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칭 ‘대전발바리’를 변호한 적이 있다. 그는 낮에는 전도사였고 밤만 되면 여자들 혼자 사는 오피스텔을 돌아다니며 성폭행을 했다. 잡힌 그가 구치소에서 나를 보자 눈물을 흘렸다. 나는 화가 났었다. 위선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잡히니까 참회를 하는 척하지, 그렇지 않았다면 계속 ‘지킬박사와 하이드’같이 이중인격을 유지했을 게 틀림없었다. 원인이 궁금해 그의 성장환경을 알아보았다. 성남에서 여관을 하던 집 아들인 그는 중학생 시절부터 방에서 벌이는 남녀의 섹스 광경을 훔쳐보며 성장했다. 그에게 섹스는 흔한 놀이일 뿐이었다. 그 대가로 그는 청춘을 감옥에서 보내야 하는 운명이 됐다.
도시의 밑바닥에서 그런 인생들을 종종 보았다. 택시운전을 하던 한 남자는 남의 집에 들어가 정사를 벌이는 남녀의 모습을 보는 게 버릇이었다. 밤이면 남의 집 창문 앞에 다가가 몰래 안을 들여다보았다. 잘 보이지 않으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담을 타고 방문 앞까지 간 경우도 있었다. 동작이 굼뜬 그는 잡혀서 절도범으로 오해도 받고 강도로 누명을 쓰기도 했다. 징역을 살고 나와서도 그의 버릇은 고쳐지지 않았다.
음란물이 시간과 공간 속에서 악취를 풍기며 넘쳐흐르고 한여름 노출증에 걸린 여성들이 성폭행범들을 자극하고 있다. 도덕도 무너졌다. 나만 좋으면 괜찮아 하는 의식이 만연되어 있다. 그런 고질병은 신분이나 학력에 관계없는 것 같다. IMF 총재 스트로스 칸은 호텔 청소원을 성폭행하려다 경찰에 체포됐다. 권력과 부를 한손에 거머쥔 그의 성폭행은 또 다른 희열을 추구하는 병적인 것 같다.
성폭행을 당하는 상대방의 입장은 어떤 것일까. 처참하게 당해온 여자에게 알아보았다. 그것은 육체뿐 아니라 영혼마저 갈가리 찢어지는 큰 상처였다. 톨스토이 같은 성인도 성욕과의 싸움이 가장 어려운 투쟁이라고 말했다. 간디 역시 여러 번 창녀촌 앞에서 고민했다는 얘기를 회고록에 적고 있다. 성경 속의 모세나 솔로몬, 다윗도 성문제를 놓고 하나님으로부터 질타를 당하고 있다. 그만큼 인간 스스로 자제하기가 어려운 문제인 것이다.
명분만 앞세워 겉으로는 깨끗함만을 강요하면서 뒷골목이 소돔과 고모라 같이 되게 해서는 안 된다. 병적인 변태로 사회를 파괴하는 자들에 대해서는 호르몬 억제제나 항우울제를 투여해서 성욕을 억제할 필요가 있다. 감옥보다 그게 더 사회를 지키는 데 효과적이다. 잠재적 성범죄자들을 위해서도 성욕의 구정물이 흘러나갈 하수구를 따로 적절하게 만들어주어야 할 것 같다. 그 하수구가 막히면 더러운 물은 마당 안으로, 안방으로 흘러 들어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사회를 건강하게 하는 근원적인 방법은 아름다운 사랑과 감동이 샘물같이 솟아나게 하는 것이다. 오염을 정화하는 데는 그것밖에 없다.
변호사 엄상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