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도 별볼일 없는 해외법인이 넘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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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3월9일 투명사회협약 체결식에 참석한 이건희 삼성 회장. 청와대사진기자단 | ||
삼성전자는 삼성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벌어들이고 그룹의 기둥인 만큼 그가 등기이사직에 남는 것이 이상할 것이 없다. 하지만 삼성재팬 이사직을 유지했다는 점은 의외로 받아들여졌다. 이 회장이 삼성의 구심점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는 삼성재팬이 삼성그룹에서 두 번째로 중요한 계열사라는 의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특히 역대 삼성재팬 경영책임자가 그룹 회장실 비서팀장 출신이라는 점에서 더더욱 눈길을 끌고 있다. 현 삼성재팬 사장은 이창렬씨로 그는 지난 93년부터 2004년까지 회장 비서실 비서팀장을 지내다 지난해 삼성재팬 사장에 부임했다.
이 사장의 전임자는 정준명 삼성인력개발원 상담역. 정 상담역은 지난 77년 삼성물산 도쿄지점 과장을 거쳐 81년부터 86년까지 이병철 회장 비서팀장을 지낸 뒤 97년부터 2004년까지 삼성재팬의 대표이사를 지냈다. 지난 93년부터 96년까지 이건희 회장의 비서실장을 지낸 현명관 전 전경련 부회장은 지난 2002년부터 2003년까지 삼성의 일본 담당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또 유상부 전 포스코 회장은 삼성중공업 사장을 거쳐 지난 96년부터 97년까지 삼성재팬 사장을 지냈다.
한마디로 삼성재팬의 책임자는 삼성그룹 내에서도 회장 최측근 인사들만 파견되는 요직인 셈이다.
재계 일각에선 이를 삼성만의 독특한 문화 중의 하나로 보기도 한다.
삼성의 창업자인 이병철 회장은 ‘신년 구상’이라는 이름으로 연말 연시에 도쿄에서 한 달 정도 장기체류하는 것은 물론 일본을 수시로 찾아 ‘선진 문물’을 흡수해 새로운 사업의 기회로 연결시켰다. 일본땅에 후손을 남기기도 한 이병철 회장은 삼성 창업 전 와세다대학을 다녔고 이건희 회장도 와세다대학을 졸업했다. 이건희 회장의 형인 이맹희씨도 일본에서 유학을 했다.
즉 일본에 오너들이 장기간 체류하면서 일본 사무소에 대한 필요성에 대해 다른 기업보다 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병철 회장 재임시절엔 20~30년 앞선 일본 산업현장이 비료나 반도체, 전자산업 등 삼성의 신수종 사업 원천기술 흡수를 위한 창구였고, 이건희 회장 재임시절인 90년대 중반에는 삼성이 새로 시작한 자동차 사업 기술 도입을 위한 창구 노릇을 했다. 삼성이 자동차 사업을 위해 설비도입을 벌일 때 삼성재팬의 매출도 뛰고, 삼성의 반도체 라인 증설이 활발해지면 삼성재팬의 매출도 커지는 구조인 것이다.
삼성재팬은 그 ‘뿌리’를 1953년 개설한 삼성물산 도쿄지점에서 찾고 있다. 지난 2003년 말엔 도쿄 롯본기에 27층 사옥을 완공하고 삼성재팬 50주년 기념 행사를 치렀다.
현재 삼성재팬은, 뿌리는 삼성물산에 두고 있지만 매출은 삼성전자가 좌지우지하고 있다. 때문에 지난 98년 삼성물산의 자회사인 삼성재팬과 삼성전자재팬을 통합해 일본삼성주식회사(SJC)를 발족시켰다.(삼성전자 51%, 삼성물산 49%의 지분구성) 이는 정준명 전 사장이 삼성재팬의 경영을 책임지고 있던 시기에 이뤄진 일이다.
97년 4천8백23억엔이던 삼성재팬의 매출액은 외환위기를 겪던 98년엔 3천5백26억엔으로 뚝 떨어졌다가 99년 6천1백74억엔, 2003년 9천6백51억엔 등 수직상승해 1조엔대 매출을 바라보고 있다. 즉 외환위기 이후 삼성재팬의 매출이 두 배 이상 뛴 것이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올해 환갑인 정준명 전 사장도 퇴임 뒤 삼성인력개발원 상담역(사장급)으로 활동하고 있는 한편 삼성측에서도 그에게 거주지 배려 등의 예우를 해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재팬의 매출 내역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2004년 9천5백97억엔의 매출액 중 수출은 5천3백84억엔, 수입이 4천2백16억엔이다. 수출 중 반도체 기기 설비가 56%를 차지하고 있고, 반도체나 전자부품이 29%를 차지하고 있다. 반대로 수입은 반도체와 전자부품이 86%를 차지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수입하는 반도체 설비의 수입선이 삼성재팬이고 일본내 반도체 수요 회사들에 대한 중개를 삼성재팬이 맡고 있다는 얘기다.
일본 입장에서 보면 일본은 반도체 수입액보다 반도체 제조 장비를 팔아 더 큰돈을 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삼성재팬이 일본 내에서 팔고 있는 물건들도 대부분 반도체나 TFT-LCD를 소니나 히타치, 마쓰시타 등 일본내 전자회사들에 들어가는 중간재들로 직접 소비자들에게 팔리는 상품은 극히 적다. 국내 전자업체의 대일무역적자 고민이 삼성재팬의 사업모델에도 고스란히 들어있는 셈이다.
삼성물산이나 삼성전자의 연결재무제표에 나타난 삼성재팬의 모습은 자본금은 8백90억원대에, 지난해 순이익은 1백59억원 정도인 소규모 계열사에 지나지 않는다. 삼성그룹 내에서 매출기여도만 따진다면 이 회장이 굳이 등기이사직을 맡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회장은 왜 삼성재팬의 등기이사직을 고수하는 것일까?
삼성쪽에선 이건희 회장이 삼성재팬의 등기이사직을 고수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밝히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 일각에선 회장 비서팀장 등 측근들이 경영책임자로 삼성재팬에 파견되고 있는 점에 주목하고 있기도 하다. 삼성구조본의 비서팀 등 측근들이 재산관리인 성격을 겸하고 있기 때문에 오너들이 오랫동안 머물러온 일본에도 삼성 오너일가의 재산이 제법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때문에 전통적으로 비서실 출신들이 삼성재팬 책임자로 배치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삼성쪽에선 “회장과 함께 일본에 자주 머물러 일본통이 된 비서팀장이 삼성재팬 책임자가 된 것일 뿐 다른 이유는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