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근 원장 “100세 시대에 걸맞게 ‘중년안’으로 불러야”
A 씨는 쉰 살이 되려면 아직 한참 멀었는데도 벌써 노안 판정을 받았다. 그는 눈뿐만 아니라, 다른 신체장기까지 노화로 인식하게 되고, 이로 인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게 됐다.
‘노안’ 진단을 받은 환자들이 종종 진료실에서 안과의사에게 이렇게 항의 섞인 푸념을 늘어놓는다. 우리는 꼭 ‘노안’이라고 불러야 할까. 필자도 지난 시절 주저 없이 젊은(?) 중년 환자들에게 ‘노안’이라는 진단결과를 말해줬으나, 그 말에 환자들이 받게 되는 충격을 깊이 고민해보지 않았다.
인구의 고령화로 정년퇴직 연령이 연장되고, 뭔가 과감하게 자신을 꾸미면서 인생 2막을 살아가려는 어르신들이 적잖은 요즘, 40·50대 중장년에게 ‘노안’이라는 진단명을 말하는 게 부담스럽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우리가 흔히 부르는 ‘노안’은 ‘조절부전’이라는 말로 대신할 수 있다. 눈의 근거리 조절기능이 약해져서 생기는 현상이라는 말이다.
‘노안’은 우리 눈의 수정체 탄력이 약해지고 두께를 조절하는 근육의 힘이 떨어져 생기는데, 노안 백내장 수술을 통해 딱딱해진 수정체를 제거하고 다초점 인공수정체를 다시 제자리에 넣으면 먼 데도, 가까운 데도 동시에 또렷하게 볼 수 있게 된다. 다시 말해 다초점 안경을 눈 안에 넣은 것과 다름없는 효과를 보이는 거다.
‘노안(老眼)’이란 글자 그대로 ‘늙은 눈’이라는 뜻이므로, ‘노인의 눈’이라는 셈이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엔 ‘60세 이상’이면 ‘노인’이었으나, 현재는 6‘5세 이상’으로 기준연령이 높아졌다. 요즘 동네마다 새마을청년회에 소속돼 활동하는 분들 가운데엔 60세에 이른 분들이 많다.
나이라는 것이 태어난 날부터 기산해서 따지는 단순한 숫자일 뿐이지, 이 나이가 반드시 신체의 생물학적인 기능까지 나타내는 건 아니다. 요즘은 실제 나이가 65세 넘은 법률상 노인이라 할지라도 몸과 마음은 청년의 신체와 같이 건장한 이들이 많다. 반대로 겨우 40대에 접어든 중년에게서 ‘노안’이 나타날 수도 있는 것이다.
얼굴과 몸은 아직도 청춘이지만, 유독 눈만 ‘늙은 눈’일 수도 있다. ‘노안’이라는 말 한마디가 40대 환자를 마치 자신이 하루아침에 조로해 버렸다는 느낌을 받게 해서는 안 될 듯하다.
지금은 건강 100세를 지향하는 21세기 아닌가. 40대 후반 젊은이(?)에게 ‘노안’의 진단명은 안과 진료실에서 사라져야 한다. ‘노안’을 대신할 수 있는 새로운 진단명으로 필자는 이미 몇 년 전부터 중장년 환자들에게 ‘노안’ 대신에 ‘조절부전’이라고 진단명을 쓰고 있다.
눈의 근거리 조절기능이 약해져서 빚어진 증세에서 유추한 진단명이다. ‘조절부전’은 먼 곳은 그런대로 볼 수 있지만 가까운 글씨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 40·50대에게서 드물지 않게 나타나는 추세여서, 되레 노안이라기보다는 ‘중년안(中年眼)’이 된 셈이다.
가까운 글씨가 안 보여서 돋보기를 쓴다고 해서 노인은 아니다. 세월에 순응하고 생로병사의 인생사를 거스를 수 없는 사람인지라, 순리를 따르는 것 또한 사람의 도리일 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은(?) 40대 ‘청년(?)’이 앞으로도 ‘노안’이라는 충격적인 말을 듣지 않게 하려면 안과계에서 새로운 진단명을 찾는 노력을 해야 할 것 같다.
외려 100세 시대에 걸맞게 ‘중년안’을 ‘노안’의 새로운 진단명으로 대체하는 건 어떨까 싶다. 고희를 맞이한 어르신에게 “중년안입니다”라고 순간 그가 느낄 희열은 또 얼마나 클까.
정근 정근안과병원 원장.
정리=정동욱 부산/경남 기자 ilyo3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