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몰수전담팀이냐 검찰 범죄수익환수부냐…피의자는 “파생상품 투자해 모두 날렸다”
우리은행 차장급 직원이 6년 동안 614억 원을 횡령한 사건으로, 서울 남대문경찰서는 은행 직원 A 씨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횡령 혐의로 긴급체포해 수사 중이다. 범인은 잡았지만 더 중요한 부분은 사라진 614억 원을 회수하는 것이다. A 씨는 횡령한 돈을 이미 다 썼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과연 경찰과 검찰은 614억 원 가운데 얼마나 회수할 수 있을까. 회수를 한다면 어느 기관이 이를 해낼 수 있을까.
우리은행은 내부 감사 과정에서 기업구조개선 관련 업무 담당 직원 A 씨가 은행자금 678억 원을 횡령한 사실을 인지해 4월 27일 저녁 바로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경법)상 횡령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A 씨가 실제로 빼간 은행 자금은 578억 원인데 여기에 이자를 더한 횡령액 잠정치는 614억 5214만 원이다. 우리은행이 고소하자 돌연 잠적했던 A 씨는 이날 밤 늦게 서울 남대문경찰서를 찾아 자수해 긴급체포됐다.
10년 넘게 우리은행에서 기업구조개선 관련 업무를 담당해 온 차장급 직원인 A 씨는 2012년부터 2018년까지 6년 동안 세 차례에 걸쳐 회사 돈을 횡령했다. A 씨가 횡령한 금액에는 2010~2011년 우리은행이 주관한 옛 대우일렉트로닉스 매각 과정에서 이란 가전업체 엔텍합이 지불한 계약금(578억 원)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엔텍합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지만 채권단이 투자확약서(LOC) 불충분 등을 이유로 계약 해지를 통보하고 계약금을 몰수했다. 이후 엔텍합의 대주주인 다야니 가문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을 제기해 2019년 최종 승소했다.
이에 따라 우리은행이 이란 엔텍합에 몰수된 계약금을 돌려줘야 했지만 미국의 대이란 금융제재로 반환이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이런 과정에서 우리은행이 계약금 반환을 위해 관련 계좌를 확인하다 A 씨의 횡령 사실을 발견하게 됐다.
관건은 사라진 돈이 지금 어디에 있느냐다. 경찰 조사에서 A 씨는 600여억 원 가운데 500여억 원은 주식 선물옵션 등 고위험 파생상품 투자 등으로 자신이 썼고, 100여억 원은 동생에게 건넸다고 진술했다. A 씨는 투자금을 모두 날렸고, A 씨의 동생은 100억 가운데 80억 원을 해외 골프장 리조트 사업에 투자했다가 전액 손실을 보는 등 역시 모두 써버렸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진다.
긴급 체포된 A 씨와 동생의 주장처럼 600여억 원은 이미 소진돼 몰수가 어려운 것일까. 사실 이번 사건에 대한 진정한 수사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사라진 600여억 원 가운데 얼마를 회수할 수 있느냐가 수사 핵심이기 때문이다.
4월 27일 저녁 우리은행이 A 씨를 횡령 혐의로 경찰에 고소한 직후 사라졌던 A 씨는 4시간 뒤인 이날 밤 10시 무렵 자수했다. 당시 4시간의 행적이 중요한데 TV조선 단독 보도에 따르면 A 씨는 26일부터 이틀 동안 두 차례에 걸쳐 돈을 호주 계좌로 송금했다. 호주에는 A 씨의 부인과 딸 등 가족이 살고 있다. 따라서 경찰은 은행의 내부감사 사실을 미리 알게 된 A 씨가 횡령금 일부를 해외로 빼돌리려 한 것으로 보고 수사 중이다.
경찰은 28일 ‘우리은행 600억 원대 횡령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 남대문경찰서에 서울경찰청몰수전담팀 인원 3명을 투입했다. 몰수전담팀은 현재 600여억 원의 횡령금 가운데 몰수 가능한 금액의 규모를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 직원이 수년 동안 문서를 조작하며 치밀하게 저지른 횡령 범죄인 데다 유령회사 계좌 등도 활용됐을 것으로 보여 결코 만만한 작업은 아니다.
우리은행 600억 원대 횡령 사건은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관련 두 개의 법안인 검찰청법 개정안과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모두 국회를 통과할지라도 여전히 검찰 직접 수사권이 유지되는 영역인 ‘경제 범죄’다.
서울경찰청에 몰수전담팀이 있다면 서울중앙지검에는 범죄수익환수부가 있다. 2022년 2월 불거진 ‘계양전기 재무팀 직원 횡령 사건’ 역시 횡령액이 무려 245억 원이나 된다. 김 씨는 지난 3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혐의로 구속 기소됐는데 최근 검찰이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혐의로 추가 기소했다. 서울중앙지검 범죄수익환수부(최대건 부장검사)가 추가 수사 과정에서 가상화폐로 숨겨둔 5억 원 상당의 범죄 수익을 찾아내 환수했기 때문이다.
이미 경찰이 찾아내지 못한 범죄 수익을 검찰이 찾아낸 것이다. 검찰은 직접 수사 과정에서 김 씨가 가상화폐 전자지갑을 전처에게 맡긴 사실을 알아내고 이를 압수해 5억 원 상당의 범죄 수익을 환수했다. 또한 가상화폐 외에도 1억 7000만 원 상당의 재산을 추가로 발견해 추징 보전했다.
최근 검찰과 경찰은 모두 범죄 수익 몰수 및 환수를 강조하고 있다. 올해 초 금융범죄 피해 최소화를 위해 몰수추징을 강화하겠다고 밝힌 경찰은 세무회계 관련 인원과 금융분석 전문 인력을 늘리는 등 다양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검찰 역시 관련 조치를 이어가고 있다. 최근 법무부는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수사협력단을 부활하는 동시에 서울남부지검에 범죄수익환수부, 범죄수익환수과 등을 신설하는 방안을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건의했다.
우선 서울경찰청 몰수전담팀까지 투입한 경찰이 수사 과정에서 600여억 원의 횡령금액 가운데 어느 정도 규모를 찾아낼 있을지에 관심이 집중된다. 그 이후 검찰 수사가 이어지는데 계양전기 재무팀 직원 횡령 사건처럼 서울중앙지검 범죄수익환수부 등 검찰에서 추가로 범죄 수익을 찾아낼 수도 있다.
검찰은 직접수사 범위가 부패·경제 범죄로 제한되고 그마저도 중대범죄수사청이 만들어지면 모두 넘겨야 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검찰 입장에선 ‘우리은행 600억 원대 횡령 사건’이 왜 검찰에게 직접 수사권이 필요한지 여부를 입증시킬 수 있는 좋은 사례가 될 수 있어 더욱 수사력을 집중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