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만 좋으면 된다고? 천만의 말씀…‘오스카 캠페인’ CJ ENM 로비전 주목
이제 시선은 ‘그 다음’으로 쏠린다.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대유행)으로 인해 초토화됐던 극장가에 훈풍이 부는 상황 속에서 수상의 기쁨을 누린 두 영화가 어떤 행보를 이어나갈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역대 한국영화계 최고의 성수기로 꼽혔던 2019년, 영화 ‘기생충’이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을 차지했듯, ‘헤어질 결심’과 ‘브로커’ 역시 그 뒤를 밟을 것이란 기대감이 상승하고 있다.
‘헤어질 결심’과 ‘브로커’가 아카데미로 가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칸 국제영화제가 유럽에 기반을 두고 있는 반면, 미주 지역에서 첫 손에 꼽히는 영화 시상식인 아카데미는 ‘가고 싶다’고 해서 갈 수 있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선 내년 초 열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에 출품하기 위해서는 올해 미국 LA지역에 위치한 극장에서 일주일 이상 상영돼야 한다. 이 시상식이 미주에 기반을 둔 만큼 이 지역 내 상영은 필수라는 의미다.
이런 의미에서 두 영화의 투자배급사인 CJ ENM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미주 지역 배급을 위해서는 자본력이 뒷받침돼야 하기 때문이다. CJ ENM은 계열사인 CJ CGV가 미국 LA 지역에 상영관을 두고 있다. 코리아타운에 위치한 CGV Cinemas USA다. 이곳 역시 미주 지역에 포함되기 때문에 아카데미 시상식에 출품하기 위한 상영 조건을 맞추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출품 자체에 의의를 둘 수는 없다. 이미 ‘기생충’이 2019년 2월 열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고상인 작품상을 비롯해 감독상, 각본상, 외국어영화상 등 4관왕을 휩쓸며 눈높이를 한껏 올려두었기 때문이다. 출품 후 수상까지 기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를 위해 두 영화는 미주 지역 배급을 위한 현지 배급사와 손을 잡았다. CGV Cinemas USA에서만 상영해서는 사실상 승산이 없다. 미국 전역에서 개봉해 인지도를 높이고 일정 수준 이상의 흥행을 일궈야 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연출한 ‘브로커’는 이미 ‘기생충’의 북미 배급을 책임졌던 네온과 손잡았다. 고레에다 감독은 영화 ‘어느 가족’으로 황금종려상을 받았던 거장이다. 게다가 이번 칸 국제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은 배우 송강호는 ‘기생충’의 남자주인공이었다. 언어적 한계 때문에 동양인 배우가 한국어로 연기하며 연기상을 받는다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기생충’의 영광을 통해 이미 송강호는 충분한 인지도를 쌓았다. 그런 그가 칸 남우주연상을 품에 안고 아카데미에 다시 도전한다는 것은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네온 역시 미주 지역에 ‘브로커’를 배급하며 이 부분을 강조할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드라마 ‘나의 아저씨’와 ‘호텔 델루나’를 통해 지명도가 높아진 배우 이지은(아이유)과 대표적 한류스타인 강동원이 가세했다. 게다가 강동원은 올해 3월 미국 대형 에이전시 CAA(Creative Artists Agency)와 전속 계약을 체결했다. 그를 알리기 위해 현지에서 움직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헤어질 결심’은 역시 북미 지역에서 영향력 있는 배급사인 무비(Mubi)가 책임진다. 이 회사에 소속된 케이트 케인은 칸 국제영화제에서 ‘헤어질 결심’이 공개된 후 “또 하나의 마스터피스(명작)가 탄생했다. 박찬욱은 단연 현 시대에 존재하는 최고의 스토리텔러이자 비범한 감독”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또한 박찬욱 감독은 ‘헤어질 결심’으로 반짝 관심을 받는 감독이 아니다. 그동안 그가 연출한 ‘올드보이’ ‘박쥐’ ‘아가씨’ 등이 전 세계에 수출돼 ‘거장’으로 손꼽힌다. 게다가 칸 국제영화제 감독상이라는 타이틀까지 단 박 감독은 할리우드 영화 ‘스토커’도 연출한 바 있다. 국적은 한국이지만 ‘글로벌 감독’이라 할 만하다.
또한 ‘헤어질 결심’의 여주인공인 중국 배우 탕웨이는 이안 감독의 영화 ‘색, 계’로 북미 관객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이 영화를 연출했던 이안 감독은 ‘브로크백 마운틴’과 ‘라이프 오브 파이’로 두 차례 아카데미 시상식 감독상을 수상한 바 있다. 아카데미가 아시아계 감독에게 꽤 열려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런 상황을 종합해봤을 때 ‘헤어질 결심’과 ‘브로커’의 아카데미 시상식 수상 전망은 어둡지 않다. ‘기생충’ 이후 한국 콘텐츠에 대한 기대감이 한껏 상승한 터라 “충분히 해볼 만한 경쟁”이라는 관측이 가볍게 들리지 않는다.
다시금 주목 받는 것은 CJ ENM의 역할론이다. 아카데미 시상식으로 향하는 일명 ‘오스카 캠페인’은 막대한 자금이 투입되는 과정이다. ‘기생충’도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뒤, 그해 8월 미국 텔루라이드 영화제를 시작으로 반 년간에 걸친 캠페인을 이어갔다. 이 과정에서 단순히 투자배급을 받은 영화를 알리는 데 노력하는 수준을 넘어 아카데미 시상식에 대한 투표권을 가진 8000여 명의 미국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 회원들을 대상으로 ‘로비’도 벌여야 한다. ‘기생충’의 경우도 영화 속에 등장하는 수석과 복숭아 등을 선물로 보내며 홍보전에 뛰어들었다.
오스카 캠페인에는 통상 출품된 영화 제작비에 맞먹는 수준의 비용이 투입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CJ ENM 역시 ‘기생충’을 알리는 과정에서 100억 원 넘는 자본으로 뒤를 받쳤다는 후문이다. 결국 ‘헤어질 결심’과 ‘브로커’의 아카데미행에도 CJ ENM의 역할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한 영화 관계자는 “실용주의 사회인 미국에서 오스카 캠페인을 펼치는 영화들의 로비는 아주 당연한 일이다. 그를 두고 ‘작품이 좋으면 되는 것 아니냐’는 건 지나치게 낭만적이고 안일한 생각”이라며 “이런 상황을 정확히 꿰뚫고 있는 이들은 ‘기생충’의 수상 이면에 놓인 CJ ENM의 노력을 잘 알고 있고, 다음 아카데미 시상식을 앞두고도 그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지원을 기대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