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종자·공범들 ‘다음 타깃’ 정조준?
▲ 섬뜩한 미소 안드레스 베링 브레이빅이 7월 25일(현지시각) 첫번째 심리가 끝난 후 호송되고 있다. 작은 사진은 브레이빅의 다섯 살 때(위)와 그가 작성한 선언문에 들어 있는 사진. 로이터/뉴시스 |
그는 지난달 22일 노르웨이 정부청사에 폭탄 테러를 감행한 후 곧바로 노동당 청소년부 여름캠프가 열리고 있는 우퇴야섬으로 이동해 청소년들을 향해 무차별 총을 쏘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목숨을 잃은 희생자는 모두 76명. 그럼에도 자신의 행위가 정당했다고 주장하는 브레이빅은 자신이 과거 십자군 전쟁을 수행했던 ‘템플 기사단’의 뜻을 이어 받았으며, 다문화주의를 지향하고 관대한 이민정책을 펴는 유럽 각국의 정부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의 이런 뻔뻔한 모습에 혀를 내두르고 있는 사람들은 행여 제2, 제3의 모방범죄가 발생하진 않을까 경계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작성한 <2083: 유럽독립선언문>은 자신의 잠재적 추종자들에게 “이제 무장투쟁을 시작하라”고 부추기며 다음 목표물들을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어 추가 테러의 위험을 높이고 있다.
브레이빅은 유럽 내 이민자들에 대한 적개심으로 똘똘 뭉친 극우주의자였으며, 그 가운데서도 특히 이슬람권 이민자들을 증오했다.
그가 3년에 걸쳐서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1518쪽 분량의 <2083: 유럽독립선언문>에는 이런 그의 이슬라모포비아(이슬람혐오증)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가령 “2083년은 이슬람을 유럽에서 몰아내는 해다” “십자군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문화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을 처단해야 한다”라는 등 반이슬람 정서를 거리낌 없이 드러내고 있다.
또한 그는 “유럽 각국은 2083년까지 극우보수정권으로 교체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이를 위해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그리고 다음 목표물로는 누가 좋은지도 상세하게 제시했다. 이런 점에서 그가 정부청사 테러를 감행하기 2시간 35분 전에 시사토론 웹사이트(ww.freak.no)에 올린 이 선언문은 자신의 일기이자 또 다른 테러범들의 행동강령이기도 했다.
그는 이 선언문을 테러 발생 직전 자신의 잠재적 추종자들이라고 여겼던 유럽 및 미국의 5700명에게 이메일로 발송하기도 했다. 그는 이 수신자들을 ‘서유럽의 애국자들’이라고 부르면서 “당신들에게 주는 선물이다. 이 선언문을 당신들이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나눠주길 바란다”라고 적었다. 또한 “이슬람에 관대한 사람이라면 누구든 사살하라”는 끔찍한 메시지까지 덧붙였다.
한편 205명에 불과했던 그의 트위터 팔로어들은 테러 발생 후 이틀 만에 무려 2057명으로 늘어났다. 테러 발생 5일 전에 개설됐던 그의 트위터 계정에는 단 한 건의 글만 올라와 있었다. 이 글은 영국의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의 “신념을 가진 한 사람의 힘은 단순히 이익만 쫓는 10만 명의 힘과 같다”라는 인용문이었다.
그가 선언문에서 언급한 ‘다음 목표물’이 공개되자 해당 인물들과 나라들은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브레이빅이 ‘배신자들’이라고 표시한 인물들은 카테고리 A와 카테고리 B로 나뉘어져 있으며, 독일 8만 2820명, 영국 6만 2216명, 벨기에 1만 7000명 등 나라별로 수만 명이 지목되었다.
구체적으로는 유럽에 이슬람을 퍼뜨리도록 허가한 국가원수, 정치인, 언론인들이 주를 이루며, 영국의 고든 브라운 전 총리, 토니 블레어 전 총리, 찰스 왕세자,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호세 마누엘 바로소 EU 집행위원장 등이 포함되어 있다.
한편으로는 유럽 내 100개의 정당도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유럽의 이슬람화’를 지원했다는 이유로 잠재적 테러 대상에 올랐으며, 노르웨이 기자협회 역시 배신자로 지목되었다.
이밖에도 원자력발전소, 정유공장, 석유 및 천연가스 생산시설도 주된 테러 목표로 거론됐다. 독일 내 14개 정유공장이나 스코틀랜드 에버딘셔에 위치한 영국계 석유화학전문기업인 BP의 본사와 북해 유전이 대표적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과연 이번 사건에 배후 혹은 공범이 있는가 하는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다. 브레이빅이 처음에는 단독 범행을 주장했다가 “우리 템플 기사단 아래에는 두 개의 소조직이 더 있다”라고 주장하면서 공범 존재의 가능성을 나타냈기 때문이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가장 급선무는 하루빨리 연계된 조직과 공범을 찾아내 추가 테러를 예방하는 것이다.
