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역전? ‘불행의 갱도’에 다시 갇혔다
▲ 칠레 산호세 구리광산 붕괴사고 생환 광부들이 지난 8월 5일(현지시각) 사고 1주년을 맞아 코피아포의 성당에서 열린 미사에 참석하러 가고 있다. AP/연합뉴스 |
지난해 69일 만에 기적적으로 구출돼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던 칠레 광부 33인이 1년이 지난 현재 여전히 지옥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당시 전원 사망했을 것이라는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극적으로 구출됐던 이들의 영웅담은 곧 세간의 화제가 됐으며, 33명 모두 쏟아지는 러브콜을 받으면서 인생역전을 이룰 꿈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이런 핑크빛 꿈은 오래 가지 못했다. 언제 그랬냐는 듯 대중의 관심은 서서히 사라졌으며, 죽음과 사투를 벌였던 감동 스토리 역시 사람들의 뇌리에서 빠르게 잊혀졌다. 처음 기대했던 것과 달리 이제 이들에게 남은 것이라곤 정신적 스트레스와 육체적 고통, 그리고 가난뿐이다.
지난해 10월 13일, 땅속 700m 아래에 갇힌 지 정확히 69일 만에 세상의 빛을 봤던 33명의 광부들은 그날 이후 여느 슈퍼스타 부럽지 않은 대접을 받으면서 단꿈에 젖어 있었다. 매일같이 쏟아지는 인터뷰 요청으로 여기저기 불려 다니기 바빴으며, 곧 돈방석에 앉을 것이라는 전망도 쏟아졌다.
가령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 초청 받아 7만 5000명의 축구팬들로부터 열렬한 환대를 받았는가 하면, 공짜로 비행기를 타고 디즈니랜드를 방문하거나 TV 쇼프로그램에 게스트로 초대되는 등 유명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다.
경제적으로도 풍족함을 누리긴 마찬가지였다. 33명 모두 ‘가와사키 오토바이’를 무상으로 선물 받았으며, 칠레 사업가인 레오나르도 파르카스로부터 1만 5000달러(약 1700만 원)에 달하는 위로금도 전달 받았다. 그런가 하면 할리우드에서는 이들의 이야기를 사기 위해서 치열한 경쟁을 벌였고, 출판사 역시 거액의 판권료를 제시하면서 계약을 체결하기에 혈안이 됐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런 관심과 호의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사라졌다. 계약금은 아직 구경도 못했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광부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여전히 가난에 시달리고 있다. 개중에는 되레 사고 이전보다 사정이 더 나빠졌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간간히 강연을 하거나 해적 CD를 팔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사무엘 아발로스(42)는 “과거 우리 모두는 록스타 대접을 받았다. 사람들이 우리를 보기 위해서 나무 위를 오르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전혀 달라졌다”고 푸념했다. “공짜로 선물 받은 오토바이는 일찌감치 팔아 버렸고 위로금은 바닥이 났으며 33명의 광부들의 사인이 담긴 깃발도 팔아버릴까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또한 시장에서 채소 장사를 하고 있는 오스만 아라야는 “33명 모두 형편이 매우 나쁘다”며 공개적으로 도움을 요청했는가 하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호세 오헤다는 하는 수 없이 다시 광산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는 않았다. 지하에 내려가자마자 괴로움과 공포에 빠져서 거의 실신할 뻔했던 그는 그 후 다시는 갱도에 발을 붙이지 못하고 있다. 칠레 일간지 <엘메르쿠리오>에 따르면 현재 33명 가운데 15명은 여전히 무직인 상태며, 7명은 동기부여 강사, 3명은 과일 채소 노점상, 2명은 보석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또한 다시 광부로 돌아간 사람도 4명이나 된다.
경제적 빈곤 외에도 광부들이 겪고 있는 커다란 문제는 정신적 스트레스다. 사고 후 충격으로 외상후스트레스장애에 시달리고 있는 이들은 거의 매일 밤 악몽을 꾸면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있으며, 커다란 소리에도 깜짝 놀라곤 한다. 또한 집중력이 떨어져서 애를 먹고 있는가 하면, 환청이나 환각 증상 때문에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는 경우도 있다.
