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뒤흔들 ‘시한폭탄’ 수두룩
▲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2008년 2월 14일 바르자니 쿠르드 지방정부 총리를 접견, 국내 업체의 원유 사업 참여를 요청했다. 사진공동취재단 |
“직접 발로 뛸 테니 잘 따라와 달라. 자원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가겠다.” 이명박 대통령이 인수위 시절 관련 담당자들에게 수차례 전한 말이다. 정권 출범 후 이 대통령은 자원외교를 외교정책의 대표 브랜드로 내걸며 ‘총성 없는 전쟁’으로 불리는 개발권 획득 선봉에 섰다. 이러한 이 대통령 좌우엔 ‘형님’과 ‘왕차관’이 있었다. 먼저 박영준 전 차관은 2008년 6월 청와대에서 물러난 후 국무총리실(국무차장)과 지식경제부를 거치면서 자원외교에 ‘올인’했다. 이상득 의원도 2009년 6월 ‘2선 후퇴’를 선언한 뒤 사실상 자원외교에 전념하며 이 대통령 지원사격에 나섰다. 현 정권 최고실세들이 모두 자원외교에 뛰어든 것이다. 자원 개발 공기업들 역시 투자를 대폭 늘렸다. 석유공사가 10조 원 이상을 들여 자원개발 업체들을 인수한 것이나 한국광물자원공사의 해외 투자액이 2007년 8000억 원가량에서 2010년 약 3조 원으로 늘어난 것이 그 예다.
이처럼 ‘남다른’ 의욕을 갖고 시작했던 이명박 정부의 자원외교는 현재 ‘빛 좋은 개살구’라는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왜일까. 최근 도마에 오른 ‘쿠르드 유전 개발’을 살펴보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듯하다. 지난 2008년 2월 14일 당선자 신분이던 이 대통령은 쿠르드 자치정부의 바르자니 총리를 접견하며 국내 업체의 원유개발 사업 참여를 요청했다. 그 직후 석유공사는 바르자니 총리와 쿠르드 유전개발사업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계약 내용은 탐사에 성공할 경우 총 5개 광구에서 19억 배럴(한국 1년 석유소비량의 2배)에 이르는 원유를 확보하는 대신 21억 달러 규모의 사회기반시설 건설을 해주는 것이었다. 이를 놓고 당시 이 대통령 측과 석유공사는 “뚫기만 하면 석유가 나올 것” “MB 정부 자원외교의 쾌거”라며 선전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탐사시추 결과 경제성이 거의 없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쿠르드 개발 사업은 실패할 가능성이 커졌다. 석유공사 내부에서는 이미 “개발비로 쏟아 부은 4400억 원가량의 돈만 날리게 됐다”는 비관적인 목소리가 파다하다고 한다.
‘쿠르드 케이스’는 현 정부에서 맺어졌던 자원개발 ‘MOU’의 실상을 그대로 반영한다. <일요신문>이 지식경제부와 광물자원공사 등으로부터 확인한 바에 따르면 2008년 이후 이 대통령과 이 의원, 박 전 차관 등이 외국과 체결한 MOU는 총 20건이라고 한다. 이 중 10건은 이미 ‘실패’로 결론이 났고 9건은 ‘진행 중’인 것으로 드러났다. 20건 중 단 한 건만이 시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성공률로 따지면 5%에 불과하다. 이에 대해 한국광물자원공사의 한 관계자는 “사업 특성상 탐사시추 초기 단계만 가지고 평가해 실패라고 해선 곤란하다. 장기적 안목으로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업계에선 현 정부가 너무 일찍 대국민 홍보에 나선 것 아니냐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자원개발업체 대표 P 씨는 “MOU는 법적 구속력이 없다. 이때부터 홍보에 열을 올리면 정작 본 계약에서 불리하다. 아쉬운 것은 우리 쪽이기 때문에 협상력이 떨어지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지식경제부 등 자원 공기업 관계자들 역시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린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업계 일각에선 MB 정부의 자원외교가 ‘속 빈 강정’으로 전락하게 된 까닭 중 하나로 특정 인맥이 사업과정을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점을 꼽는다. 민주당 박지원 전 원내대표는 지난 9월 29일 국정감사에서 “이명박 정부 자원외교의 모든 것은 형님을 팔아서 박영준 전 차관이 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앞서의 P 씨는 “자원개발은 하루 이틀 해서 되는 게 아니고 노하우가 쌓여야 된다. 그런데 현 정부 출범 후 들어보지도 못한 회사들이 탐사에 참여했다. 당연히 성공할 가능성은 낮아진다. 업계에선 그들이 이 의원이나 박 전 차관과 가깝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이 의원과 박 차관이 자원외교를 도맡아 하다 보니 모든 채널이 그 쪽으로 쏠렸기 때문”이라고 털어놨다. ‘이상득-박영준’으로의 창구 일원화가 객관적인 사업자 선정에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었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그동안 이 의원 측에서는 ‘외국에서도 실세 정치인들이 직접 오면 더 좋아한다. 오히려 계약에 유리하다’는 논리를 펴왔다. 반면 석유공사의 한 관계자는 “MOU 단계에선 그럴 개연성도 있다. 그러나 개발권 본 계약은 철저하게 사업성을 따져서 준다. 조건만 맞으면 9급 공무원이 가도 사업을 따낼 수 있다”면서 “오히려 우리로서는 이 의원이나 박 전 차관이 전면에 나서니 실적을 내기 위해서 무리하게 일을 추진할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 MOU 체결 후 우리가 호들갑을 떤 것도 이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한때 석유공사 내에서는 현 정권의 자원외교를 ‘해외 세일즈가 아닌 국내 인기 세일즈가 아니냐’는 비아냥도 들렸다는 후문이다.
