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격탄 피했지만 험난한 미래
▲ 현대건설 사장 시절의 김중겸 신임 한전 사장. |
지난 15일 오후. 서울시내 곳곳이 갑작스레 암흑 세상이 됐다. 시스템이 순간적으로 멈춰버린 듯 시민들은 당혹스러워했다. “이상고온 현상과 전력 과소비에 따른 불가피한 순환차단 조치였다”는 한전 측 얘기를 듣고 시민들은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전기를 차단할 수밖에 없었다며 내세운 이유도 그렇거니와 사전에 예고도 없이 일방적으로 전기를 차단했다는 사실에 시민들은 더욱 분통을 터뜨렸다.
비난의 화살은 한전으로 향했다. 그러나 책임자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지난 8월 29일 김쌍수 전 사장이 사임한 후 한전 사장 자리는 공석 상태였던 것이다. 이 자리에 있어야 할 김중겸 사장은 일정이 미뤄지면서 운 좋게(?)도 15일에는 사장 내정자 신분이었다.
김 사장으로서는 사장 선임·취임이 늦어진 것이 오히려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김 사장의 한전 사장 선임·취임 일정이 별 탈 없이 착착 진행됐다면 거세게 쏟아지는 비난의 화살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심한 경우 취임하자마자 물러나야 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많이 알려졌듯이 김 사장의 한전 사장 선임은 지난 8월 24일 한전 임시주주총회를 통해 결정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정치권에서 김중겸 사장에 대한 비토론이 확산되면서 임시주총 일자가 지난 16일로 미뤄졌다.
김 사장은 결국 지난 16일 사장으로 선임됐다. 한전은 김쌍수 전 사장 이후 연이어 민간기업인 출신에 사령탑을 맡겼다. 민간기업인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한전 사장에 취임한 김쌍수 전 사장의 ‘실험’이 사실상 실패로 돌아갔음에도 또 다시 김중겸 사장을 선임한 데 대한 우려가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관련 업계 경험이 적은 데다 이명박 대통령과 같은 기업(현대건설)은 물론 고려대·경북 상주 출신이어서 ‘낙하산 인사’라는 비난이 거세 내정될 때부터 김 사장은 이런저런 구설에 오른 바 있다. 현대건설 사장직을 갑작스레 그만둔 배경이 한전 사장직에 있었다는 것도 김 사장에 대한 비판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김 사장은 한전 사장직 공모신청자 중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고 한전 임원추천위원회에서 단독후보로 추대, 사장으로 선임됐다.
정부에서는 오는 23일 예정돼 있는 한전에 대한 국회 국정감사가 열리기 전에 김 사장을 임명할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감사에서는 김 사장이 한전 사장으로 출석할 듯하다. 이렇게 되면 김 사장은 정전 사태는 피했지만 국정감사라는 험난한 산을 넘어야 한다.
특히 이번 국정감사에서는 정전 사태와 함께 사장 선임 배경과 관련해 집중 추궁이 예상돼 김 사장이 어떻게 대처할지 관 심을 모으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김 사장이 취임 초기부터 큰 고비를 맞게 됐다”며 “정전 사태와 함께 인프라 개선, 전기요금 인상 등도 얽혀 있어 이번에는 한전에 대한 국정감사가 크게 주목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에서는 이번 정전 사태가 전기요금 인상에 대한 당위성에 힘을 실었다고 분석하고 있다. 인프라 개선과 전력 소비를 조절하기 위해서라는 것이 그 이유다. 지난 8월 전기요금이 4.9% 인상된 데다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이 공교롭게도 정전 사태가 발생하기 바로 전날인 14일 “연내 전기요금을 또 인상하는 것은 어렵다”고 밝혀 지금으로서는 추가 인상 가능성은 희박하다. 물가불안과 ‘대형사고까지 쳐놓고 뭘 보채냐’는 비난 여론도 감안해야 한다.
하지만 아직도 7%가량 추가 인상 요인이 있고 이번 정전 사태가 몹시 심각한 상황을 노출시킨 탓에 비록 연내는 아니어도 조만간 추가 인상 가능성이 아주 없지는 않다.
‘전기요금 현실화’는 전임 김쌍수 사장이 줄기차게 요구해온 사안이다. 결국 김쌍수 전 사장은 이를 허락하지 않은 정부에 쓴 소리를 내뱉으며 후임 사장이 선임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장직을 내던졌다. 김쌍수 전 사장 시절 전기요금 인상은 쉽게 꺼낼 수 없는 카드였다. 하지만 정전 사태 이후 이 문제가 공공연하게 거론되고 있다. 김중겸 사장으로서는 이 또한 행운이라 할 만하다. 과연 김쌍수 전 사장의 요구를 묵살해온 정부가 낙하산 꼬리표를 단 김중겸 사장에게 ‘전기요금 인상’이라는 힘을 실어주며 ‘같은 민간기업인 출신에 다른 대접’을 할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