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로이드 ‘쑥쑥’ 크자 견제구 ‘슝슝’
▲ 앤디 루빈 구글 부사장이 지난 2월 2일 본사에서 모바일 운영체계 안드로이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AP/연합뉴스 |
IT 업계의 특허 전쟁에 있어서 가장 큰 특징 가운데 하나는 ‘맞고소’다. 일방적으로 고소를 당하는 것이 아니라 자사의 특허 역시 침해당했다며 맞불작전을 펴는 일이 다반사다.
현재 유럽과 미국에서 맞붙고 있는 애플과 삼성 간의 특허 소송이 대표적인 예다. ‘삼성이 디자인, 기능, 상표권을 침해했다’며 먼저 소송을 건 쪽은 애플이었지만 삼성 역시 ‘애플이 통신기술 특허를 침해했다’며 맞소송을 제기한 것. 현재 두 업체는 모두 10건의 특허 관련 소송으로 얽혀 있는 상태다.
마이크로소프트(MS)와 모토로라모빌리티 역시 맞소송 중이긴 마찬가지다. 지난달 MS는 미 국제무역위원회(ITC)에 ‘모토로라의 안드로이드폰들이 운영체제(OS)와 관련된 자사의 특허기술을 침해했다’라는 혐의로 모토로라를 제소함과 동시에 미국 내 판매금지 및 수입 금지를 요청했다. MS 측이 주장하고 있는 특허는 이메일, 캘린더 및 연락처 동기화, 스케줄 등 모두 7건이었다. 모토로라도 가만있진 않았다. 모토로라 측은 “우리가 보유한 이동통신 기술 관련 특허를 대거 침해한 혐의가 있는 MS를 상대로 미국과 유럽에서 법적 소송을 제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 전쟁이 구글 안드로이드를 겨냥한 MS의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소송을 제기한 시점이 구글이 모토로라를 인수한 직후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말하자면 MS가 안드로이드의 확산을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현재 MS는 자사의 운영체제를 탑재한 윈도폰을 제조하는 삼성전자와 HTC에 대해 특허 사용료를 받고 있으며, 조만간 안드로이드폰 제조업체에도 스마트폰 한 대당 5~15달러(약 5300~1만 6000원)의 특허 사용료를 지불하도록 할 방침을 모색 중에 있다.
이밖에도 업체 간 물고 뜯는 특허 전쟁은 수없이 많다. 2년 동안 46건의 특허 소송에 휘말렸던 노키아와 애플은 지난 6월 애플이 노키아에 특허 사용료를 지불하는 데 동의하는 것으로 합의를 보면서 일단락됐다. 또한 ‘오라클 대 구글’, ‘애플 대 모토로라’, ‘애플 대 HTC’, ‘코닥 대 애플’, ‘MS 대 반즈앤노블’ 등 현재 진행 중인 소송 건은 수없이 많으며, 이 가운데 대부분은 맞소송 상태다.
이처럼 정보통신 관련 소송은 다른 분야의 소송보다 훨씬 복잡한 양상을 띠기 일쑤다. 일례로 제약회사 간의 특허 소송은 비교적 간단하게 이뤄진다. 새로운 화학합성물(석유화학 제품, 신약 등)에 대한 특허는 개발 기술 항목이 명백하고 관련 용어 역시 뚜렷하게 정의가 되어 있기 때문에 보통 1~2개의 특허를 침해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하지만 정보기술 분야의 관련 특허는 모호하고 미심쩍을 때가 많다. 우선 용어부터 그렇다. ‘네트워크(network)’나 ‘객체/대상(object)’이라는 용어는 적용 범위가 애매하다.
