
#역대급 IPO LG에너지솔루션
시작은 산뜻하다. LG엔솔은 국내 기관투자자 대상 수요예측에서 역대 기록을 갈아치웠다. 수요예측에는 국내 기관 1536곳, 해외 기관 452곳 등 모두 1988개 기관이 참여했다. 경쟁률은 코스피 기업공개 수요예측 사상 최고 경쟁률인 2023 대 1을 기록했다. 기관들에 배정된 수량은 2337만 5000주. 청약 신청 수량은 472억 9631만 7261주에 달했다.
공모가는 주당 희망공모가액(25만 7000원~30만 원)의 최상단인 30만 원으로 확정됐다. 국내·외 기관의 주문 규모만 1경 5203조 원이다. '경' 단위의 주문 규모 역시 첫 번째 사례다. 일정 기간(15일~최대 6개월) 동안 주식을 팔지 않기로 하는 의무보유확약 신청 비율도 77.4%에 달했다. 이 수치도 역대 최고 수치다. LG엔솔의 최종 공모 주식 수는 4250만 주, 공모가 기준 공모액은 12조 7500억 원으로 2010년 삼성생명이 기록한 종전 최대치인 4조 8881억 원의 두 배를 뛰어넘었다.
일반 청약 등이 순조롭게 이어진다면 LG엔솔은 상장과 동시에 코스피 시가총액 3위에 오를 예정이다. 상장 후 시가총액은 확정 공모가 기준 70조 2000억 원이다. 지난 1월 10일 기준 코스피 시가총액 2위는 SK하이닉스(90조 6363억 원), 3위는 삼성전자 우선주(58조 3427억 원)다.
상장 공동주관사 7곳은 LG엔솔의 상장 후 적정 시가총액을 112조 원으로, 이 밖에 한국투자증권과 SK증권 등은 100조 원으로 산정했다. LG엔솔은 공모가 산출을 위해 비교 기업으로 중국 선전증시와 코스피에 각각 상장된 CATL과 삼성SDI를 택했고, 기업가치 대비 상각 전 영업이익(EV/EBITDA) 방식을 적용했다. CATL과 삼성SDI의 EV/EBITDA는 각각 80.7배, 22배였다. LG엔솔은 그 평균치인 51.4배를 적용해 시가총액을 112조 2062억 원으로 계산했다.
지난 1월 10일 권영수 LG에너지솔루션 대표이사 부회장은 기자간담회서 “LG엔솔이 중국 CATL보다 수주잔고가 더 많은 것으로 안다. 미래를 볼 때 시장점유율 측면에서 CATL을 추월할 것”이라며 “중국 CATL과 LG엔솔 간 시가총액 차이가 현재 이해되지 않는 수준이다. 상장 후 경쟁사인 중국 CATL과의 시가총액 차이가 좁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10일 기준 중국 CATL의 시가총액은 236조 원이다. 2021년 LG엔솔은 글로벌 시장점유율에서 중국 CATL(31.2%)에 이어 2위(21.2%)를 기록했다.
#‘금리 인상, 긴축의 시대’ 변수로 작용할까
이런 가운데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당초 예상보다 빠르게 ‘조기긴축’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 1월 11일(현지시각)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청문회에 출석해 “높은 인플레이션이 지속할 경우 금리를 예상보다 더 인상하겠다”며 “예상대로면 3월에 자산 매입을 종료하고 올해 금리 인상을 진행해 나갈 것이다. 올해 후반에는 보유자산 축소를 시작해 통화정책을 정상화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골드만삭스는 시중 유동성을 거둬들이는 ‘양적 긴축’ 시점을 2022년 12월에서 7월로 5개월 앞당기고, 4차례에 걸쳐 금리를 인상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 연준의 긴축 속도가 빨라질 거란 우려에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확실성과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1월 11일 하이투자증권에 따르면, 연초 이후 나스닥지수(-4.5%), 브라질(-2.7%), 코스피(-1.7%), 상하이종합지수(-1.3%) 등 지수의 낙폭은 컸다. 1~2월 기준금리 인상을 예고한 한국은행도 미국에 발맞춰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연 1.25%로 인상할 전망이다. 한국을 포함한 주요 선진국들이 시장에 돈줄을 죄면서 국내 증시 변동성도 커질 수밖에 없다. 증권가에선 1분기 코스피가 추가 하락을 거쳐 최하 2700선까지 내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허재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코스피가 2018년 미국 금리 인상과 자산 축소 국면에서 20% 하락한 점을 감안하면 현 시점에서 2700∼2800대까지 하락 위험이 있다”고 분석했다. 채현기 케이프투자증권 연구원도 “1월 연준의 긴축 우려로 인해 시장의 변동성 확대가 예상된다”며 1월 코스피 밴드를 2800~3050으로 예상했다.
