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도적 삼성 “롯데가 무서워”
▲ 지난 9월 27일 잠실에서 열린 삼성과 두산의 경기에서 삼성이 5:3 승리를 거두며 정규리그 우승을 확정지었다. 모자를 흔들며 기뻐하는 류중일 감독. 사진제공=삼성 라이온즈 |
#KIA “남은 건 오기 뿐”
“6개월 동안 대박과 쪽박을 경험했다. 남은 건 오기뿐이다.”
KIA 황병일 수석코치는 올 시즌을 ‘지금껏 야구를 하며 가장 어려웠던 한해’라고 평가했다. 그도 그럴 게 KIA는 7월 26일까지 1위를 달리다 9월 9일 잠실 두산전에서 패하며 4위로 내려앉았다.
7월까지만 해도 KIA는 8개 팀 가운데 가장 위력적인 중심타선과 선발진을 자랑했다. 이범호-최희섭-김상현으로 이어지는 중심타선은 많은 타점과 높은 득점권 타율을 기록했다. 여기다 나지완까지 가세하며 상대 투수들은 “피해갈 타자가 없다”며 푸념을 늘어놓았다.
선발진은 더했다. 투수 4관왕을 노리는 에이스 윤석민과 아퀼리노 로페스, 트래비스 블랙클리 두 외국인 투수는 일찌감치 30승을 합작하며 가장 막강한 선발진을 구축했다.
하지만 KIA의 승승장구는 8월을 넘기지 못했다. 연쇄 부상이 원인이었다. 이범호와 최희섭이 부상으로 빠진 게 화근이었다. 게다가 1, 2위 싸움이 치열할 때 김선빈이 타구에 얼굴이 맞아 상당기간 결장한 것도 악재였다. 어깨와 팔꿈치 부상으로 시들해진 로페스와 트래비스의 구위는 차라리 재앙에 가까웠다. 그렇다고 2년 만에 손에 쥔 포스트시즌을 무의미하게 치를 순 없는 일. KIA는 준플레이오프에서 2009년의 영광을 재현하려 한다.
그렇다면 KIA의 포스트시즌 전망은 어떨까. KIA 조범현 감독은 시즌 말미에 “플레이오프에서 SK, 롯데 가운데 어느 팀과 맞붙어도 자신이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속내는 SK와 맞붙길 바라는 것처럼 보였다. 이유가 있다.
올 시즌 KIA는 SK를 상대로 10승6패를 기록했다. KIA 선수들은 “SK와 만나면 투쟁심이 절로 난다”며 자신감을 나타낸다. 그러나 롯데전에선 반대다. “이상하게 경기가 풀리지 않는다”며 인상을 구긴다. 올 시즌 KIA는 롯데전에서 6승13패로 절대적인 열세를 보였다. 실제로 KIA 투수진은 SK전에서 팀 평균자책 2.52를 기록하며 유독 강한 면모를 나타냈다. SK전 팀 타율은 2할3푼7리로 높지 않았지만, 득점권 타율이 2할9푼에 이르렀다.
롯데전엔 반대였다. KIA 투수들은 롯데 타자만 보면 고개를 숙였다. 대 롯데전 평균자책이 무려 5.77이나 됐다. 뒷문도 약했다. KIA 불펜진은 롯데 타자들에게 연방 난타당하며 단 1세이브만을 기록했다.
KIA가 롯데, SK를 상대로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에 승리하려면 이범호 최희섭 두 중심타자가 확실히 부상에서 복귀하고, 6회 이후 불펜진이 제 구실을 해야 한다. 만약 KIA가 한국시리즈에 진출한다면 삼성과 팽팽한 접전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시즌 전적에선 삼성에 6승10패로 열세지만 KIA는 10번의 한국시리즈 진출에서 한 번도 고배를 마신 적이 없다.
#SK, 5년 연속 도전장
“SK 와이번스가 아니라 SK 호스피털(병원)에 가까운 시즌이었다.”
등록선수명단을 바라보던 SK 관계자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틀린 말도 아니었다. 올 시즌 SK는 ‘부상 악령’에 시달렸다.
