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초 이름으로’ 바둑 특화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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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회 노사초배 단체전 결승. 왼쪽 앞에서 두번째가 함양A 팀 박성균. 맞은 편이 소풍 팀 송예슬. | ||
이번 노사초배 단체전은 5명이 한 팀. 주니어 1, 시니어 2, 여자 주니어 2로 구성하되, 여자 주니어 섭외가 만만치 않을 경우 남자 시니어로 대체할 수 있게 했다.
단체전이 재미있다. 대회 출전을 위해 팀을 구성하는 것부터 재미있다. 누가 누구와 한 편이 되느냐, 누구를 끌어들이느냐, 이것부터 승부다. 마치 대국 전 치수 싸움을 하는 것처럼. 방금 말했듯 연구생으로 있다가 금방 나온 선수일수록 몸값(?)이 올라간다. 친분이나 지역 연고도 크게 작용한다.
단체전 결승에는 함양A 팀과 ‘소풍’이라는 이름으로 출전한 대구 팀이 올라갔다. 함양 A는 주니어 이화섭에 시니어에는 함양이 연고인 문미열을 비롯해 김동근 박성균 최호철. 김동근 박성균은 누구나 아는 전국구 7단이며 연구생 출신으로 이제는 거의 최고참이 되어 시니어로 편입된 갓 마흔이 된 최호철은 고려대 대표선수로 대학 바둑을 휘저었던 선수.
이화섭은 연구생에서 나온 지 제법 오래 되었고 해서 좀 어떠냐는 소리가 있었지만 함양 스카우터는 “연구생 1조 시절 연구생 리그 전승을 기록했던 선수. 그 기록은 아마도 전무후무할 것이다. 연구생 세계에서 이화섭이 입단하지 못한 것은 지금도 최대 불가사의로 전해진다”면서 강한 신뢰를 나타냈다.
대구는 주니어 우원제에 시니어 이학용 박영진 김경래, 그리고 여자 선수는 송예슬. 역시 간단치 않은 라인업. 우원제는 연구생 출신 중에서도 최상위권이라는 얘기를 듣는다. 결승 자리에서는 뭇 강호 틈에 함초롬히 앉아 있는 홍일점 송예슬이 눈에 띄었는데, 박성균과의 한판에 조용히 몰두하던 송예슬이 결국은 큰일을 저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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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사초 생가. | ||
재정 자립도가 전국에서 바닥권인 함양이 바둑대회를 여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더구나 올해는 군수가 유고인 상태다. 다만, 함양은 조선 말 노국수들 가운데 유일하게 그 행적이 희미하게나마 남아 있는 인물, 노사초 선생의 고장이다. 그래서 이제는 바둑대회도 바둑대회지만 ‘함양의 노사초배’를 알릴 만큼 알렸으니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리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곡면에는 팔순이 넘은, 선생의 며느님이 선생의 생가를 지키고 있다. 노사초배가 알려지면서 생가를 찾는 발길이 있자 대문을 새로 세우고, 대문 앞에 안내문을 써 붙이고 안쪽으로 사랑채 비슷한 방을 몇 개 만들어 놓긴 했지만, 그 정도뿐인 것이 아쉽다.
안내문도 좀 고쳤으면 한다. 가령 “…선생은 일본 프로기사에게 백을 들고 만방으로 이기고…” 이런 구절 말이다. 선생이 조선에서는 당대 무적이었을지라도 과연 일본 프로기사에게 백을 들고 이겼을까. 만방으로 이겼다는 데에 이르면 쓴웃음이 나오고 만다. 내기바둑을 즐겼다는 선생이니 실감은 나지만, 격은 아니다.
선생의 가계로는 며느님 말고도 며느님의 자제 분들도 있고 교수 사위도 있다. 그런 분들과 군청, 가능하다면 한국기원도 힘을 모아 백방으로 자료를 모으고 해서 선생의 생가를 우리 바둑사의 한 페이지를 쥐고 있는 선생의 기념관 같은 것으로 만들면 어떨까.
함양은 물산이 풍요한 곳이다. 그러나 ‘사초’는 무엇과도 바꾸기 어려운 역사의 자산이다. 그 시절의 기록이 소략하기에 더욱 그렇다. 나는 함양이 바둑으로 특화하기를 바란다. 흔한 것을 많이 갖고 있는 것보다, 없는 것을 하나 갖고 있는 것이 더욱 값나가는 것 아닌가.