MIT 슬로언 스쿨의 스콧 스턴 교수는 “정보통신 산업과 관련된 특허는 종종 명확하게 정의가 내려진 지적재산권이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다. 마치 불확실한 가치에 대한 복권과도 같다. 이런 불확실성으로 엄청난 위험과 비용을 지불하게 된다”고 말했다.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의 경우 단 하나의 기술이 수백 개의 특허를 동시에 침해할 수 있으며, 수만 개의 정보통신 기술이 한데 어우러져 만들어지는 제품인 스마트폰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다. 때문에 특허를 많이 보유한 업체일수록 전쟁에서 유리한 것은 당연한 일. 그렇다면 이동통신기술과 관련된 특허를 가장 많이 보유한 업체는 어디일까. 미 시장조사기관 ‘체탄 샤마 컨설팅’에 따르면 1993~2011년 동안 미 특허청 및 유럽 특허청에 특허를 가장 많이 등록한 업체는 삼성전자로 1만 2000개를 육박한다. 그 다음으로 노키아, 알카텔 루슨트, IBM, 에릭손, MS, 소니, 모토로라, 퀄컴, 지멘스, 인텔이 톱10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업체 간 특허 전쟁이 본격화된 것은 근래 들어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불필요한 소모전을 줄이기 위해서 업체들은 서로의 특허를 교환하는 식으로 별도의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특허를 사용해왔다. 특히 대형 업체들끼리는 가급적 분쟁을 일으키지 않도록 조심했으며, 단지 특허로 먹고 사는 소규모 특허 전문회사들만이 간간히 소송을 제기할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백팔십도 달라졌다. 서로의 특허권을 놓고 공개적으로 분쟁을 일으키기 시작했고, 그 중심에는 구글의 ‘공짜’ 운영체제인 ‘안드로이드’가 있다. 이를테면 스마트폰과 태블릿 PC 시장에서의 안드로이드 성장을 견제하려는 움직임이 눈에 띄게 증가한 것이다. 이런 까닭에 현재 진행 중인 특허 소송은 대개 구글 측(삼성전자, 모토로라, HTC)을 상대로 애플과 MS, 오라클 등이 전쟁을 벌이고 있는 양상이다.
실제 지난해 안드로이드의 성장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지난해 2분기와 올해 같은 기간 동안의 판매량을 비교했을 때 안드로이드폰의 경우 1070만 대에서 4680만 대로 대폭 증가했다. 이에 반해 애플의 아이폰은 870만 대에서 1960만 대로 늘어나는 수준에 그쳤으며, MS의 윈도폰은 310만 대에서 170만 대로 오히려 하락했다. 삼성의 바다폰의 경우에는 60만 대에서 210만 대로 증가했다. 사정이 이러니 플랫폼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특허 전쟁은 사실상 제조사를 겨냥한 것이라기보다는 안드로이드를 겨냥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해 들어 업체들이 눈에 불을 켜고 특허를 사 모으는 데 열중하기 시작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가령 지난 7월 애플, MS, 리서치인모션(RIM)은 컨소시엄을 조성해서 캐나다 통신회사인 ‘노텔 네트워크’의 무선통신 관련 특허 6000개를 45억 달러(약 4조 8000억 원)에 사들였다. 특허 한 개당 75만 달러(약 8억 원)였던 셈이며, 이는 컴퓨터, 소프트웨어, 이동통신 관련 특허의 평균 가격보다 무려 네 배나 비싼 가격이었다. 경쟁사에 특허권 사용료를 지불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이렇게 비싼 가격에 특허를 사들이는 것이 낫다는 판단에서였다.
구글 역시 같은 생각이긴 마찬가지다. 특허 개수가 경쟁사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던 구글은 부랴부랴 IBM의 특허 1000여 개를 사들였으며, 최근에는 모토로라를 인수하면서 특허 보유 개수를 늘리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모토로라를 인수함으로써 구글이 보유하게 된 특허는 1만 7000여 개 정도에 이른다. 이로써 든든한 실탄을 보유하게 된 구글이 앞으로 법적 분쟁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게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다.
또한 전문가들은 이런 양상이라면 머지않아 기업 간 초대형 특허 전쟁이 연달아 터질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위처정보기술 업체인 ‘스카이후크’의 테드 모건은 “기술 분야 역사상 최대 규모의, 그리고 가장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하면서 “90년대 MS, 애플, IBM이 벌였던 전쟁보다 훨씬 규모가 크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런 특허 분쟁으로 손해를 보는 것은 결국 소비자들일 것이라고 경고한다. 업체들이 특허권 사용료를 지불하게 되면 기기의 가격이 올라가게 될 것은 뻔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로 인해 중소업체들의 발전 속도는 둔화될 것이며, 특허권 사용료에 발목이 묶인 신생 업체들이 성공할 기회 역시 줄어들어 급기야 시장에서 소비자들의 선택 폭이 좁아지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스티브 잡스는 특허왕
미적 감각은 ‘레전드’
지난달 사퇴한 스티브 잡스 애플 전 CEO를 가리켜 ‘특허왕’이라고 부르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현재 잡스가 애플 제품을 통해 보유한 특허는 모두 313개. 이는 업계의 다른 CEO들보다 훨씬 많은 숫자다. 가령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전 회장의 경우 9개를, 그리고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 구글 공동 창업자는 12개가량 소유하고 있을 뿐이다.