▲ 지난해 광산에 매몰된 광부들의 모습. 로이터/뉴시스 |
이와 관련 산티아고의 정신과 전문의인 로드리고 길리브랜드는 “광부들은 앞으로도 정상생활로 돌아갈 수 없다. 이들은 현재 트라우마를 앓고 있으며, 평생 치료를 받으면서 살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10주 동안 갱도에서 고문 아닌 고문을 받았다는 데 있었다. 암흑, 시간 감각 마비, 굶주림, 죽음에 대한 공포, 그리고 이 상황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불확실성 등 고문에 버금가는 고통을 경험한 사람들이 겪게 되는 후유증은 실로 어마어마하다는 것이다. 길리브랜드는 “특히 불확실성은 심한 정신적 쇼크를 불러일으킨다. 베트남 참전 병사들에게서 나타나는 증상과 비슷하다. 이들은 평생 분노와 악몽에 시달리게 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정부와 민간 건강보험회사들이 광부들을 대상으로 심리치료를 실시하기는 했지만 많이 부족했다는 것이 당사자들의 설명이다. 더불어 광부의 가족들이 치료 대상에서 제외됐다는 점도 문제였다. 실제 많은 광부들이 가족들과의 관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한 광부는 “네 살짜리 아들과 잘 놀아주곤 했는데 이제는 관계가 예전 같지 않다”고 말하며 괴로워했다.
정신적 스트레스 외에 신체적 건강도 문제긴 마찬가지다. 33명 가운데 3명이 현재 폐질환의 일종인 규폐증을 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11명은 건강이 악화돼 이미 은퇴한 상태다. 구조 당시 현장에 아내와 정부가 동시에 나타나 화제가 됐었던 요니 배리오스도 그중 한 명이다. 현재 그는 규폐증 진단을 받고 다시는 광산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됐으며, 63세로 최고령자였던 마리오 고메즈 역시 규폐증이 더 심해져서 50년 넘게 일했던 광산을 떠나야 했다.
사정이 이런 만큼 이들은 현재 정부와 광산업체를 대상으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정부에게 ‘위험한 광산을 아무런 제재 조치 없이 그대로 열게 해서 결국 사고를 초래했다’며 배상금을 요구하고 있는 것. 현재 이들이 요구하고 있는 배상금은 1인당 33만 파운드(약 6억 원)다.
실제 사고가 발생했던 산호세 광산은 붕괴되기 전부터 이미 위험하기로 악명이 높은 곳이었다. 갱도의 천정은 걸핏하면 무너지기 일쑤였으며, 터널은 수시로 붕괴되고 광부들은 장시간 독가스를 마시면서 일해야 했다. 이런 까닭에 광부들은 갱도에 내려가는 것을 ‘가미가제’라고 부르면서 공포에 떨곤 했다.
대규모 붕괴가 일어나기 불과 4주 전에도 작은 규모의 매몰 사고가 발생해서 일부 광부들이 사망했지만 칠레 정부는 이렇다 할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저 임시적으로 채광 작업을 중단시키면서 경고를 줄 뿐 안전규제를 마련하지 않았고, 언론 역시 광산의 위험성을 알리는 데 적극적이지 않았다.
반면 광부들의 이런 손해배상 소송을 곱게 바라보지 않는 사람들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책 출간과 영화 제작으로 돈방석에 앉은 것도 모자라 돈벌이에 혈안이 됐다며 손가락질하고 있는 것이다. 극히 소수이긴 하지만 실제 광부들 가운데는 부유한 생활을 누리고 있는 경우도 있다. 사고 당시 리더 역할을 했던 마리오 세풀베다(39)는 현재 미국과 유럽에서 강연 활동을 하면서 적지 않은 돈을 벌고 있다. 맨체스터유나이티드의 올드 트래포드를 방문해서 축구를 관람하는 등 이곳저곳에서 초청을 받고 있으며, 빈민촌 학교를 돌아다니면서 동기부여 강연을 하는 등 자원봉사 활동도 하고 있다.
또한 전직 축구선수였던 프랭클린 로보스는 사고 후 다시 축구선수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FIFA 초청으로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유명세를 쌓고 있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갱도 안의 생활’ 안 알려진 까닭
먼저 죽는 사람의 ‘인육’ 먹으려 했다
‘그때 지하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것은 지상에서 벌어진 감동적인 구출 작전보다 10주 동안 지하에서 벌어졌던 광부들의 죽음과의 사투, 갈등, 공포 등일지 모른다.
