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그림’ 그려놓고 제자리서 맴맴
농협은 농민들이 출자한 회원조합들이 다시 출자해 만든 ‘협동조합’이다. 그러나 최근 농협은 ‘신용부문’ 강화를 통한 종합금융그룹으로의 비상을 우선적 과제로 삼고 있다. 특히 증권사 인수를 통해 다양한 소비자들이 욕구를 충족시킬 채비를 갖추는 점이 눈에 띈다. 반면 이를 바라보는 감독기관인 농림부와 타 금융기관의 시선은 점점 싸늘해지고 있다.
농협의 본격적인 몸불리기가 시작된 것은 지난해 초부터다. ‘뭐, 농협에서 종신보험을 들었다구?’란 말에 모두가 의아해하며 ‘너만 모른다’란 말로 마무리됐던 농협생명·농협화재 TV광고가 화제에 올랐던 바 있다. 이 때부터 농협은 농업 종사자들을 위한 특수금융기관의 울타리를 넘어 종합금융기관으로의 성장을 공개적으로 선언한 셈이다.
농협의 증권사 인수설이 흘러나오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부터다. 2004년 말 국민은행에 이어 수익증권 판매업체 2위로 부상한 농협은 대형증권사들과의 제휴 확대를 통해 증권계좌 개설을 통한 수수료 수입 극대화를 꾀하는 중이었다. 동시에 농협은 소형 증권사 인수를 추진해 은행 보험 증권 투신 등을 아우르는 대형 금융기관으로 변모할 채비를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농협은 지난 연말 중소형 증권사 한 곳과 협상 마무리 단계까지 갔다가 결국 협상 결렬을 겪게 된다. 갑작스런 주식시장 활황으로 인해 기대 심리가 커진 해당 증권사가 매각 가격을 당초보다 크게 올려 1천억원을 크게 웃도는 인수자금을 요구했기 때문으로 알려진다.
지난 1일 새 농협법 시행으로 그동안 중앙회장 위주로 운영돼 온 농협의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이 부문별 대표이사 중심의 전문경영인체제로 바뀌게 됐다. 이에 발맞춰 농협은 신용사업 부문의 경쟁력을 강화해 종합금융그룹으로 도약한다는 계획을 세워놓은 상태다. 수면 밑에 가라앉았던 증권사 인수 문제도 다시 공론화됐다.
농협 관계자는 “일반적 은행업무만을 갖고는 경쟁력 강화를 꾀할 수 없다는 것이 현재 은행권의 대세다. 증권업을 강화하지 않고는 다양한 소비자 욕구를 충족시키기 어렵다”며 증권사 인수 작업 추진의 당위성을 설명한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증권사 인수는 중장기적 사업이며 아직 구체적으로 결정된 것은 없다”며 세부적인 언급을 회피했다.
농협이 증권사 인수를 강력 희망하면서도 머뭇거리는 이유는 농협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 찾아볼 수 있다. 농협을 관리 감독하는 농림부가 농협의 증권사 인수에 부정적 시각을 갖고 있는 탓이다. 농협 최대 현안인 신용사업과 경제사업 분리(신경분리)가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신용사업부문 규모의 일방적 확대를 꾀하는 증권사 인수는 ‘불가’하다는 것이다.
농림부 관계자는 “농업인들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농협이 증권사 인수 같은 신용부문에만 주안점을 두는 것은 비판받을 수밖에 없다”고 밝힌다. 이 관계자는 “최근 농협과 증권사 인수에 관한 구체적 논의를 한 적이 없으며 증권사 인수 문제는 농림부장관 승인 없이는 추진할 수 없는 사안”이라며 농림부가 농협의 ‘상급기관’임을 분명히 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선 농협의 신용사업이 확대될수록 금융감독당국인 금감원에 비해 농림부의 역할이 위축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농림부가 불쾌해 하는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농협의 증권사 인수 추진은 농협의 거대화를 견제하는 다른 금융기관의 심기도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농협은 이미 총 자산 1백40조원, 수신 1백5조원, 여신 82조원, 전국 9백17개의 영업망을 갖춘 국내 금융시장의 ‘공룡’기업으로 자리잡았다. 규모로만 따지면 농협의 증권사 인수 가능성이나 종합금융그룹으로의 도약은 그리 어려운 그림이 아닐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한 경쟁업계의 불편한 시선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민간보험업계에선 “농협이 보험료를 무리하게 낮추고 방만한 운영을 하므로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그러나 감독기관인 농림부와의 갈등 관계, 농업민들을 우선시하지 않는다는 비판, 그리고 금융권 내 냉소적 시선에도 불구하고 농협의 몸불리기는 가속화될 전망이다. 농협은 2008년에 자산규모 1백60조원으로 세계 80위, 2010년에 1백90조원으로 세계 금융기업 자산규모 70위에 도전하겠다는 전략을 세워놓고 있다. 최근에는 농업금융기관에서 출발해 세계적 금융그룹이 된 프랑스의 크레디아그리콜과 업무 제휴를 맺고 본격적인 벤치마킹에 나선 상태다.
농협 관계자는 “새경영진도 증권사 인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으며 소비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려면 농협도 기존 모습만 갖고는 안된다”라며 “여건이 성숙되면 농협이 종합금융그룹으로 곧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 전망했다. 그러나 농협이 신용부문에 치우쳐 농업민들 관련 사업을 등한시할 경우 이를 빌미 삼아 농협에 공세적 입장을 취할 여러 ‘눈’이 도사리고 있다는 관측도 제기되는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