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년자 포르노퀸… 과거는 잊어 주세요
지난주에 소개한 아오이 소라처럼 성인 영화와 주류 영화의 경계를 오가며 두 영역을 병행하는 배우도 있지만, 포르노 출신으로 메인 스트림에 진출한 대부분의 여배우들은 자신의 과거를 덮고 새 출발을 하려 한다. 하지만 ‘전직 포르노 배우’라는 족쇄는 항상 따라다니는 법. 그런 점에서 트레이시 로즈의 성공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그 이면엔 미국 사회를 뒤흔든 ‘미성년자 포르노 배우’ 사건이 있었다.
1986년 어느 포르노 여배우가 경찰에 체포된다. 당시 18세였던 그녀의 이름은 트레이시 로즈. 미성년자의 신분으로 하드코어 포르노 영화에 출연했다는 죄목이었다. 그녀는 기소되지 않았고 에이전트와 제작자만 법정에 섰으며, 로즈의 첫 포르노를 제작했던 프로듀서 루빈 고츠먼은 그녀가 미성년자임을 알면서도 포르노를 제작해 판매했다는 이유로 징역 1년 형을 선고받았다.
포르노에 출연했던 기간은 3년 남짓하지만 트레이시 로즈가 미국 성인 영화 산업에 끼친 영향은 꽤 컸다. 안 그래도 보수 세력의 표적이 되던 포르노그래피는 법적·도덕적 치명타를 입었고, 미 전역의 성인 비디오 대여점에서 그녀의 모든 작품이 수거되고 폐기 처분되는 상황에 이른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트레이시 로즈는 포르노와 작별을 고하고 양지로 나설 수 있었다.
1968년 5월 7일 오하이오에서 태어난 그녀의 출생명은 노라 루이스 쿠즈마. 아버지인 루이스 쿠즈마는 우크라이나에서 온 이민자였고, 어머니 패트리샤 브라이스랜드는 스칸디나비아 출신이었다. 2003년에 내놓은 자서전에 따르면 로즈는 10세 때 아동 성폭행의 희생자가 되었고 얼마 후엔 낙태를 경험했다고 한다.
알코올 중독자 남편의 폭력을 피해 로즈의 어머니는 네 딸을 데리고 캘리포니아로 도망친다. 로즈의 엄마는 그곳에서 로저라는 남자를 알게 되는데 마약 딜러였던 그는 트레이시를 성추행한다. 하지만 트레이시와 로저의 관계는 아이로니컬했다. 15세에 가출한 트레이시는 로저와 동거하게 되었고 그러면서 그녀는 모델 일을 시작한다.
운전면허증을 위조해 스무 살로 행세하던 트레이시는 잡지의 누드 화보 모델이 되었고 이후 포르노에 출연하게 되었다. 그때 나이 열여섯 살. 이후 약 2년 동안 트레이시 로즈는 100편 가까이 되는 포르노에 출연한다. 외모는 귀엽지만 일단 섹스 신이 시작되면 전쟁을 치르듯 격렬한 모드로 진입하는 것이 트레이시 로즈의 트레이드마크. 그녀는 데뷔하자마자 스타덤에 올라 AVN 시상식에서 신인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이후 미성년자였음이 밝혀지면서 이슈의 중심으로 떠올랐던 트레이시 로즈는 강제로 마약과 술에 취해 찍은 것이라고 호소했고 이에 업계 관계자들은 로즈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며 분노했다. 게다가 그녀는 열여덟 번째 생일이 지나자마자 그녀의 마지막 포르노인 <트레이시 아이 러브 유>를 직접 제작해 10만 달러에 팔았는데 이것은 자신을 둘러싼 이슈를 한껏 이용한 상술이었다. 이 작품은 미국에서 합법적으로 유통될 수 있는 트레이시의 유일한 작품이기도 하다.
이후 그녀가 주류로 진출해야 했던 건 포르노 업계엔 다신 발을 붙일 수 없는 분위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메인 스트림 무대에서 보란 듯이 성공했다. 18세에 리 스트라스버그 극단에 들어가 기초부터 탄탄히 다진 트레이시는 <악령의 외계인>(1988)으로 성공적인 데뷔를 하는데, 당시 <LA타임스>는 “결과는? 긍정적이다. 그녀도 ‘연기’를 할 수 있다!”라고 평했다.
이후 그녀는 벗지 않고도 작품을 선택할 수 있었고 조니 뎁과 공연했던 <사랑의 눈물>(1990)은 인상적이었다. 웨슬리 스나입스와 공연한 <블레이드>(1998)에선 뱀파이어인 라쿠엘로 등장했다. 더욱 큰 성공을 거둔 분야는 TV 드라마였다. 1995년에 <멜로즈 플레이스>에 사이코틱한 악역으로 등장해 호평을 받은 그녀는 <프로파일러>의 ‘시즌 2’엔 연쇄살인마로, SF 시리즈 <퍼스트 웨이브>의 마지막 시즌에선 터프 걸 캐릭터로 사랑받았다.
다방면에 걸쳐 활동하며 포르노 배우 시절에서 벗어나려 했던 트레이시 로즈. 하지만 대중은 여전히 그녀를 ‘미성년자 포르노 배우’로 기억했고 <오프라 윈프리 쇼>에서 밝혔던 로즈 자신도 “과거에서 도망칠 순 있어도, 과거로부터 숨을 순 없다”고 틴에이저 시절의 ‘그 일’에 대해 담담히 인정한다. 하지만 누드와 섹스로 쌓은 이미지를 성공의 발판으로 삼았다는 평가에 대해서는 강하게 반발한다. “나는 포르노 배우였던 과거 때문에 성공한 게 아니라, 그런 과거에도 ‘불구하고’ 성공한 것이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