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저기 갖다붙이기 ‘자원외교 꼴날라’
정홍원 총리가 마힌다 라자팍사 스리랑카 대통령과 악수하는 모습. 정 총리의 4개국 순방도 세일즈 외교로 소개됐다. 연합뉴스
그런데 이처럼 박 대통령이 직접 세일즈 외교를 강조하고 나서자 정부 부처들이 줄줄이 자신들이 하는 외국과의 협력 업무를 ‘세일즈 외교’로 포장해 선전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양자간 회담이나 MOU(양해각서) 체결, 국제행사, 포럼 등에 모조리 세일즈 외교라는 명패를 달고 있는 것이다. 정권 초기 박 대통령이 ‘창조 경제’를 말하자 부처들이 모든 업무에 ‘창조’라는 단어를 붙이던 것과 같은 행태인 셈이다.
지난 8월 25일부터 30일까지 5박6일간 바레인, 카타르, 스리랑카, 터키 등 중동·서남아시아 4개국을 돌고 귀국한 정홍원 국무총리의 해외 순방 일정도 세일즈 외교로 소개됐다. 정 총리는 바레인 방문 때는 한국 산업통상자원부와 바레인 상공부 간 경제통상협력 MOU, 바레인 도시보안지휘통제센터 구축 MOU를 체결했다. 카타르에서는 도시계획 및 인프라 협력 MOU 체결, 스리랑카에서는 상하수도 협력 MOU 체결, 터키에서는 ‘이스탄불-경주 세계문화엑스포 2013’ 개막식 참석 등을 했다. 사실 이는 세일즈 외교라기보다 통상적인 국빈방문에서 이뤄지는 행사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미래창조과학부도 최문기 장관이 10월 15∼18일 서울에서 개최된 ‘한-중남미 ICT(정보통신기술) 장관 포럼’과 ‘2013 세계사이버스페이스총회’에 참석하는 11개국 장관들과 양자회담을 갖는다는 보도자료를 뿌리면서 제목에는 ‘미래부 장관 ICT 세일즈 외교 나선다’로 달았다.
코스타리카, 파라과이, 니카라과, 도미니카, 과테말라 등 중남미 국가의 ICT 분야 장관들과 가진 회담이나 포럼에서 나온 결론은 내년 상반기 중 중남미 국가에 공무원을 대상으로 하는 ICT 교육센터를 구축키로 한 것과 한-중남미 ICT 장관 포럼을 2년에 한 번씩 열기로 한 것뿐이다. ICT 교육센터는 어느 나라에 지을지도 결정되지 않았다.
업계 관계자는 “장관 회담이나 국제 포럼에서 흔히 나오는 결론에 불과하다. 한국과 중남미 간 ICT 협력 체계 강화 정도의 내용인 데도 이러한 결론이 나기 전에 이미 세일즈 외교라는 거창한 명칭부터 붙인 셈”이라며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겠지만 박 대통령 순방 때처럼 한국에 대한 투자나 국내 기업의 현지 진출 보장을 받아내는 정도는 되어야 세일즈 외교라고 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관세청은 지난 15일 불가리아에서 백운찬 청장(왼쪽 두 번째)이 가진 한-불가리아 관세청장 회의를 ‘관세 세일즈 외교’라고 선전했다.
특히 자료에 별(★)표까지 달아 ‘웰빙외교는 해외 네트워크를 활용한 국가 간 협력 기반 조성을 통해 보건 산업 해외 진출 촉진 및 선진 복지 시스템 국제 교류 확대를 지원하는 것으로, 이는 박근혜 대통령이 강조한 미래 지향적 분야에서 새로운 경제협력을 확대하는 세일즈 외교와도 일맥상통한다’는 설명까지 곁들였다.
이에 대해 한 의약분야 종사자는 “이날 행사에 참석한 주한 외교관 면면을 살펴보면 미국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핀란드, 스웨덴 등 복지 분야와 의약 분야에서 우리보다 훨씬 앞선 국가들이 많았다”며 “우리의 보건 의료 역량을 소개하고 세일즈 하기보다는 이러한 행사를 통해 이들 국가의 우수한 복지제도와 보건의료 제도를 배우는 것이 맞는 방향”이라고 지적했다.
관세청도 15일 불가리아에서 백운찬 청장이 가진 한-불가리아 관세청장 회의를 ‘관세 세일즈 외교’라고 선전했다. 불법·부정 무역 방지 및 양국간 통관 애로 해소 창구 개설 등 협력 방안을 논의한 것이 세일즈 외교로 포장된 것이다. 정부부처의 이러한 ‘세일즈 외교 남발’ 현상에 대해 관계와 경제계 일각에서는 이명박 정부 시절 말 많고 탈 많았던 ‘자원외교’에 빗대기도 한다.
한 전직 관료는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자원외교를 강조하고, 원유 가격 급등과 희귀자원 품귀 현상 등으로 자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자원외교를 정부부처와 공기업 곳곳에서 추진했다”며 “하지만 석유개발 전문기업으로 육성한다는 목표 하에 한국석유공사가 해외 광구 개발에 나섰지만 원유 가격 하락으로 대규모 부채만 지게 됐다.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이 연루된 원전 비리 및 수출 특혜 의혹, 김은석 전 외교부 에너지자원대사가 기소된 카메룬 다이아몬드 개발 주가조작 의혹 등도 당시 각 부처가 자원외교에 무분별하게 나서면서 생긴 부작용”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그는 “세일즈 외교라고 이름 붙여 청와대의 점수를 따려고 무리하게 행사를 진행하기보다 국내 기업에 도움이 되는 정책 마련에 집중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나라와 정부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준겸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