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경제는 서민들에게 전례 없는 고통을 안기고 있다. 우선 전월세가격이 고공행진을 멈추지 않고 있다. 수도권의 경우 전세가격은 집값의 절반을 넘어서 2006년 이후 최고치다. 월세도 이에 상응하여 사상 최고 수준이다.
한편 아무 일이라도 해서 돈을 벌고 싶은데 일자리가 없다. 건설경기 위축으로 막노동조차 할 곳이 없다. 경기는 살아난다고 하는데 경제의 고용창출능력은 계속 떨어져 사실상 실업자가 400만 명이 넘는다. 설상가상으로 물가가 급등하고 있다. 소비자 물가상승률이 지난 달 3년 만에 5%를 넘었다. 하늘도 서민들 편이 아니다. 기상이변으로 인해 농산물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당장 추석상을 어떻게 차려야 할지 걱정이 태산이다.
더욱이 가계부채가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어 서민경제의 목을 조이고 있다. 가구당 평균부채가 4600만 원에 이른다. 월평균 이자비용이 8만 6000원으로 지난해에 비해 11.4%나 늘었다. 소득보다 지출이 많은 적자가구 비중이 30.5%에 달해 가계의 연쇄부도 위험이 높다.
우리경제는 글로벌금융위기를 OECD국가 중 제일 먼저 극복했다. 그러나 금융위기가 끝난 것이 아니다. 서민경제위기로 성격이 바뀐 것이다. 정부는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재정과 금융을 대규모로 팽창시키는 정책을 폈다. 또 고환율 정책을 펴 수출을 증가시켰다. 그 결과 대기업은 살아났으나 중소기업이 쓰러져 실업자가 늘었다. 주택경기가 침체하여 저소득층의 전월세난이 일어났다. 수입가격의 급등과 과잉유동성으로 인해 물가가 뛰었다. 서민들의 생활고가 가중되어 생계형 가계부채가 늘었다. 금융위기의 덤터기를 중소기업과 서민들이 쓰고 말았다.
더욱 문제는 정부정책이 시장과 따로 노는 것이다. 전월세난을 해소한다고 하면서 세금감면으로 임대업자들 배를 불리고 있다. 유가 등 물가를 내린다고 하면서 업자들의 설득에 넘어가 물가를 올리고 있다. 가계부채 문제를 해소한다고 하면서 은행의 자금줄을 막고 있다. 어쩔 수 없는 서민들이 급전을 돌려쓰기 위해 연 이자 30%가 넘는 제2금융권을 찾고 있다. 정부정책이 서민가계의 붕괴를 재촉하는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정부는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여 친서민, 공정사회, 공생발전 등을 국정운영의 기조로 삼고 있다. 그러나 서민들의 피부에 와 닿는 것이 별로 없다. 개념조차 불명확한 상태에서 구체적 실천방안이 보이지 않는다. 추석을 맞아 서민들이 간절히 바라는 것은 진실로 희망을 주는 정책이다. 바로 내수시장과 중소기업을 살려 일자리를 만드는 정책, 자금팽창을 지양하고 유통구조를 개선하여 물가를 잡는 정책, 채무기간을 연장하고 대출 금리를 내려 가계부채의 부도를 막는 정책, 그리고 임대주택공급을 늘려 집 걱정을 해소하는 정책 등이다.
서민들은 가난하지만 따뜻한 추석을 보내며 가족들과 미래를 설계하고 싶다. 정부의 지혜로운 결단이 요구된다.
고려대 교수·전총장 이필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