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서 바둑 홍보할 묘수 찾아라”
▲ 제10회 강원도청 기우회 시-군 공무원 바둑대회 전경. |
평창의 꿈이 구현되는 스타디움에는 이미 입추의 여지가 없는데, 본부석 바로 옆에는 뜻밖에도, 반갑게도, 강원도청 기우회가 의젓이 자리 잡고 있다. 강원도청 기우회는 1984년 3월 출범했으니 27년, 현재의 허남석 회장 직전까지, 지금은 은퇴한 초대 장유경 회장부터 이지수 홍덕표 안종섭 김진하 민황기 회장까지 6명의 회장을 거치면서 30년 가까운 연륜을 쌓아오고 있다. 우리나라 공무원 기우회로는 자랑할 만한 역사다. 10년 전부터는 강원도내 16개 시·군의 공무원이 참가하는 바둑대회를 주최-주관하고 있다.
올해 제10회 대회는 6월 25일 강릉에서 열렸고, 대회를 시작하면서 허남석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이번 대회는 평소의 대회가 아니라 ‘평창 겨울 올림픽 유치 기원’ - 강원도 시·군 공무원 바둑대회이니만큼 여러분 돌 하나하나에, 착점 한수 한수에 여러분의 염원과 우리 모두의 염원을 실어 달라”라고 당부했다.
평창의 염원을 내걸었기에 6월 대회는 특히 성황이었다. 개최지 강릉에서는 최명희 시장이 참석해 동계 올림픽 유치 기원에 앞장섰다. 그리고 7월 6일 남아공 더반에서 평창은 독일의 뮌헨, 프랑스의 안시와 경쟁해 63 대 25 대 7, 압도적인 스코어로 세 번째 도전 만에 마침내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염원한 것은 온 국민이었지만, 그래도 강원도청 기우회원들과 6월 그 날 대회에 참가했던 사람들은 강릉의 염력이 통했다면서 만세를 불렀다. 기우회원들의 소회는 남달랐다.
우선 허 회장이 대회지원과장으로 평창 올림픽이 열리면 대회를 뒷바라지해야 할 제1선이 될 것이고, 지원과장 전에는 국제 행사과장으로 올림픽 유치에 전력투구한 사람이다. 이용석 회원은 시설지원과 소속으로 대회장의 설계 쪽에 가담하게 되며 강대준 회원은 강원도 의회 예결전문위원이다.
염원을 실어 대회를 치렀으나 그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한 것 같았다. 대회 관계자들과 기우회원들은 초청기사 백성호 9단과 자리를 갖고, “평창이 유치에 성공하면 날을 잡아 다시 한 번 자축의 바둑대회를 열자”고 뜻을 모았다. 그리고 엊그제 9월 3일 토요일, 약속을 지켰다.
자리는 흥겨웠다. 사정이 여의치 못한 한두 사람을 빼고 기우회원 거의 전부가 참석했다. 백성호 9단이 분당에서 아침 7시15분 고속버스를 타고 달려갔고, 초대 장유경 회장도 위아래 하얀 모시적삼에 신선처럼 길게 기른 흰 콧수염 턱수염을 날리며 동석했다. 실력 춘천 최강이라는 기우회, ‘맥석회’의 송석원 회장은 축하사절로 참석했다.
대회가 끝나고 뒤풀이하는 자리에서 백성호 9단이 화두를 던졌다. 평창 겨울 올림픽에 바둑이 들어가는 방법이 없겠느냐는 것이었다. 잠시 침묵이 흐르다가 하나둘 입을 열었다.
▲ 지난 6월 25일 열린 제10회 시-군 공무원 바둑대회에서 최명희 강릉시장 등이 기념촬영하는 모습. 오른쪽은 9월 3일 열린 평창올림픽 유치 기념 대회. 뒷줄 왼쪽에서 두 번째가 허남석 기우회장, 네 번째가 맥석회 송석원 회장, 앞줄 맨 왼쪽이 백성호 9단. |
“어렵겠지. 인천 아시안게임에도 빠졌다면서?”