LG엔솔은 연초 거래량이 증가해 주가가 상승하는 ‘1월 효과’를 사실상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다. 실제 지난 9~10월부터 자금유입 규모가 급감하더니 11~12월에는 꽤 많은 돈이 빠져나갔다. 코스피 일평균 거래대금은 2021년 1월 약 26조 4800억 원에서 12월에는 9조 9200억 원 수준으로 감소했다. 코스피에서 개인투자자 거래 비중은 최근 55%로 코로나19 이후 평균(65%)보다 10%포인트 낮아졌다.
LG엔솔의 공모금액은 공모가 하단 기준 10조 9255억 원, 상단을 기준으로 하면 12조 7500억 원에 달한다. 2021년 연간 코스피 공모금액의 최소 66%, 최대 77%에 이른다. 2016년부터 2020년까지 5년간 코스피 총 공모금액(12조 4481억 원)보다도 LG엔솔 공모 규모가 더 크다. 더욱이 2022년 상장 예정인 '대어'가 줄줄이 대기 중이다. 현대엔지니어링, CJ올리브영, SSG닷컴, 컬리, 현대오일뱅크, 쏘카, 원스토어, 카카오모빌리티,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등이 모두 조 단위의 몸값을 기대하고 있다. 시장의 관심이 분산될 수도 있다.
시가총액에 비해 유통 주식 수가 적은 점은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유진투자증권은 LG엔솔이 MSCI(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FTSE(파이낸셜타임스스톡인스체인지)·코스피200 등에 조기 편입될 경우 패시브 자금 예상 매입 수요는 9500억~1조 50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카카오페이(41%)와 현대중공업(40%), 카카오뱅크(40%) 등 최근 진행한 대형 IPO에서 기관투자자 물량 중 보호예수 미확약 물량이 40% 수준이었다. 이를 고려하면 LG엔솔 유통 주식 비율은 8.5~9% 수준으로 예상된다.
윤혁진 SK증권 연구원은 “LG엔솔은 상장 후 낮은 유동비율과 상장지수펀드(ETF), 패시브펀드들의 편입 수요 등이 대기하고 있다”며 “아주 우호적인 매수 우위의 수급을 예상한다”고 전망했다.
다만 상장 후 6개월 뒤 LG화학이 오버행(대규모 매각 대기 물량)에 나서면서 주가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LG에너지솔루션 상장 후 LG화학 지분(81.84%)과 우리사주조합 지분(3.63%)은 각각 6개월, 1년 뒤 매도할 수 있다. 지분율이 50%만 넘어도 안정적인 경영권을 유지할 수 있다. 실제 2021년 2월 SK는 SK바이오팜 주식 860만 주(11%)를 매각해 1조 1163억 원을 확보했다. 지분율은 75%에서 64%로 낮아졌다. 2021년 4월 CJ ENM도 스튜디오드래곤 주식 224만 7710주를 1660억 원에 처분했다. 지분율은 66.18%에서 58.2%로 낮아졌다.
우리사주조합 물량을 신청한 LG엔솔 직원들이 수익도 장기적으로 볼 때, 낙관할 수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주가가 부진할 경우, '빚투'에 나선 직원들은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LG에너지솔루션 전체 임직원 9000여 명은 1인당 우리사주 600여 주에서 1400여 주를 배정받았다. 우리사주 청약률은 90%를 웃도는 것으로 전해졌다. 공모가 희망 범위 기준 우리사주조합 배정 주식의 총액은 2조 1845억 원에서 2조 5500억 원에 달한다. 직원 1인당은 최소 1억 5420만 원에서 최대 3억 5980만 원 수준이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