정치권에서는 이 의원과 박 전 차관이 자원외교에 발 벗고 나선 배경에 주목하기도 한다. 물론 이 의원 등은 ‘국익 차원’이라며 순수성을 강조하고 있긴 하지만 일각에서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윤호석 정치컨설턴트는 “‘왜 자원외교냐’라는 물음을 던질 필요가 있다. 자원개발 사업은 들어가는 돈도 엄청난 만큼 그 자금 흐름도 불투명한 편이다. 역대 정권에서 자원외교와 관련된 비리가 끊이지 않았던 것도 이 때문”이라면서 “2선으로 물러난 이 의원이나 주무부처 차관이었던 박 전 차관으로선 다소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그들의 위상을 감안한다면 조금 더 처신을 잘 했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민주당은 박 전 차관 이름이 거론되는 자원외교 의혹을 집중 추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위해 자원외교 전담 TF를 꾸리는 방안도 구상 중에 있다고 한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자원외교가 허상이었다는 게 드러나면 이명박 정부는 치명상을 입는다. 내년 선거 정국을 유리하게 이끌 수 있다”고 속내를 내비쳤다.
지금까지 언론 등을 통해 알려진 자원외교 관련 의혹은 우선 C&K가 카메룬 다이아몬드 개발권을 부풀려 주가를 조작, 수백억 원대의 시세차익을 실현하는 데 있어서 박 전 차관이 개입했는지 여부다. 또한 MB 대선캠프 ‘국민성공실천연합’을 이끌었던 이영수 회장이 운영하는 KMDC의 미얀마 가스전 개발권에 박 전 차관이 관여했는지도 도마에 올라 있다. 이에 대해 박 전 차관은 지난 10월 6일 국무총리실 국정감사에 나와 “너무 심한 것 같다. 의혹 제기만 있지 ‘팩트’가 없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사정기관들 역시 자원외교와 관련된 첩보들을 입수하고 진위규명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진다. 감사원은 지난 9월 31일 국회의 감사요구에 따라 C&K의 주가조작 등에 대한 감사에 조만간 착수할 예정이다. 국회의 감사요구안엔 박 전 차관에 대한 내용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그 결과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금융감독원과 검찰(서울중앙지검)에서도 이미 올해 5~6월경 조사에 착수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여의도 주변에서는 이 조사가 흐지부지될 것이란 소문이 공공연히 나돌고 있다. 정태근 한나라당 의원은 한 라디오에 출연해 “금감원 조사결과가 벌써 나왔어야 되는데 아직 종료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 문제를 무마하고자 하는 세력들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구나’라는 것을 느끼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검찰 내부에서도 C&K 사건과 관련 수뇌부와 수사팀 사이에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는 말이 새어나오고 있다. 한 검찰 관계자는 “진척이 잘 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위에서 누르고 있다는 말”이라면서 “그러나 쉽게 덮이진 않을 것이다. C&K를 잘 지켜보면 재미있는 일들이 생길 것”이라고 전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참여정부 자원개발은?
‘오일게이트’로 빛바래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자원외교에 ‘남다른’ 의욕을 보였다. 2004년 9월 현직 대통령으론 처음 카자흐스탄에 방문한 것을 비롯해 몽골, 우즈베키스탄 등 17개국을 직접 찾아 국내 기업들의 자원 개발권을 요청했다. 그러나 실적은 신통치 않았다.
노 전 대통령 해외 순방 시 체결한 자원개발 MOU는 총 15건인데 그 중 실제 계약이 이뤄진 것은 1건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성공률은 약 6.6%로 MB 정부보단 다소 높은 수치다. 노 전 대통령 역시 퇴임 후 측근들에게 이 부분을 아쉬워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일했던 한 야권 인사는 “우리는 현 정권처럼 이렇게 크게 홍보는 하지 않았다. MOU라는 게 언제든 무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원외교에 대한 관심만큼은 역대 그 어느 대통령보다 높았다”고 말했다.