“아니야. 아시안게임에 빠졌으니까 우리가 오히려 해볼 만한 것 아닌가.”
“그렇죠. 바둑은 원래 여름보다는 겨울에 어울리는 게임이잖아요.”
“더운 나라들보다 북유럽이나 러시아처럼 추운 나라들에서 바둑이 더 잘 되고 있는 걸 보면 그건 그렇네요.”
“그래도 정식 게임으로는 안 될걸.”
“정식게임이 아니더라도 일단 시범 종목 같은 걸로도 들어갈 수만 있다면 성공 아닌가요.”
“그것도 어려울 걸. 우선 바둑 두는 나라들 숫자가 좀 부족하거든. 올림픽이라는 이름의 대회에 들어가려면 일단 가맹국 숫자가 어느 선 이상은 돼야 하거든.”
“시범 종목도 안 된다면 그냥 무슨 이벤트 같은 걸 만들면 어때요? 아무튼 얼굴을 내미는 게 중요하니까.”
“그건 생각해 볼 수 있겠네.”
“맞아요. 우리 바둑 이벤트 만들어 봅시다.”
“백성호 9단을 평창 겨울 올림픽 홍보대사 같은 걸로 위촉하는 것은 어떨까요?”
“오호~! 그것도 한 가지 방법이네.”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좌우간 어떡하든 연구해 보자구요.”
허남석 회장이 먼 산을 응시한다.
“감회가 새롭네요. 우리 준비 많이 했어요. 인터넷 들어가셔서 평창 올림픽 드림프로그램 치시면 자세히 나오는데요, 한 가지만 예를 들면, 눈이 오지 않는 나라 사람들을 위해서 눈이나 얼음 같은 걸 한번 체험해 보라고 올 2월에 겨울 체험, 빙상체험이란 프로그램을 열었습니다. 세계 마흔 나라에서 150명이 참가했습니다. 그 전에 1월에는 알펜시아 리조트에서 2011 FIS(국제빙상연맹) 대륙컵 국제 스키점프대회를 열었고, 또 2월 27일부터 3월 6일까지는 ISU(국제스키연맹)에서 주최하는 세계 주니어 피겨 선수권대회를 강릉 실내 종합체육관에서 치렀습니다.”
이런 대회나 행사뿐이 아니다. 허 과장의 소중한 추억은 또 있다. 작년 6월 FIS 총회에서 연설한 일이 그것이다.
“저로선 과분했지요. 아무튼 그런 일들이 바로 엊그제 일 같은데, 지금은 유치 문제는 다 끝나고 대회 준비를 시작했잖아요. 아직 실감이 잘 나지 않고, 또 유치가 결정되기 전까지는 노심초사, 일구월심 유치만 할 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 못할까 싶더니만 막상 올림픽을 치른다고 생각하자 이제는 걱정이 앞섭니다.”
허 회장이나 기우회원들은 조양호 평창 올림픽 조직위원장이나, 강원도지사를 지냈던 김진선 조직위 특임대사나, 현 도지사 최문순 부위원장이나, 이건희 회장이나, 유려한 영어로 세계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 주었던 나승연 대변인이나 그런 ‘현직(顯職)’은 아니다. 그러나 평창 올림픽의 성공은 이들이 발휘하는 부분적인 힘의 집합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들이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려 흰 눈과 투명한 얼음을 즐기러 올 세계인들에게 바둑을 소개하는 일을 맡아 주기를 바란다. 평창의 힘이라면 인천이 못한 일, 한국기원이나 대바협도 못 하고 있는 그 일을 해낼지도 모른다.
평창 올림픽을 보는 눈, 성패의 예상은 반반이다. 그러나 어차피 치러야 할 일이라면 좋은 일부터 생각하자. 좋은 일을 하다보면 나쁜 일도 좋아질 수 있으니까.
이광구 바둑전문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