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묵은 숙제…소급논란에 또 ‘흔들’
최근 국회에 제출된 금융산업구조개편에 관한 법률(금산법)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삼성그룹에 가해질 수 있는 시나리오다.
금산법은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분리를 법으로 규정하기 위해 지난 99년 1월 발효된 법률. 재벌기관이 고객의 돈을 이용해 계열사를 확장 지배하는 등의 불공정 경쟁을 막는다는 취지로 도입된 것이다. 이 법에 따르면 금융·보험회사는 같은 계열사의 비금융 계열사의 지분을 5% 이상은 갖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최근 박영선 의원 등이 발의한 금산법 개정안은 이 초과소유지분에 대한 강제매각규정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를 두고 관가나 재계, 시민단체가 논란을 벌이고 있다.
금융감독위원회(금감위)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재벌그룹 소속 금융기관 10곳이 계열사 지분 총 13곳을 초과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존의 법률안에는 법률 제정 이전에 갖고 있던 초과지분에 대해서는 제재규정이 없어 지금까지 이를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이 중 가장 두드러진 것은 삼성카드가 보유하고 있는 삼성 에버랜드 지분 25.64% (초과지분 20.65%).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금산법 제정 이후부터 꾸준히 이 문제를 제기해왔다. 결국 재경부는 지난해 11월 초과소유지분에 대한 제재를 가할 수 있는 법률 개정안을 마련했다.
재경부 개정안은 5% 이상에 해당되는 지분에 대해서는 의결권을 제한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의결권을 제한하는 것만으로도 지배구조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재경부 개정안도 법 제정 이전에 취득한 지분에 대해서는 소급 적용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재경부 개정안은 지난해 입법예고된 뒤 법률조항을 두고 공정거래위원회와 금감위 사이에 이견이 벌어져 국회 상정이 되지 않고 있었다. 그러자 국회의원 박영선 의원(열린우리당) 등 26명은 새로운 개정안을 만들어 지난 2일 법안을 발의했다.
이 개정안은 5% 이상 소유지분에 대해서는 강제매각을 하는 등의 강력한 제재조치를 포함하고 있다. 아울러 기존 법률안은 법 제정 전의 취득분에 대해서는 문제삼지 않았지만 개정안은 법 제정 이전을 포함해 현재 소유하고 있는 지분에 대해서도 제재를 가하도록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소급’적용 논란이 일기도 했다.
현대캐피탈은 금산법 위반을 통보받자 지난해 8월 초과지분을 장내매각하겠다는 이행계획서를 제출하고 기아자동차의 주식 6.82% 중 1.87%를 세 차례에 걸쳐 매각해 현재 4.95%를 보유하고 있다. INI스틸 5.9%에 대해서도 2007년까지 매각할 계획이다.
2003년 7월 유상증자 참여로 극동유화 14.89%를 보유하고 있던 극동그룹의 그린화재해상보험은 지분을 매각해 4.99%로 지분을 줄였다. 동부화재는 2002년 7월 아남반도체 8.07%까지 취득한 뒤 2003년 7월 시정명령을 받아 수차례 장내매각한 뒤 현재 2.9%로 지분을 낮췄다. 동부건설과 동부제강의 경우는 법 제정 이전에 취득한 것으로 위법사항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삼성 이외의 기업은 지분 소유가 그룹전체의 지배구조와는 크게 상관이 없는 반면 삼성그룹은 금산법 개정안의 주인공으로 불릴 정도로 영향을 많이 받게 된다.
삼성카드는 1998년 12월 삼성에버랜드의 지분 10%를 매입하고, 2004년 1월 삼성캐피탈과의 합병을 통해 삼성에버랜드의 주식 15.64%를 추가로 보유하게 되었다. 또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주식 7.2%, 호텔신라 주식 7.3%를 가지고 있다.