▲ 브레이빅과 연락을 주고받았던 극우 단체 영국수호동맹(EDL)과 ‘노르웨이 참사’의 끔찍한 현장. |
또한 이 단체를 설립한 가장 큰 목표가 ‘유럽이 이슬람화되는 것을 막는 것’이었다고 밝히면서 이를 위한 100년 계획을 세워 놓았다고도 말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현재 유럽 전역에는 15~80명의 회원들이 활동하고 있으며, 중앙조직은 없고 각자 개별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모두들 암호명을 사용하고 있는데 브레이빅 자신은 12세기 노르웨이 왕이자 십자군 원정대였던 ‘지그루트’이며, 자신의 멘토였던 한 영국인은 ‘리처드’라는 예명을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브레이빅의 멘토가 영국인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그가 영국 내 다른 극우주의 모임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의혹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가장 주목 받고 있는 단체로는 ‘영국수호동맹(EDL)’이 있다. 2009년 설립된 이 극우단체는 반이슬람주의를 표방하며 주로 거리 시위를 통해 자신들의 주장을 나타내고 있다. 보통 한 번 시위를 할 때마다 적게는 500명에서 많게는 2000명까지 모이는 등 비교적 활발한 활동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EDL 회원 600명과 페이스북 친구를 맺었다”라는 브레이빅의 주장과 달리 처음 이 단체는 자신들과 브레이빅과의 연관성을 극구 부인했다. 하지만 이는 곧 거짓임이 드러났다. 반파시스트 그룹인 ‘서치라이트’가 EDL과 브레이빅이 연락을 주고받았던 정황을 포착한 것이다.
‘서치라이트’에 따르면 지난 몇 개월 동안 브레이빅은 EDL 회원들과 채팅을 하거나 게시판에 글을 올리는 등 지속적인 교류를 해왔다. 그는 EDL 회원들의 인터넷 게시판에 “계속해서 좋은 활동 부탁한다. 자신의 조국과 유산을 돌보는 사람들을 지켜보는 것은 늘 기분 좋은 일이다”, “당신들은 전 유럽의 축복이다” 등의 글을 올렸다.
또한 브레이빅이 직접 영국을 방문해 EDL 집회에 참석했었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그는 게시판을 통해 자신이 뉴캐슬에서 열린 집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고 말하면서 “다시 한 번 당신들의 집회에 참석하고 싶다”라는 글을 올렸다. 이에 EDL 회원 가운데 한 명은 “브라보. 당신의 견해와 용기를 존경한다. 언제든 환영한다”는 말로 화답했다.
하지만 EDL의 창시자인 스티븐 레논은 “단체 차원의 공식적인 만남은 없었다. 나는 그를 개인적으로 만난 적이 없다. 그와 연락을 하거나 어떠한 거래도 한 적이 없다”고 말하면서 이번 테러 사건과 EDL과의 연관성을 부인했다.
도마 위에 오른 또 다른 극우 단체들로는 ‘유럽의 이슬람화를 멈춰라(SIOE)’가 있다. 이 단체는 “주된 목표는 이슬람이 유럽에서 절대적인 정치세력이 되는 것을 막는 것”’이며 “인종차별은 인간의 가장 어리석은 행동이다. 하지만 이슬람혐오증은 최고의 상식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브레이빅은 선언문에서 이 단체의 이름을 언급하면서 자신이 이 단체의 회원들과 접촉한 적이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단체 역시 “우리는 브레이빅과 어떤 연관도 없다”면서 혐의 사실을 강력히 부인했다.
미국의 풀뿌리 보수주의 시민운동 단체인 ‘티파티’ 역시 브레이빅의 입에 오르면서 주목을 받고 있다. 다름이 아니라 브레이빅이 극우 성향의 유명 블로거이자 티파티 회원인 파멜라 겔러(52)의 글을 자신의 웹사이트에 링크해 놓았기 때문이다. 그가 링크한 글들은 ‘지난 5년간 노르웨이에서 발생한 강간 사건들은 모두 무슬림에 의해 자행됐다’는 등 노르웨이와 관련된 글들이 주를 이루었다.
겔러는 ‘미국의 이슬람화를 멈춰라’ 단체의 설립자로 극우 성향의 글들을 블로그에 마구잡이로 올려대는 것으로 유명하다. 심지어 한 번은 “오바마 대통령은 말콤X의 사생아다”라는 자극적인 글을 올려서 논란이 되기도 했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겔러가 자신의 블로그에 “‘친이스라엘 집회’ 참석차 오슬로를 방문한 적이 있다”고 언급했었던 것을 상기하는 사람들은 과연 그녀가 그때 브레이빅을 만난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반면 브레이빅이 과대망상증 환자라고 주장하면서 그가 주장하는 ‘템플 기사단’은 실제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세인트앤드류스대의 ‘테러리즘과 정치적 폭력 연구센터’의 리처드 잉글리시는 “설령 2002년에 템플 기사단이 만들어졌다고 해도 그 후 자연스럽게 와해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