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공화국’ 뛰어넘을 ‘왕가의 꿈’ 키운다
▲ 정몽구 현대차 회장 | ||
재계의 관심을 끄는 부분은 단연 현대차의 인수 성사 여부다. 현대차가 만도 인수에 성공할 경우 자동차 조립과정의 수직 계열화를 이룰 수 있다. 그러나 자동차의 품질과 경쟁력 상승 차원을 넘어 이번 현대차의 만도 인수 성공 여부는 재계 1위 삼성과 쌍벽을 이룰 만한 위상을 다질 수 있느냐에 대한 시금석이 될 것이란 평도 나오고 있다.
일단 업계에선 현대차가 만도의 가장 유력한 인수자로 떠오른 것으로 보고 있다. 만도는 원래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삼촌인 정인영 회장이 분가한 한라그룹 계열사였다. 그러나 한라그룹 부도 여파로 지난 99년 만도는 선세이지(JP모건과 UBS캐피털 계열인 어피니티캐피털의 합작사)에 매각됐다.
현재 만도는 선세이지가 72.3% 지분을 갖고 있으며 정인영 회장 아들인 정몽원 회장과 한라건설이 각각 9.27%씩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현대차는 한때 ‘집안 식구’였던 만도 인수에 강한 의욕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진다.
만도는 국내 ABS, ESP 등 제동·안전장치들을 국내 최초로 개발해 생산하고 있다. 브레이크 시스템에 관해서는 국내 경쟁자가 없을 정도. 만도는 지난해 매출 1조4천3백억원으로 세계 자동차 부품 업계 92위를 기록해 국내서는 유일하게 1백대 차부품업계에 이름을 올렸을 정도의 우량기업이다.
선세이지가 만도를 인수한 매입금액은 4억4천6백만달러로 당시 환율을 적용하면 6천억원 수준이었다. 그러나 현재 만도 매각 예상가격은 15억~20억 달러 수준으로 점쳐진다. 증시에서 흘러 다니는 얘기가 그렇다는 것이다. 매각 주간사인 JP모건이 만도를 처리함으로써 한몫 단단히 잡을 수 있는 기회인 셈이다.
그러나 현대차의 인수전 적극 참여로 매각가격이 떨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만도는 매출의 70%를 현대차에 의존하고 있다. 즉, 현대차에 대한 납품이 없다면 만도의 실적도 보장받을 수 없는 셈이다.
▲ 정의선 기아차 사장 | ||
만약 현대차가 만도 인수에 실패하면 현대차는 카스코를 집중 육성하는 동시에 만도의 공급 비중을 줄일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현대차가 인수에 성공할 경우 기존에 알려진 15억~20억달러선보다 한참 밑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만도의 매각 주간사인 JP모건이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현재 JP모건은 만도 매각과 현대차의 인수전 참여와 관련한 언급을 일절 삼가고 있다.
현대차는 최근 들어 ‘문어발식’ 확장 경영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사업영역을 넓혀왔다. 지난해 10월엔 구 한보철강의 당진공장을 인수했고 올 들어 계열사 엠코의 주택사업 진출, 광고대행사 이노션 설립, 카스코와 현대오토넷 인수 등 공룡기업으로서의 면모를 갖췄다.
주요그룹들이 분가나 사업구조조정을 통해 전문화의 길을 걷고 있는 데 반해 현대차그룹은 지난해말 1백7개에 불과했던 국내외 계열사의 규모를 현재 1백30개까지 늘린 상태다. 지난 2000년 계열 분리 이후 재계 5위에서 올해 2위로 올라선 기세만큼이나 자동차에 국한되지 않고 비전공 과목에까지 공격적인 확장경영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현대차는 철강 계열사인 현대INI스틸을 통해 연간생산 7백만톤 규모의 고로제철소 건립공사를 2007년 착공키로 한 상태다. 만약 만도 인수에 성공하면 현대차는 쇳물을 녹여서 철강을 만든 다음 브레이크 등 핵심 부품까지 독자적으로 개발·생산해 완성차를 제조해내는 수직계열화를 이루게 된다. 누구의 도움 없이 ‘북 치고 장구 치고’ 할 수 있는 셈이다.
▲ 지난 6월16일 전경련 회장단 모임에서 만난 이건희 삼성 회장(왼쪽)과 정몽구 회장. | ||
현대차가 발전 모델로 삼고 있는 도요타의 경우 필요한 핵심 부품을 모두 수직계열화를 통해 맞춤형 부품으로 자급자족해왔다. 이를 통해 비용과 시간을 절약하며 품질과 경쟁력을 확보해 세계 최고 수준의 자동차 회사가 됐다. 현대차의 만도 인수도 그런 흐름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현대차는 자동차 생산라인을 도요타 수준까지 끌어올려 여기서 발생하는 이윤을 비전공분야에 집중투자해 육성시킬 것으로 보인다.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 재계 1위 삼성의 위상을 넘보려할 것”이란 관전평을 내놓는다. 여기에 재계의 다른 관계자도 “정 회장이 전경련 행사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등 옛 현대왕국 부활의 꿈을 갖는 것 같다”고 덧붙인다.
옛 현대식구였던 만도를 인수해 현대가 장자로서 위상을 세우는 동시에 외국기업과의 만도 인수전 경쟁에서 승리하는 모습을 보여 대내외적으로 삼성에 필적하는 재벌그룹으로서의 역량을 과시하려 한다는 지적이다.
현대차가 희망하는 매각대금과 JP모건측이 원하는 금액의 차가 커서 이견을 좁히기 어려울 것이란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현대차 관계자는 “만도 인수 의지가 있는 건 확실하다. JP모건과의 가격에 대한 의견차이는 애널리스트들의 의견이지 우리의 공식입장은 아니다. 아직 구체적 내용을 밝힐 단계는 아니지만 만도 같은 업체가 외국계 기업보다는 국내기업에 ‘합병’되는 것이 국내 경제 발전을 위한 길이라고 본다”고 밝혔다.
현대차쪽에선 현대모비스를 중심으로 만도와 정몽구 회장의 2세 정의선 기아차 사장이 대주주인 본텍 등 주요 부품사를 합병시켜 보쉬나 GM계열의 델파이 같은 초대형 부품사로 변신시킨다는 복안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본텍 등의 대주주인 정의선 기아차 사장이 현대차그룹의 지주회사격인 현대모비스의 대주주로 자연스럽게 등장할 수 있다.
이래저래 만도 인수는 현대차에겐 꼭 성공시켜야 할 프로젝트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