주전포수 박경완이 10경기에 출전하며 일찌감치 시즌 아웃됐고 에이스 김광현은 갑작스러운 제구 난조와 부상으로 시즌 중 문학구장이 아닌 일본 후쿠오카에서 몸을 만들었다. 이뿐이 아니다. SK 투수진 가운데 규정이닝을 소화한 투수는 단 한 명도 없다. 타자 가운데서도 규정타석을 채운 이는 박정권과 최정 둘뿐이다. 두 선수도 각종 부상으로 전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김성근 감독의 경질이 뼈아팠다. 8월 18일 1, 2위 싸움을 벌이는 와중에 김 감독의 경질이 발표되자 SK 선수단은 카운터펀치를 맞은 것처럼 휘청거렸다.
그런데도 SK는 위기를 잘 추슬러 막판까지 2, 3위 경쟁을 벌이는 저력을 과시했다. 4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던 SK가 과연 올 시즌에도 가을 무대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야구계는 회의적 시각 일색이다. 이용철 KBS 해설위원은 “SK가 넥센, 한화, LG, 두산 등 하위권 팀들을 상대로는 매우 강했지만 삼성, KIA 등 상위권 팀엔 약했다”며 “강팀과의 승부에서 어떤 결과를 나타낼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올 시즌 SK는 삼성에 6승9패, KIA에 6승10패로 열세였다. 특히나 KIA를 상대로는 번번이 어려운 경기를 펼쳤다. 투수진은 잘 막아도 타선이 터지지 않았다. SK 타자들이 “KIA 투수진을 상대하는 게 가장 힘들다”고 털어놓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실제로 올 시즌 SK는 KIA 투수진을 상대로 타율 2할2푼5리를 기록했을 뿐이다.
그래서일까. SK는 가급적 포스트시즌에서 KIA와 만나지 않기를 바란다. 하지만 롯데와의 승부엔 자신감을 나타낸다. 그럴 만도 하다.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롯데는 SK의 ‘밥’이었다. SK는 2008~2009시즌 사이에 대 롯데전 15연승을 거뒀고, 2009~2010년 사이엔 11연승을 따냈다. 올 시즌에도 SK는 4강 팀 가운데 유일하게 롯데에만 10승1무8패로 강했다.
하지만, 다른 시각도 있다. 이 위원은 “올 시즌 상대전적에선 SK가 롯데에 다소 앞서지만 롯데가 SK를 상대로 8승이나 거뒀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SK 공포증’에서 탈출한 롯데가 분위기상으론 SK를 앞선다”고 평했다.
김광현, 최정 등 부상 선수가 복귀한 건 SK로선 좋은 뉴스다. 그러나 박재상, 게리 글로버 등 팀의 주축선수들이 아직 부상에서 탈출하지 못한 건 나쁜 뉴스다.
이만수 감독 대행은 “김광현, 게리 글로버, 브라이언 고든으로 구성된 선발진이 6회까지만 잘 버텨준다면 한국시리즈 진출은 희망적”이라며 “그러나 김광현을 혹사하면서까지 우승에 도전하진 않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김 감독 경질 이후 어수선한 SK는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모든 논란을 잠재우겠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SK는 매우 이례적으로 돈 보따리를 풀고 있다. SK의 과감한 메리트 시스템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귀추가 주목된다.
#롯데 ‘양승호걸’ 탄력 받나
“봄에는 지옥, 여름엔 천당을 경험했다. 가을엔 지옥과 천당 가운데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궁금하다.”
롯데 양승호 감독의 올 시즌 자평이다. 5월까지 양 감독은 지옥을 경험했다. 팀이 하위권으로 처지면서 롯데 팬들로부터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택시를 타면 기사들로부터 “야구 좀 똑바로 하소”라는 소릴 들었고 식당에 가면 “팀 성적이 그런데 목구멍으로 밥이 넘어가느냐”란 핀잔에 숟가락을 내려놓곤 했다. 한동안 양 감독은 택시 이용은 고사하고 집 밖에도 나가지 않았다.
그러나 6월 이후 롯데가 서서히 살아나고 2위 경쟁에 뛰어들면서 사정이 바뀌었다. ‘양승호구’였던 양 감독의 별명은 팀 성적 향상과 함께 ‘양승호걸’로 바뀌었다. 택시를 타나 음식점에 가나 이제 양 감독은 부산에서 칙사대접을 받고 있다.
