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리 지켜준 <일요신문>에 정 듬뿍~”
▲이런 걸 신기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계속되는 악재들로 좋은 소식을 전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몇 주 앞당겨 일기를 종료하려 했는데, 일부러 그럴 필요가 없게 됐다. 텍사스와의 3차전에서 부상이 재발됐고, 개인적인 시즌이 종료되면서, 올해는 더 이상 유니폼을 입고 뛸 수 없게 됐다.
―그동안 <일요신문>에선 ‘박지성의 네덜란드 일기’ ‘서재응의 메이저리그 일기’를 연재했지만 한 선수가 3년 동안 계속해서 일기를 게재한 적은 처음이었다.
▲진짜 정이 많이 들었다. 일기에도, 또 <일요신문>에도. 비록 일주일에 한 번 쓰는 일기였지만, 성적이 좋을 때는 빨리 독자들을 만나고 싶었고, 성적이 안 좋거나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생길 때는 피하고 도망가고 싶기도 했었다. 그래도 꾹 참고 견뎌낸 날 칭찬해주고 싶다(웃음). <일요신문>도 내가 잘나갈 때나, 추락을 거듭할 때나, 변함없이 내 옆을 지켜줬다. 의리를 지키는 매체에 나 또한 정성을 다하고 싶었다. 솔직히 일기를 안 쓰게 되면 시원섭섭할 줄 알았는데, 막상 이렇게 끝난다고 생각하니까 너무 섭섭하고 아쉬움이 크다.
―얘기를 들어보니, 자신의 일기에 대해 많은 애착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내 일기를 계속 연재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해외에서 선수 생활을 하고 있고, 나에 대한 기사가 경기 결과에 대한 내용 외에는 전달되는 부분이 매우 적었다는 점이 있었다. 날 취재하는 한국 기자들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팬들은 내 소식을 궁금해 하고…, 팬들과 소통하는 가장 좋은 수단이 바로 이 일기였다. 내 주위에서, 또 팬들이 보내는 편지들 속에서 내 일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굉장한 보람도 느꼈다.
―‘시즌1’ ‘시즌2’보다 올 한 해, 일기를 쓰는 게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정말 그렇다. 불미스런 일이 생기면서 너무 많은 비난에 시달리다보니 팬들의 관심 속에서 멀어지고 싶고, 도망치고 싶었다. 그러나 일기는 <일요신문> 독자들과의 약속이기 때문에 마음을 수차례 고쳐먹고 또 다짐했다. 그동안 연재됐던 일기들을 모두 스크랩해서 모아두었다. 가끔 야구가 안 되고 마음이 혼란스러울 때, 이전에 썼던 일기들을 다시 읽어보며 내 자신을 돌이켜보기도 하고, 내 생활을 반성하기도 한다. 아마 10년, 20년이 지나서 세 권의 스크랩북을 다시 읽어본다면, 그리고 내 아이들이 아빠가 쓴 일기를 읽게 된다면, 우리 아이들과 대화할 수 있는 내용들이 많아질 것 같다.
―그동안 일기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내용이 무엇인가
▲지난 광저우아시안게임 때 언론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택시를 타고 가다 교통사고를 당했었다. 너무 몸이 안 좋고 힘이 들었는데 선수들과 함께 끝까지 정신력을 발휘하며 결승전에서 감격스런 금메달을 획득했다. 그 장면들을 서술한 내용을 읽을 때는 여전히 가슴 뭉클해지는 추억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께서 서거하셨을 때, 그 아픔을 일기에 표현한 적이 있는데, 갑자기 내 일기가 전라도 분들과 경상도 분들의 지역감정을 부추기게 한 ‘사건’으로 부상했다. 난 정치의 ‘정’자도 모르는 사람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경상도 출신이라고 해서 그분을 추모했던 게 아니라 한 나라를 이끈 ‘대장’이셨던 분이, 자신의 생을 너무도 안타깝게 마감했다는 사실이 가슴 아팠다. 그걸 얘기하려 했던 게 이상하게 지역색으로 엮이며 네티즌들 사이에 설전이 벌어지게 한 요인이 됐다.
―‘추신수 일기’를 읽는 사람들이 추신수 선수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길 바랐나.
▲추신수도 야구선수 이전에 똑같은 사람이라는 걸 알아줬으면 했다. 한 예로 음주운전에 대한 비난들 속에서도 인간이기 때문에 실수를 했던 것이고, 실수에 대해 백배 천배 잘못을 통감하고 사죄하는 상황을 어느 정도는 받아줬으면 했다.
―마지막으로 ‘추신수 일기’를 애독했던 팬들에게 인사를 해달라.
▲힘든 일도 많았지만, 내 인생에 너무 큰 도움을 준 일기였다. 날 돌아보고, 날 일으켜 세웠던 힘이 돼줬다. <일요신문>에, 그리고 독자들께, 또 팬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한 가지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시즌3’는 끝나지만, 이게 마지막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일요신문>에서 원하고, 또 나도 여건이 허락된다면, 더 좋은 모습으로 다시 돌아오겠다고 약속드릴 수 있다. 그리고 일기를 쓰지 않는다고, 추신수라는 선수를 잊어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웃음).
미국 댈러스=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