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트라 꼴통’ 짓으로 스포트라이트
▲ 한국의 입국 거부로 일본에 돌아간 이나다 도모미, 신도 요시타카 중의원과 사토 마사히사 참의원(왼쪽부터) 등 자민당 의원 3명. 일본에 도착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
일본에 돌아간 후 가장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이는 홍일점 이나다 도모미 의원(52)이다. “일본을 지키겠다”고 누누이 강조한 덕에 보수 지지층에 ‘잔다르크’, ‘일본의 대처 수상감’이란 칭송까지 받고 있다. 우익 전문 케이블 TV인 ‘채널 사쿠라’에서도 호의적으로 보도된다.
이나다 의원은 교사 부친을 둔 변호사 출신. 와세다 법대를 졸업한 후 23세에 사법시험에 합격해 3년 후 변호사로 개업했고 2005년에 초선의원에 당선됐다. 정계입문 기간이 짧아 그다지 두각을 드러내지는 못했으나 몇 년 전부터는 독설에 가까울 정도의 문제성 발언으로 입방아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심지어 우익 젊은이들조차 크게 반발한 ‘징농제’ 발언이 바로 그것이다. 이나다 의원은 일본의 청년실업자 ‘니트족’을 모두 강제로 농촌에 보내 일을 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귀국 후 가진 <석간후지>와의 인터뷰에서도 이런 면모가 거침없이 드러났다. 이나다 의원은 “한국 입국 전 지인한테 칼에 찔릴지도 모른다는 충고를 듣고 방호복까지 구입했다”고 말했다. 또한 “식사를 못 먹을 경우에 대비해 카스텔라도 가방 속에 챙겼다”고 했으며 인터뷰 말미에는 “한국인 시위대가 자신의 사진을 찢고 밟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느꼈다”고 덧붙였다.
2003년 이나다 의원은 1937~38년 일어났던 난징대학살을 부정하는 소송의 원고 측 변호사를 맡은 바 있다. 소송은 난징대학살 때 일본군 장교 두 명이 중국인 포로의 목을 일본도로 누가 더 빨리 베는지 내기를 했던 소위 ‘100명의 중국인 목 베기 사건’에 관한 것이다. 일본군 장교의 유족 측은 이 사실이 날조·과장되었단 주장을 펼치며 이를 보도한 매체를 명예훼손으로 제소했다.
재판은 3심까지 올라갔으나 이나다 의원은 번번이 ‘전면 기각’으로 크게 패소했지만 이 일로 일본의 보수층에 지명도를 넓혀 짧은 시간에 정치적 발판을 마련하는 데 성공했다. 소송을 진행하면서 자민당 공천 후보가 된 것이다.
하지만 유족 측은 “정치적 야심을 위해 자기들을 이용한 것 아니냐”며 이나다 의원 측과 마찰을 빚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나다 의원이 유족과 상의 한마디 없이 두 장교의 1948년 사형 집행 사진을 잡지에 제공했기 때문. 유족 측은 “변호사의 인권옹호 책무를 위반했다”며 2006년 11월 오사카변호사협회에 이나다 의원의 징계를 요구하기도 했다.
<주간대중>의 야마오카 순스케 기자에 따르면, 정치 입문 전 이나다 의원은 장기간 일본 오릭스의 자회사인 금융대부업체의 채권회수팀 추심 전문 변호사로 일했는데, 수완이 아주 뛰어났다고 한다. 항간에는 ‘피도 눈물도 없다’는 말이 나돌 정도며 불법 추심 의혹도 떠돈다. 이나다 의원의 남편도 역시 채권추심 변호사로 알려졌다. <마이니치신문> 2006년 2월 20일자 보도에 의하면, 이나다 의원은 상당한 재력가로 도쿄 도심에만 아파트 두 채를 갖고 있고 도쿄와 오사카 등지에 토지와 건물을 소유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의원 사무실 측은 “변호사로 일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최근 우리나라 매체와도 인터뷰를 자주 하고 있는 신도 요시타카 의원(53). 어머니가 영화배우로 외조부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과의 격렬한 전투 중 자살한 전 육군대장 구리바야시 다다미치다. 신도 의원은 정계 입문 전 가와구치시에서 시청 공무원으로 일한 바 있고 서른셋에 처음 시의원으로 당선된 이후 중의원으로 4선을 했다.
그러나 2003년 중의원 선거에서는 고배를 마셨다. 일본의 인터넷지 <액세스저널>의 분석에 의하면, 지역구에서 불륜 등 여자 문제가 복잡한 사실이 알려져 표심을 잃었기 때문. 실제 <주간신조> 2006년 3월 30일자 보도에 따르면 전직 ANA 스튜어디스와 의원 기숙사에서 동거를 하고, 자신이 경영하는 유치원의 선생님과도 관계를 맺었다 한다. 심지어 처제와도 바람을 피웠다는 소문도 돌았다.
극우 3인방 의원 중 일본 내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사토 마사히사 의원(51). 전 이라크 파병 자위대장 출신이다. 2007년 1월 자위대를 퇴직하고, 그해 참의원 선거에서 비례로 첫 당선됐다. 아무런 정치경력도 없이 마흔일곱이란 늦은 나이에 자민당의 공천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대중적 인기 덕분이다. 콧수염을 길러 2004년 이라크 파병 당시 ‘수염 대장’이란 별명으로 불렸고, ‘이라크 주민을 위해 봉사한다’며 매스컴에 널리 알려졌다.
그러나 사토 의원도 추문이 그치지 않기는 마찬가지. 시사지 <주간금요일>은 2009년 1월 9일자에서 사토 의원이 2008년 부도가 난 정보시스템 개발 IT기업 트랜스디지털사의 불법증자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보도했다. 2010년 발표된 수사 결과에 의하면, 트랜스디지털사는 2008년 9억 엔(약 134억 원)이나 거짓 증자를 했다. 경영이 어려워 자금난에 허덕이다가 담보대출 등을 받으려 증자를 꾸민 것으로 드러나 사장과 이사 등이 전부 체포됐다.
문제는 트랜스디지털사 사장과 간부가 모두 자위대원 출신으로 사토 의원과는 방위대학 선후배 사이라는 점. 실제 사토 의원은 2008년 트랜스디지털사의 주주설명회에서 공개적으로 강연자로 나서는 등 흡사 홍보이사 같은 역할을 한 바 있다.
최근 이런 위선적인 3인방 대열에 합류한 참의원도 나타났다. 2010년 자민당 비례로 첫 당선된 미우라 준코 의원(여·47)이다. 대마도에 있는 자위대 기지 옆에 한국인이 운영하는 리조트와 민박 등이 들어서고 있기 때문에 “일본 땅이 약탈당하고 있다”라고 주장한다.
미우라 의원은 아역배우 출신 가수 겸 탤런트로 1980년대 말 일본을 주름잡았던 스타였다. 지난 1999년에 다섯 살 연하의 무명 뮤지션과 결혼한 미우라 의원은 2007년 남편의 바람기로 이혼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혼 직후 다수의 남성과 여러 차례 염문설이 났으며 그 상대 중에는 남편과 같은 밴드를 하던 아홉 살 연하 뮤지션도 있어 ‘실은 맞바람이 아니었냐’는 의혹도 있다.
조승미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