그렇다고 양 감독의 고민이 없는 건 아니다. “롯데는 지난 3년 동안 준플레이오프 진출에 만족했다. 올 시즌엔 한국시리즈에서도 도전장을 내밀어야 한다. 그래야 롯데가 예년보다 발전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문제는 과연 우리가 그만한 전력이 되느냐다.”
냉철한 분석이다. 롯데는 올 시즌 팀 타율 1위에 올랐다. 고질적인 단점이었던 불펜진도 마무리 김사율이 버티면서 매우 좋아졌다. 그러나 수비는 여전히 제자리고, 단기전에서 확실히 1승 이상을 보장할 에이스가 보이지 않는다. 지난 3년간 롯데는 수비 난조와 에이스 부재로 포스트시즌에서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롯데는 ‘한국시리즈만 진출하면 우승도 어려운 일은 아니다’라는 자세다. 원체 분위기를 타는 팀이라 플레이오프의 여세를 한국시리즈까지 이어간다면 삼성을 충분히 제압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올 시즌 롯데는 삼성과 9승1무9패로 팽팽한 접전을 펼쳤다. 막강 삼성 마운드를 상대로 팀 타율 2할7푼3리, 15홈런을 뽑아냈다. 타점도 83개를 기록해 다른 구단과의 승부 때보다 훨씬 높은 득점생산력을 자랑했다. 홍성흔 이대호 강민호 김주찬 황재균 등 주전 타자들은 삼성 투수진을 상대로 타율 3할을 기록했다.
특히나 투수 가운데 ‘삼성 킬러’가 많다. 외국인 투수 라이언 사도스키는 올 시즌 삼성전에 4번 선발 출전해 3승1패 평균자책 2.19를 거뒀다. 임경완 이명우 김수완 강영식 등 불펜투수들도 삼성 타자들에겐 평균자책 1, 2점대로 매우 강했다. 롯데의 장담이 빈 소리로 들리지 않는 이유다.
허구연 MBC 해설위원도 “롯데가 체력적 손실을 최소화하며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면 삼성과 접전을 펼치게 될 것”이라며 “KIA, SK보단 롯데가 삼성을 제압할 가능성이 조금은 더 높다”고 평가했다.
#삼성, 정규 시즌 1위 자신만만
“너무 조용하게 정규 시즌 1위를 차지해서 그런가. 괜한 불안감이 느껴질 정도다.”
삼성의 솔직한 속내다. 삼성은 7월 27일 광주 KIA전에서 승리하고서 한 번도 1위 자리를 뺏기지 않았다. 삼성의 정규 시즌 1위 등극이 큰 화제가 되지 못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삼성은 투·타에서 가장 안정된 팀이다. 선발·불펜진 모두 8개 구단 가운데 최고다. 류중일 감독이 한국시리즈에서 누구를 선발투수로 내보낼지 고민할 정도로 투수층이 두텁다. 타선도 마찬가지다. 리그에서 가장 발 빠르고 출루율이 좋은 1번 타자 김상수와 역시 8개 구단 타자들 가운데 가장 기회에 능하고 힘 좋은 4번 타자 최형우가 버티고 있다. 박한이 진갑용 신명철 강봉규 등 한국시리즈 경험이 풍부한 타자들이 많다는 것도 장점이다.
삼성은 한국시리즈에서 어느 팀과 만나도 상관없다는 태도다. 삼성은 롯데, SK, KIA와의 올 시즌 상대전적에서 동률이거나 우위를 점했다. 선수들도 특정팀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삼성의 한 코치는 “누굴 만나든지 이번 한국시리즈는 삼성의 복수 무대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실이다. 삼성이 한국시리즈에서 KIA와 만난다면 1986, 1987, 1993년 한국시리즈에서 해태(KIA의 전신)에 3전 전패한 쓰라린 기억을 되갚아줄 절호의 기회가 된다.
만약 SK와 만난다면 지난해 한국시리즈의 리턴 매치가 되고, 롯데와 만나면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 최동원에게 4패를 당하며 준우승에 그쳤던 아픔을 깨끗이 지울 기회로 만들 수 있다.
정규 시즌 1위가 결정되고서 류중일 감독은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한 뒤 받겠다”며 선수들의 헹가래를 사양했다. 만약 류 감독이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한다면 2005년 삼성 선동열 감독 이후 프로야구 사상 두 번째로 정규 시즌 1위와 한국시리즈 우승을 동시에 차지한 초보감독이 된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