하지만 여태껏 이와 관련해서 알려진 바는 그리 많지 않았다. 광부들이 절대로 책 발간과 영화 제작 계약이 체결되기 전까지는 입을 열지 않기로 약속했기 때문이었다. 간혹 현금 제의를 받은 몇몇 광부들이 입을 열기 위해 다툼을 벌이긴 했지만, 그럼에도 이 약속은 1년 동안 대체로 잘 지켜졌다.
지금까지 알려진 내용이라면 우유 반 컵과 쿠키 반 조각씩을 먹으면서 버텼다거나 굶주림 끝에 심각하게 인육을 먹을까 고민했었다는 정도였다. 익명의 한 광부는 “우리들은 혹시 누가 먼저 죽지는 않을까 돌아다니면서 서로를 살폈다. 먼저 죽는 사람이 첫 번째 먹잇감이 되리란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고 말했다. 또한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집단 자살을 고려했다는 증언도 있었다. 이들이 생각한 자살 방법은 다이너마이트 폭파하기, 좁은 공간에 모여 독가스 흡입하기 등이었다.
그렇다면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를 모두 담은 할리우드 영화와 책은 언제쯤 나올까. 현재 광부들의 애환과 삶, 그리고 구출 스토리를 담은 공식적인 책은 퓰리처 수상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헥토르 토바르가 집필 중에 있다. 그리고 이 책을 바탕으로 한 영화도 곧 제작에 들어갈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감독은 <블랙 스완> <셔터 아일랜드>를 제작한 마이클 메더보이가, 그리고 각본은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의 호세 리베라가 맡게 됐다. 메더보이 감독은 “이는 인간 정신의 승리에 관한 이야기이자 칠레 국민들의 용기와 인내에 대한 증거다”라며 “이보다 더 영화로 만들기에 좋은 이야기는 없을 것”이라고 극찬했다.
내년부터 촬영이 시작될 이 영화의 세부 사항은 아직 알려지지 않은 상태. 소문에 따르면 주연배우로는 브래드 피트, 하비에르 바뎀 정도가 물망에 올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
먼저 죽는 사람의 ‘인육’ 먹으려 했다
하지만 여태껏 이와 관련해서 알려진 바는 그리 많지 않았다. 광부들이 절대로 책 발간과 영화 제작 계약이 체결되기 전까지는 입을 열지 않기로 약속했기 때문이었다. 간혹 현금 제의를 받은 몇몇 광부들이 입을 열기 위해 다툼을 벌이긴 했지만, 그럼에도 이 약속은 1년 동안 대체로 잘 지켜졌다.
지금까지 알려진 내용이라면 우유 반 컵과 쿠키 반 조각씩을 먹으면서 버텼다거나 굶주림 끝에 심각하게 인육을 먹을까 고민했었다는 정도였다. 익명의 한 광부는 “우리들은 혹시 누가 먼저 죽지는 않을까 돌아다니면서 서로를 살폈다. 먼저 죽는 사람이 첫 번째 먹잇감이 되리란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고 말했다. 또한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집단 자살을 고려했다는 증언도 있었다. 이들이 생각한 자살 방법은 다이너마이트 폭파하기, 좁은 공간에 모여 독가스 흡입하기 등이었다.
그렇다면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를 모두 담은 할리우드 영화와 책은 언제쯤 나올까. 현재 광부들의 애환과 삶, 그리고 구출 스토리를 담은 공식적인 책은 퓰리처 수상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헥토르 토바르가 집필 중에 있다. 그리고 이 책을 바탕으로 한 영화도 곧 제작에 들어갈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감독은 <블랙 스완> <셔터 아일랜드>를 제작한 마이클 메더보이가, 그리고 각본은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의 호세 리베라가 맡게 됐다. 메더보이 감독은 “이는 인간 정신의 승리에 관한 이야기이자 칠레 국민들의 용기와 인내에 대한 증거다”라며 “이보다 더 영화로 만들기에 좋은 이야기는 없을 것”이라고 극찬했다.
내년부터 촬영이 시작될 이 영화의 세부 사항은 아직 알려지지 않은 상태. 소문에 따르면 주연배우로는 브래드 피트, 하비에르 바뎀 정도가 물망에 올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