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저녁 약속을 잘 만들지 않는 편이다. 그러나 점심에는 친구들과 점심을 먹으며 도란도란 얘기하는 일을 좋아한다. 식사를 하고 나서 대접받을 때도 있지만 그때 나는 얻어먹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얻어먹었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사람과 왜 식사를 하는가. 우리는 거지가 아닌데. 얻어먹은 것이 아니라 대접받은 것이다.
소박한 식탁이든 화려한 식탁이든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중요한 것은 대접받았다는 것이다. 대접받은 것은 사랑을 받은 것이므로 밥값을 낼 때도 마찬가지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얻어먹게 한 것이 아니다. 나는 나와 인연 있는 친구들을 대접한 것이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밥값을 내는 일을 공양을 올린다고 하는 것 같다. 공양을 올릴 수 있는 인연은 소중한 것이다. 그러니 기분 좋게 밥상을 대접할 수 있는 마음과 공손히 대접받을 수 있는 마음은 영적인 것이기도 하다.
아이들의 학교밥상이 도마 위에 올랐다. 이름하여 “무상급식”이다. 그런 것 가지고 투표까지 해야 하는 세상이니 각박한 세상이지 싶다. 만약 내가 가난한 집의 아이라면 가난하다는 증명서를 떼고 밥을 먹어야 하는 현실에 주눅이 들 것 같다. 내가 가난한 집의 부모라면 가난하다는 증명서를 떼 주고 나서야 내 아이에게 밥을 먹일 수 있는 현실이 서글프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할 것 같다. 그렇게 해야 먹을 수 있는 밥상이 무슨 피가 되고 살이 되겠는가. 자존심을 구긴 대가로 받는 급식은 무상도 아니고 공짜도 아니다.
세상엔 공짜가 없다지만 대가를 지불하지 않아도 누릴 수 있는 중요한 것들 때문이라면 생은 그래도 살아볼 만한 것이라 믿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신선한 공기, 때때로 무섭도록 우리를 압도하지만 그대로 좋은 자연, 부모의 사랑, 친구의 우정, 인류애, 생명애, 그런 것들….
나는 생각한다. 이제 대한민국이 대한민국의 미래인 아이들에게 점심을 대접할 수 있을 만큼은 되었다고. 사실 밥 먹는 것까지 교육 아닌가. 아니 어쩌면 밥상이야말로 가장 기본적이면서 가장은 중요한 교육인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은 모르는 척해도 눈치로 아는 법이다. 밥상 앞에 놓인 빈부의 턱을. 내가 받고 있는 밥상이 맘껏 누려도 되는 밥상인지, 아닌지를. 빈부의 차이로 인해 돈을 내고 밥을 먹는 아이와 돈을 내지 않고 밥을 먹는 아이로 갈라지는 한 아이들이 받고 있는 밥상은 맘껏 누려도 되는 밥상이 아니다.
나는 우리의 아이들이 가난해서 공짜 밥을 얻어먹고 있다고 주눅 들게 해서는 안 된다고, 밥상 앞에서 눈치를 보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제대로 된 의무교육이라면 학교에서의 식사까지 국가의 의무인 게 아닐까.
나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점심을 먹는 일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로 믿게 하고 싶다. 그리하여 아이들이, 미래의 아이들을 위하여 세금을 내는 것을 당연하다 여기고 그것을 아까워하지 않는 그런 어른들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수원대교수 이주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