이처럼 노 전 대통령 역시 자원외교에 애착을 가졌지만 임기 3년차에 터진 이른바 ‘오일게이트’로 빛이 바랬다. 참여정부 최대 의혹 사건인 ‘오일게이트’는 철도청(현 코레일)이 무리하게 러시아 유전개발에 뛰어들면서 불거졌다. 철도청은 2004년 8월 유전개발업자인 전대월, 허문석 씨 등이 합작 설립한 ‘코리아쿠르드오일’과 함께 러시아 유전업체 페트로사흐가 보유한 사할린 6광구 인수를 추진했다. 철도청은 계약금 620만 달러를 지급하며 인수 직전 단계까지 갔지만 계약이 파기되면서 사업이 무산됐다. 이로 인해 350만 달러의 손해를 입었고, 그 책임 소재를 가리는 와중에 정치권 외압설이 불거졌다. 결국 이 사건은 게이트로 확산돼 특검까지 가게 됐다.
당시 철도청과 함께 민간사업자로 뛰어든 인물이 바로 전대월 씨다. 이 사건이 확대된 이유는 노무현 전 대통령 오른팔로 통하는 이광재 전 의원이 개입됐다는 주장이 제기됐기 때문인데, 이 의원은 유전개발 전문가인 허문석 씨를 전 씨에게 소개시켜 주는 등 사업에 관여한 흔적이 일부 드러났다.
하지만 핵심 인물인 허 씨가 해외로 도주하면서 이 의원에 대한 수사는 흐지부지됐다. 이후 전 씨는 무죄판결을 받았다. 비록 일단락되긴 했지만 정권의 핵심 인사인 이 전 의원 이름이 오르내렸다는 점 때문에 ‘오일게이트’는 참여정부 권력 누수의 신호탄이라는 평을 받았다. [동]
‘오일게이트’로 빛바래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자원외교에 ‘남다른’ 의욕을 보였다. 2004년 9월 현직 대통령으론 처음 카자흐스탄에 방문한 것을 비롯해 몽골, 우즈베키스탄 등 17개국을 직접 찾아 국내 기업들의 자원 개발권을 요청했다. 그러나 실적은 신통치 않았다.
노 전 대통령 해외 순방 시 체결한 자원개발 MOU는 총 15건인데 그 중 실제 계약이 이뤄진 것은 1건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성공률은 약 6.6%로 MB 정부보단 다소 높은 수치다. 노 전 대통령 역시 퇴임 후 측근들에게 이 부분을 아쉬워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일했던 한 야권 인사는 “우리는 현 정권처럼 이렇게 크게 홍보는 하지 않았다. MOU라는 게 언제든 무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원외교에 대한 관심만큼은 역대 그 어느 대통령보다 높았다”고 말했다.
이처럼 노 전 대통령 역시 자원외교에 애착을 가졌지만 임기 3년차에 터진 이른바 ‘오일게이트’로 빛이 바랬다. 참여정부 최대 의혹 사건인 ‘오일게이트’는 철도청(현 코레일)이 무리하게 러시아 유전개발에 뛰어들면서 불거졌다. 철도청은 2004년 8월 유전개발업자인 전대월, 허문석 씨 등이 합작 설립한 ‘코리아쿠르드오일’과 함께 러시아 유전업체 페트로사흐가 보유한 사할린 6광구 인수를 추진했다. 철도청은 계약금 620만 달러를 지급하며 인수 직전 단계까지 갔지만 계약이 파기되면서 사업이 무산됐다. 이로 인해 350만 달러의 손해를 입었고, 그 책임 소재를 가리는 와중에 정치권 외압설이 불거졌다. 결국 이 사건은 게이트로 확산돼 특검까지 가게 됐다.
당시 철도청과 함께 민간사업자로 뛰어든 인물이 바로 전대월 씨다. 이 사건이 확대된 이유는 노무현 전 대통령 오른팔로 통하는 이광재 전 의원이 개입됐다는 주장이 제기됐기 때문인데, 이 의원은 유전개발 전문가인 허문석 씨를 전 씨에게 소개시켜 주는 등 사업에 관여한 흔적이 일부 드러났다.
하지만 핵심 인물인 허 씨가 해외로 도주하면서 이 의원에 대한 수사는 흐지부지됐다. 이후 전 씨는 무죄판결을 받았다. 비록 일단락되긴 했지만 정권의 핵심 인사인 이 전 의원 이름이 오르내렸다는 점 때문에 ‘오일게이트’는 참여정부 권력 누수의 신호탄이라는 평을 받았다. [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