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보다 놀란 것은 그렇게 검증된 사람도 무차별적으로 공격을 당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정치문화였다. ‘절대반지’는 그렇게 무서운 것이었다. 그 판에 들어서면 예수님도, 부처님도 공격에 속수무책이겠다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대 젊은 표들이, 그리고 우리 사회의 허리라 할 수 있는 30, 40대가 그에게 몰표를 던졌다는 데 나는 더 놀랐다. 누구는 SNS 때문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통로일 뿐이다. 2040의 몰표에서 나타난 것은 명백히 변화에의 요구다. ‘분노’라고 불러도 좋을 무서운 요구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정신을 다시 한 번 새기게 만든! 그런데 무엇이 그렇게 2040을 분노하게 했을까?
경제를 기대하고 이명박 대통령을 선택했던 대구 출신의 한 후배는 2년 만에 전세금이 7000만 원 오르자 이번엔 ‘박원순’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애들 교육비 줄일 수도 없고, 이렇게 삶이 흔들려서야 되겠느냐고. 자신이 중산층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전셋집을 걱정해야 하는 서민이었다고 허탈함인지, 냉소인지 모를 미소를 짓는다. 중산층인 줄 알았는데 어느새 서민이 되어버린 사람들이 그 후배뿐일까. 그러고 보니 우리의 중산층이 자꾸만 얄팍해져 간다.
경쟁의 이름으로 몰이해온 세상에 뒤지지 말라고 ‘나’보다는 나은 교육을 받게 하기 위해 아이들 사교육비에 허리가 휘면서 자고나면 오르는 전세난에 한숨을 내쉬어야 하는 사람들이 40대 서민이다. 그들의 아들딸이 대학에 들어오면 이번에는 일 년에 천만 원이 넘는 교육비가 기다리고 있다. 학생들 중에는 그 교육비를 감당할 수 없어 등록과 휴학을 반복하는 이들이 많다. 그런데 반값 등록금을 공약으로 내걸었던 정부는 당선과 함께 공약(公約)을 공약(空約)으로 만들어버렸다. 젊은이들이 그런 정치에 분노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닐까.
그렇게 어렵게 대학을 졸업한 청춘인데 이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구직난이다. 폼 나게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었으나 폼은 사치이고 일자리 자체가 턱없이 부족하니 실업난에 허덕이는 일은 당연지사다. 이제는 30대의 대다수가 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어떠한 보호막도 없이 항상 ‘퇴출’을 걱정해야 하는데 그 중요한 문제를 그저 개인의 능력의 문제로 환원해버리는 사회에 대한 분노는?
박원순 시장은 시민이 권력을 이기고, 투표가 낡은 시대를 이겼다고 당선소감을 밝혔다. 시민운동가였으니 이제 그는 누구보다도 시민이 준 권력의 무서움을 알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어쩌나. 그 많은 기대를. 그가 시민들과 이마를 맞대고 서울을 어떻게 디자인해갈 것인지 무척 궁금해진다.
수원대 교수 이주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