삼성 에버랜드는 이건희 회장의 장남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가 주식 25.1%를 갖고 있는 사실상의 지주회사로 삼성 지배구조의 핵심 고리다. 삼성 에버랜드는 삼성생명 지분 19.34%를 가지고 있고, 삼성생명은 다시 삼성카드 34.5%, 삼성전자 7.23%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삼성전자도 삼성카드 지분 46%를 가지고 있다.
참여연대에 따르면 “삼성카드가 가진 초과소유분인 20.65%를 매각한다고 해도 그룹의 경영권 확보에는 문제가 없지만 지분 20%가 외부인에게 넘어갈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에 대해 삼성측이 염려하는 것”이라고 한다.
현재 삼성에버랜드는 삼성카드가 25.64%, 이재용 상무가 25.1%, 이건희 회장 3.72%, 이재용 상무의 동생들인 이부진, 이서현, 이윤형씨가 각각 8.37%, 제일모직, 삼성전기, 삼성SDI가 각각 4%를 가지고 있는 등 우호지분이 전체의 94.4%에 달한다.
아직까지는 삼성카드의 삼성에버랜드 지분 소유는 위법사실이 없기 때문에 별도의 조치가 없는 상황이다. 다만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7.2% 중 0.2%는 법 제정 후 취득한 것으로 문제가 되지만 삼성생명측은 투자목적으로 특별계정을 통해 매입한 것이기 때문에 예외규정으로 승인받을 수 있는 부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개정안의 대표발의자인 박영선 의원측은 “과거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이 뒤섞여 있을 때 인계받은 부분에 대해서는 눈감아주자는 것이 재경부쪽 입장인데 동의하기 어렵다. 삼성도 이 문제를 자신 있게 정리하는 것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한편 재경부는 의결권을 제한하는 것만으로도 금융기관을 통한 계열사 지배를 억제하는 효과가 충분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특히 금융기관이 투자목적으로 지분을 사들이는 것까지 감독당국의 승인을 받게 한다면 금융기관의 투자업무까지 제동을 거는 일이라고 보고 있다.
지난 4월 국회 재경위 회의에서 한덕수 부총리는 이에 대해 “재벌을 봐주기 위한 개정은 없다”고 해명했지만 “과거에 발생한 행위에 대해 재산권을 박탈하는 것은 위헌소지가 있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번 회기 중에 법안이 통과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법률개정안에는 박영선 의원 등 열린우리당 의원 22명과 심상정 의원 등 민주노동당 의원 4명이 참여했다. 열린우리당 의석 146석과 민주노동당의 10석을 합하면 과반수가 넘는다. 그렇지만 현재 이 법안을 놓고 논란이 가열되고 있기 때문에 법안 통과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게 재계의 전망이다.
재벌 금융기관 보유 계열사 초과 지분 (04.12월 기준)
재벌그룹 | 금융기관 | 계열사 보유지분 | 비고 | |
삼성생명 | 삼성전자 | 7.2% | ||
삼성 | 호텔신라 | 7.3% | ||
삼성카드 | 삼성 에버랜드 | 25.64% | ||
현대 | 현대캐피탈 | 기아자동차 | 6.82% | 4.95%(05.1월) |
INI 스틸 | 5.9% | |||
쌍용 | 쌍용캐피탈 | 아시아 신용정보 | 15.61% | |
동부생명 | 동부건설 | 9.46% | ||
동부 | 아남반도체 | 8.07% | 2.9%(05.3월) | |
동부화재 | 동부건설 | 13.7% | ||
동부제강 | 7.7% | |||
태광 | 흥국생명 | 태광산업 | 9.9% | |
동양 | 동양증권 | 타이젱 | 9.9% | |
극동 | 그린화재 | 극동유화 | 14.89% | 4.99%(05.3월) |
대우 | 대우증권 | 델타정보통신 | 68.1% |
※ 대우증권의 경우 계좌도용사고로 취득한 것이므로 불가피성 인정. (자료: 금융감독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