근자에 함양 소재 학교의 동문들이 모인 자리에서 누군가 학생수 미달로 문을 닫은 학교를 개조해 바둑 전문학교 같은 걸 만들면 어떨까 하는 제안을 했다는 얘기가 들린다. 귀가 번쩍 뜨인다. 말이 나온 김에 머뭇거리지 말고 추진하기 바란다. 선생의 생가 조성과 연계한다면 금상첨화다. ‘사초 바둑학교’, 크게는 바둑계와 바둑사를 위해서, 작게는 함양의 특화를 위해서 더 이상이 없다.
우리는 지금 너무 젊은이 위주다. 젊은 사람이 강한 건 당연한 일인데, 만날 누가 누구를 이겼고, 누구는 몇 승 몇 패고 그런 것들만 따지고 있다. 젊음은 아름답고 귀하다. 그러나 그 아름답고 귀한 것 뒤에는 오래 된 것, 유장한 그 무엇이 있어야 한다. 그것들이 아름답고 귀한 젊음의 뒤를 받쳐 주어야 한다. 요즘 다른 분야들은, 첨단의 분야라 할지라도 모두들 옛 것을 챙기기 시작하는 모습인데, 오히려 가장 유구한 바둑은 새 것, 빠르고 강한 것만을 선호하고 있다.
이광구 바둑전문 객원기자
바둑인 심재용 스토리
함양의 바둑 전도사
함양에는 심재용(56)이라는 사람이 있다. 고향이 함양, 지금은 부산 사상에서 살고 있다. 바둑은 20대 중반에 우연히 어깨너머로 배웠다. 그것뿐이고 이후 책을 보고 공부하거나 지도를 받은 적이 전혀 없는데, 넷바둑(M게임)이라는 바둑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그의 아이디 ‘소림용재’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아마 정상에게 선으로 둘 수 있는 바둑 실력도 실력이려니와 선후배 친구를 끌어 모으는 친화력이 정말 탁월하다. 공부-지도 전혀 없이도 바둑 1급이 될 수 있는 것인지, 나는 그게 신기하다. 또 그가 주도해 만든 인터넷 동호회는 한때 무려 1만 2000명 회원, 단연 전국제일이었고 지금도 숫자가 줄긴 했어도 회원 수와 결집-충성도에서 여전히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함양이 불과 몇 년 전부터 바둑으로 두각을 나타내게 된 것은 9할은 그의 공로다. 함양에 바둑을 알리고 권하고 독려한 것도 그다. 바둑교실을 하거나 방과후 바둑 강사를 하거나 그런 것도 아니고, 돈이 생기는 일도 아닌데도 그는 그랬다. 이번 노사초배 대회에는 515명이 참가했다. 지난해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늘어난 숫자다. 이것도 그의 발품으로 이루어졌다. 역마살이 있는 그에게 부단한 전국 순회는 일상의 일이긴 하지만, 그는 이번 대회를 위해서도 몇 달 전부터 전국을 돌며 사람들의 참가를 독려했다. 그는 역마살에서도 발군이다. 100여 년 전의 사초 선생, 그 고장의 새까만 후배인 지금 심재용. 함양과 노사초배에 애착하는 이유다. [광]
함양의 바둑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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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이 불과 몇 년 전부터 바둑으로 두각을 나타내게 된 것은 9할은 그의 공로다. 함양에 바둑을 알리고 권하고 독려한 것도 그다. 바둑교실을 하거나 방과후 바둑 강사를 하거나 그런 것도 아니고, 돈이 생기는 일도 아닌데도 그는 그랬다. 이번 노사초배 대회에는 515명이 참가했다. 지난해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늘어난 숫자다. 이것도 그의 발품으로 이루어졌다. 역마살이 있는 그에게 부단한 전국 순회는 일상의 일이긴 하지만, 그는 이번 대회를 위해서도 몇 달 전부터 전국을 돌며 사람들의 참가를 독려했다. 그는 역마살에서도 발군이다. 100여 년 전의 사초 선생, 그 고장의 새까만 후배인 지금 심재용. 함양과 노사초배에 애착하는 이유다. [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