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퇴임 뒤 사저라는 점이 알려지면 보안 문제도 생기고 또 값이 치솟을 수 있기 때문에, 일단 아들 시형 씨와 대통령실(대통령 경호처) 명의로 땅을 샀다가 나중에, 건축허가 시점에서 이 대통령이 아들로부터 다시 매입할 계획이었다.”
사실, 청와대 설명도 시커먼 뭔가를 연상케 했다. 구차한 변명을 설명이라고 한 청와대 비서진도 구차했다. MB의 경우, 이래저래 마음도 아프고 억울할 것 같다. 사저를 아들 이름으로 구입하여 재산을 물려주는 것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반문하고 싶을 것이다.
결국 미국에서 돌아오자마자 MB는 사저 신축을 전면 재검토하도록 지시했다. 일이 잘못된 책임을 지고 경호처장도 사의를 표명했다. “겉으로는 공정, 속으로는 꼼수”라는 말을 듣는 그 분의 전형적인 일처리 방식이다. 이런 상황에 대해 이미 MB는 마치 예견처럼 한마디 하셨다. 2011년 3월 5일 과천 중앙공무원교육원 중앙부처 주무과장 대상 국가전략세미나에서 하신 말씀이다. “꼼수는 그 순간은 이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정수로 가야 승리한다. (중략) 대통령이 되어 기후변화에 대비해 그린그로스 주장했고 세계적인 용어가 되었다.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그런 주장을 할 수 있냐고 세계가 놀랐다. (중략) 나는 이런 위대한 국민의 대통령이라는 것을 늘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중략) 적당히 타협하고 후퇴하면 발전하지 않는다. 일을 하면 평가는 그 이후에 일어난다. 판단이 옳으면 공직자들이 소신을 가지고 일을 해줘야 사회가 발전한다.”
분명 ‘사저 터 구입’ 청와대 담당 과장은 이 세미나에 참석하지 않은 것 같다. 그런데 ‘꼼수’가 아닌 ‘정수’, 타협하지 않겠다는 것, 일로서 평가를 받겠다는 이 분을 왜 국민들은 ‘잔머리를 굴리는 꼼수’처럼 보는 것일까? 혹자는 MB가 평생 비즈니스맨으로 살아온 ‘습관’ 때문에, 그렇다고 한다. 어떤 일을 할 때에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행동방식, 즉 장사꾼이 이익을 얻기 위해서라면 절세, 시세차익, 편법증여, 명의신탁 등 무엇이든 하기에 결국 모든 대통령의 행동을 이렇게 결부시켜 인식한다는 해석이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사업하는 사람들을 다 ‘후안무치’의 인간으로 만드는 것 같아, 쉽게 동의하기 힘들다. 차라리 대통령 당신의 성격 때문이라 하면 어떠할까?
국가 최고 지도자의 성격을 분석할 때, 혹시 누군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국가 원수 모독죄로 고소할지도 모른다. 그냥 심리학자로서 훌륭하고 부지런한 우리 대통령을 한 인간으로 이해하고, 대중이 이 분을 ‘꼼수’로 보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알려는 마음으로 받아주었으면 한다. ‘가카께서는 이런 사소한 것으로 결코 마음 상할 분은 아닐 것이다.’
MB의 성격 특성을 전문 용어로 정리하면, ‘리얼리스트’로 살고 싶은 ‘로맨티스트’다. 이런 유형의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관계와 신뢰다. 하지만 ‘누구와도 이익이 통한다면, 서로 통할 수 있다’고 믿는다. 자신의 감정을 잘 표현하지만, 정작 자신의 핵심 감정은 드러내지 않는다. 인간관계에서 타인은 항상 관리의 대상이다. 타인에 의해 상처를 많이 받기도 하며, 동시에 타인으로부터의 격려와 배려를 간절히 원한다. 그렇기에 공적인 일처리 방식보다 사적인 방식을 선호한다. 낯선 사람이나 상황은 가능한 회피하려 한다. 자신이 익숙한 특정 방식에 의존하려 한다. MB가 꼭 그렇다기보다는, 이런 유형의 사람들이 그렇다는 이야기다.
이런 유형의 사람은 겉으로는 ‘규범과 신뢰’를 중시한다고 하지만, 관계와 이익을 위해서라면 규범과 신뢰는 쉽게 무시한다.
열심히 일하면, 성공과 남 못지않은 재산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 명문대, 좋은 학벌, 번듯한 집안 등을 신뢰한다. 바쁘고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이지만, 정작 무엇을 위해 사는가 물으면 그냥 ‘가족의 행복’ 또는 ‘건강’ 등의 막연한 이야기를 한다. 자신의 뚜렷한 생각보다 일반적인 평판이나 그냥 좋은 말을 한다.
대중이 보는 MB와 당신께서 보는 행동의 갭이 발생하는 이유는 바로 당신의 로맨티스트 기질 때문이다. 로맨티스트는 스스로 자신의 감성에 더 쉽게 빠져드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혼자 눈물 흘리면 모두 슬퍼할 것이라 믿는다.
급격하게 변화하는 상황에서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에게서 정답을 찾으려 한다. 자신과 다른 생각에 대해, “너가 안 해 봐서 그래, 너가 뭘 몰라서 그래”와 같이 표현하는 이유다. 그러다 문제가 생기면, 당연히 주위 사람들의 탓으로 한다. 누군가 알아서 책임지고, 스스로 사라져주기를 바란다.
대한민국 직장인의 약 50% 정도는 이런 성향을 가진다. 누구 밑에서 열심히 일하면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공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려는 사람이라면, 자연스럽게 이런 성향의 심리를 학습한다. 현재는 훌륭한 직장인이지만, 누구라도 나중에 대통령이 되면 현재 우리의 MB와 유사한 방식으로 행동하고 말하게 될 것이다. 영혼을 버려둔 채 일만 열심히 하겠다는 관료도 이런 심리를 쉽게 학습한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는 광고문구처럼, 이런 사람들이 적어도 우리 사회의 공공영역에서는 더 이상 없기를 바랄 뿐이다.
연세대 심리학 교수 황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