잡스가 보유한 특허는 유틸리티(소프트웨어 알고리즘이나 컴퓨터칩과 같은 기술적 혁신)보다는 디자인과 관련된 특허가 주를 이룬다. 이를테면 제품의 외양이나 느낌과 관련된 특허가 대부분이다. 실리콘밸리 과학기술전문가 및 투자가인 미첼 케이퍼는 “잡스는 디자인과 관련된 정규교육을 받은 적은 없지만 항상 뛰어난 감각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하지만 몇몇 기술분석가들은 300개가 넘는 잡스의 특허권 가운데 일부는 혁신적인 CEO의 이미지를 강화하기 위해서 애플 측에서 일부러 잡스의 이름을 사용해서 출원했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그러나 애플이 단순히 홍보를 목적으로 잡스의 이름을 사용하는 무리수를 두진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는 마크 램리 스탠퍼드대학 법학교수는 “만일 제품 개발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의 이름을 특허 명의에 올린 사실이 발각되면 그 특허는 무효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더불어 램리 교수는 “잡스가 애플을 통해 보유한 313개의 특허 가운데 잡스의 이름이 첫 번째로 등장하는 33개의 공동특허의 경우 아마도 잡스가 디자인 개발에 있어 선두적인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어마어마한 특허 개수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잡스는 항상 제품의 세밀한 부분까지 신경을 쓸 정도로 치밀하고 완벽했다. 가령 아이팟 헤드셋의 가는 줄이나 전선을 돌돌 감아 정리하도록 고안된 어댑터의 플라스틱 고리, 흰색 플라스틱 전원 어댑터, 마분지 포장 패키지 등 애플 제품의 구석구석에 자신의 감각을 반영했다. 이러한 잡스의 미적 감각은 실리콘밸리에서 전설처럼 통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잡스가 떠난 애플이 과연 지금까지의 애플다운 이미지를 계속 이어나갈 수 있을지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영]
미적 감각은 ‘레전드’
▲ 스티브 잡스 애플 CEO가 지난해 4월 아이폰 운영체계 OS4 소프트웨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AP/연합뉴스 |
잡스가 보유한 특허는 유틸리티(소프트웨어 알고리즘이나 컴퓨터칩과 같은 기술적 혁신)보다는 디자인과 관련된 특허가 주를 이룬다. 이를테면 제품의 외양이나 느낌과 관련된 특허가 대부분이다. 실리콘밸리 과학기술전문가 및 투자가인 미첼 케이퍼는 “잡스는 디자인과 관련된 정규교육을 받은 적은 없지만 항상 뛰어난 감각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하지만 몇몇 기술분석가들은 300개가 넘는 잡스의 특허권 가운데 일부는 혁신적인 CEO의 이미지를 강화하기 위해서 애플 측에서 일부러 잡스의 이름을 사용해서 출원했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그러나 애플이 단순히 홍보를 목적으로 잡스의 이름을 사용하는 무리수를 두진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는 마크 램리 스탠퍼드대학 법학교수는 “만일 제품 개발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의 이름을 특허 명의에 올린 사실이 발각되면 그 특허는 무효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더불어 램리 교수는 “잡스가 애플을 통해 보유한 313개의 특허 가운데 잡스의 이름이 첫 번째로 등장하는 33개의 공동특허의 경우 아마도 잡스가 디자인 개발에 있어 선두적인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어마어마한 특허 개수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잡스는 항상 제품의 세밀한 부분까지 신경을 쓸 정도로 치밀하고 완벽했다. 가령 아이팟 헤드셋의 가는 줄이나 전선을 돌돌 감아 정리하도록 고안된 어댑터의 플라스틱 고리, 흰색 플라스틱 전원 어댑터, 마분지 포장 패키지 등 애플 제품의 구석구석에 자신의 감각을 반영했다. 이러한 잡스의 미적 감각은 실리콘밸리에서 전설처럼 통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잡스가 떠난 애플이 과연 지금까지의 애플다운 이미지를 계속 이어나갈 수 있을지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